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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마음의 환대

골라 먹는 해물 부추전

by larinari 2013. 9. 6.

 

 


아이들에게 해물 부추전을 해줬는데 아주 그냥
애를 쓰면서 먹는다. 최대한 (좋아하는) 오징어가 많이 있는 쪽을 잘라내야 하고, 그러면서도 청양고추는 피해 가려는 것이다. 헤집고 고르며 두 녀석이 접시를 싹 비우고 났다. 설거지 하며 생각하니 이놈들 오징어 골라 먹고 고추 골라내느라 평소 싫어하던 호박과 양파를 막 먹어댄 것이다. (안 보여서 그렇지 호박이 엄청 들어갔음. 으흐흐)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단순하게 좋은 거 좋아하고 싫은 것 싫어하며...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에 좋은 호박도 먹고 살게 되지 않겠나. 좋은 걸 좋아하는 것도, 싫은 사람 싫어하는 것도 괜한 죄책감에 제대로 해보질 못한다. 내가 좋은 걸 하면 이기적인 것 같고,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하나님 사랑에 위배되는 일이라 버리고 없애야만 하는 것 같아서. 싫은 것 안 싫어하려고 애를 쓰다 더 꼬여버린 일과 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처음부터 '싫구나!' 인정하고 들어갔으면 오히려 쉬웠을 것을.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설겆이 하던 내 마음 같진 않으실까. '요 녀석들, 마음껏 골라 먹어라. 니들이 골라봤자다! 이놈들아' 큭큭거리며 귀여워하시는. 예수님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좋은 것을 좋아하고 싫은 것을 싫어하는 아이 같은 단순함이라도 누리며 살 일이다. 아이 같은 내게 하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니가 나를 도우면 얼마나 돕는다고 그리 애를 쓴다냐. 내가 너를 지은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하거라. 편식해도 좋다. 행복하게만 살거라.' 그러면서 내가 헤질러 놓은 아버지 나라의 식탁을 치우시며 큭큭거리신다. '짜식, 호박 먹은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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