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zine>9월호 기고글 '藥이 된 冊_9'
   
                     리영희 교수의 <대화> 대담  : 임헌영,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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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쓴 약 <대화>

두 세 시간을 마주 앉아 대화해도 힘든 줄 모르는 대화가 있다. 길어져도 지치지 않는 대화 중에 ‘수다’가 있다. 주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주제의 일관성이란 없고, 신변잡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형국이라 깊이 또한 없다. 그럼에도 맘에 맞는 사람과의 수다는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내기 때문에 내게는 싫지 않은 대화이다. 제일 살 맛 나는 대화는 맘에 맞는 사람과 맘에 맞는 주제로 끊임없이 삶의 나눔과 더불어 비젼을 공유하는 대화이다. 이런 대화는 두 세 시간 쉬지 않고 떠들어도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한참 연배가 높으신 어른들과 마주 앉아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가 있다. 과연 살아온 날의 수가 다르고, 경험의 넓이와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가만 듣고 앉아 있기만 해도 배울 것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아주 익어서 바로 먹어도 좋은 인생의 열매를 가만 앉아 얻어먹자면 감수해야 할 것도 있다. 경험과 경험이 쌓여 생긴 인생의 많은 노하우들은 쉽게 자기 자랑이 되고, 조금만 수긍해 드려도 그 자랑은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것만 없으면 참 얼마든지 앉아서 배우고 또 배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어르신의 길고 긴 삶의 여정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삼천포로 빠질 위험 없이, 네버엔딩 스토리가 될 염려 없이 안전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리영희 교수의 ‘대화’를 읽으면서 가진 대화가 그러했다. 80이 다 되신 리영희 교수와의 만남과 길고 긴 대화였다. 이 대화는 때로 우리들이 지나온 시대의 아픔에 다시 몸을 떨게 했고, 그 불의와 질곡의 시대에 글 쓴 죄 값을 몸으로 갚으며 살아낸 곧고 강직한 한 사람의 삶에 머리를 숙이게 했다. 오직 자유를 추구하던 학문연구와 글쓰기가 오히려 그 몸을 옥에 갇히게 하는 역설적인 시대와 개인 간의 불화가 우리의 역사라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정작 이 대화가 입에 너무도 썼던 이유가 있었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흐트러지지 않은 매무새로 앉아 들으려 했지만 입에만 쓴 것이 아니라 식도를 온 몸에 퍼지는 듯하여 몸과 마음이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쓴 맛의 정체

가끔 주일 예배에 어느 장로님께서 대표기도를 하실 때 그 예배의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이라크 파병 문제가 사회적 현안이 되는 그런 시점이었을 것이다. 지금 장로님께서 기도를 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모양새는 기도인데 내용은 시국 강연인지 헷갈릴 때가 그런 때이다. 장로님의 기도 속에서 미국이 단지 장로님 말씀따나 우방인지 아니면 기도의 행간에서 읽혀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인지 헷갈릴 때가 그렇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고 미국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빨갱이일 뿐 아니라 사탄의 농간에 놀아나는 자들이니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라고 힘주어 기도하실 때의 난감함. 휴우~

리영희 교수와의 <대화>에서 내게는 유독 굵은 글씨체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자주,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참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쓴 우리 선배들의 연약함이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기독교신자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그 분을 존경하고 기리며 오늘 날 이라크 파병을 외치는 그 연로하신 장로님들이 과거의 아픈 현대사에 어떻게 일관되게 강한 자의 손을 들어주며 서 계셨는지를 보아야 한다. 누구보다 합리적인 무신론자 자유와 정의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노 지식인으로부터 한국현대사에 비친 기독교는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약한 자들로 흐르는 원래의 그 사랑에서 멀어져도 한참을 멀어져 있었다. 리영희 교수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 저녁마다 그 명분 없는 전쟁으로 인해서 죽어가는 젊은이, 민간인들을 생각하면서 저녁마다 기도하지 않고 잠든 날이 없다 한다. 같은 시절 같은 사안을 두고 미국과 손잡고 베트남 파병을 격려하고 옹호했던 우리들의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밤에 불편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나는 일찍이 혼자 되셔서 당신 몸 돌보지 않으시고 오직 자녀들 교육시키는 것에 모든 걸 걸고 살아오신 홀어머니의 딸이다. 우리 어머니는 믿음이 좋으시고, 기도를 열심히 하시고, 순진하시지만 참으로 많은 인간적인 약점을 갖고 계신다. 사춘기 즈음에는 어머니의 약점이 부끄러워서 어머니와 나란히 저자거리를(?) 걷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자라고 철이 들면서 홀로 고생고생해서 나를 키우신 어머니에 대한 거의 본능적인 방어태세가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나에 대한 비판은 백 번 양보해서 ‘그렇지. 내게 그런 약점이 있지’ 라고 힘들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언정 우리 어머니에 대한 어떤 비판도 소화해내기 힘들었다. 우리 어머니의 약점을 내가 다 아니까 가벼운 농담으로라도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더 나이를 먹고 나 역시 약점을 지닌 엄마가 되고 난 후에 ‘어머니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약점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의 약점을 객관적으로 아는 이상, 그로 인해서 생긴 친척들과의 관계 문제든 무엇이든 조용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 노쇠하고 힘이 없어진 어머니를 향한 효도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비난을 독이 오른 짐승처럼 전투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나와는 상관없는 어머니 개인의 문제라고 고개를 돌릴 것이 아니라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리영희 교수가 말하는 한국교회 편이 아니라, 리영희 교수 편에 서고 싶은 내게는 불가능한 선택에 대한 이기심도 쓴 맛을 더하는데 한 몫 하였다. 처음 책을 펼치고 읽을 때의 마음에 비하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훨씬 차분해진 마음이었다. 100년 전 평양에서 도덕적, 영적 죄에 대한 회개의 운동을 일으킨 그 분들이 우리의 선조인 것처럼 신사참배를 하고, 악한 강자의 손을 들어주어 힘을 실어주던 그 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분들의 연약함 점과 죄를 이제 우리의 것으로 알고 그 비난의 화살을 우리 몸으로 막아내겠다는 자가 처방이 몸과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사랑하고 끌어안기 위해서는 두 눈을 똑똑히 뜨고 보고 들으며 쓴 맛을 감내하는 것이 먼저인 것은 분명하다.

이현주 목사님의 책 제목이 마음을 친다.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아프간 피랍사태로 교회에 대한 기독교에 대한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때론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아픈 비난, 때론 어처구니없는 비난에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라 외치며 가슴 치며 회개할 일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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