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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키우는 엄마

놓아주니 돌아온 속초 여행

larinari 2014.10.09 22:11


일곱 살이 안 된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좋은 때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아이들 떼놓고 달랑 부부끼리 데이트 하는 우리가 그들의 로망일테지만. 아이들 어릴 적에 여행다녔던 기억이 벌써부터 그립다. 여행지도 여행지지만 오가는 자동차 안의 추억은 방울방울이다. 끝도 없이 부르던 노래, 알쏭달쏭 퀴즈, 그러다 고꾸라져 잠든 녀석들. 녀석들이 잠들면 앞좌석 그제야 어른 모드로 대화할 수 있어서 그 시간이 꿀 같았던. 넷이서 기분좋게 여행가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 일단 채윤이가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 설령 가더라도 모든 게 심드렁. 걷지도 말고, 구경도 말고, 폰으로 음악이나 듣다 뒷자석에서 쳐자는 게 최고라는 태도에 엄마 아빠는 뚜껑이 열렸다 닫혔다 했다.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아쉬웠지만 놓아주기로 했었다. 그래, 이제 떠나라. 그래서 지난 여름, 작년 여름 휴가도 가지 않았다. 가더라도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소박한 목표였었다. 왠일인지 얼마 전부터 두 녀석 다 어디 여행 가고 싶다고 노래를 하더니 휴일에 속초에 가잔다. 채윤이는 어디가 됐든 가족과 함께 가고 싶단다. 현승이는 회가 너무 너무 너무 먹고 싶단다.  그래서 한글날 아침 6시 30분 기상, 속초로 출발했다. 일정은 오직 하나. 바다 보고, 회 먹고. 어머, 이 녀석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착했다. 물론 위기는 여러 번 있었다. 설악산을 굳이 걸어야 하겠냐고, 그냥 차로 한 바퀴 돌고 나가면 안 되겠냐고. 또는 차에서 듣는 음악의 취향 같은 것들도 살짝 충돌이 있었으나 전과 다른 느낌이다. 채윤이 얼굴에서 개그가 읽혀진 적이 언제던가. 저런 사진을 본 적이 언제던가.



어쩌면 얘, 현승이가 위험한 애다. 사춘기 끝물 채윤이보다 슬슬 사춘기가 오고 있는 현승이. 그래도 엄마 아빠랑 세대 음악 취향이 비슷해서 다행이다. 오가는 차 안에서 현승이 DJ 주도로 함께 듣는 노래가 이문세, 김광석, 이선희, 이적이었으니. 히든싱어나 슈스케 같은 것이 세대와 세대를 음악으로 이어주고 있다는데 현승이는 유난하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아이돌 노래가 싫고 엄마 아빠들 시대 노래가 좋아? 나 병 걸린 거 아냐? 노인병. 나 노인병인가봐" 노인병 걸린 현승이와 노인이 되어가는 엄마 아빠의 음악이 싫은 채윤이는 이어폰 꽂고 혼자만의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확실히 채윤이의 몸과 마음이 다시 엄마 아빠에게 가까워졌다. 풍경을 바라보며 즐길 줄도 알고, 심지어 가족이 함께 하는 그 자체가 좋단다. 아빠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뭣이냐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질투가 나진 않고, 약간은 부럽다. 저들의 기럭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회 접시를 앞에 놓고 행복에 겨운 인증샷을 찍으려 했건만 가장 많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현승이는 뿔이 났다. 지금이 먹을 때지, 사진 찍을 때냐는 것. 그래서 마지못해 찍다가 결국 찰칵과 동시에 앵들 밖으로 도망간 현승이, 애매하게 짤린 채윤이. 둘 다 버리고 회와 부부만.  




이유식 할 때부터 웬만하면 뱉는 게 일상이었던 배트맨 현승이가 회를 무지하게 먹어댔다. 그리고 마지막은 매운탕. 매운탕이 나오자 우리 모두 김수영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푹 끓여야 돼. 한참 끓여' 하시는 아버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매운탕을 참 좋아하셨다. 그리고 매운탕의 생선 대가리를 가져다가 '이게 제일 맛있는 거다' 하시며 살뜰하게 발라드셨다. 회를 먹고 매운탕이 나올 즈음에는 소주병이 거의 비어가는 기분이 딱 좋아지시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말씀도 많아지셔서 분위기가 무르익었었나보다. 할아버지와의 그 좋았던 기억이 보글보글 매운탕 남비에 끓고 있었던 것. 점점 아버님을 닮아가는 남편은 회를 먹을 때도 세 식구 먹으라고 안단테로 젓가락질을 한다. 그리고 생선 대가리를 턱 갖다놓고 발라 먹는다. 

 

 


다시 먼 길 운전해야 하는 아빠는 잠시 차에서 눈을 붙이고 셋이서 바다를 즐기기로 한다. 현승인 벌써부터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제꼈고, '야, 나중에 어떻게 할려고?' 하면서 눈살을 찌푸리던 채윤이도 어느 새 벗어 제꼈다. 한참을 놀고 나서 엄마가 커피 마시고 난 종이컵으로 바닷물 떠다 발 씻겨 주기. 세족식을 한다. 바로 깔아서 만들어 본 스냅무비 처녀작이다.   




아이들 어렸을 적 그 유쾌하고 알콩달콩 재미나던 가족여행은 끝났구나, 싶었는데. 아, 그게 끝나긴 끝난 것 같다. 하지만 같이 여행도 다니지도 않을 것 같았던 채윤이가 다시 돌아와주니  모든 게 완전 끝은 아니구나. 하루가 다른 현승이가 또 사춘기를 맞아 어디로 튈지 모르겠지만, 놓아주면 다시 돌아올 날이 있겠구나. 채윤이 말마따나 가족들이 그냥 함께 있기만 해도 좋다는 걸, 나도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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