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봄은 고향이로소이다 본문

음식, 마음의 환대

봄은 고향이로소이다

larinari 2015. 3. 15. 18:01

 

 

 

한때 봄나물 좀 캐던 소녀였다.

교과서에선 '냉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나숭개'라구 불렀다.

나숭개는 뿌리 째 뽑아야 했다.

나숭개 캐고 쑥 캐느라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등짝이 따땃해지는 것이 봄의 기운이었다.

봄이면 하루는 나물을 캐러, 또 하루는 진달래를 꺾으려 다녔다.

웬일인지 나는 나물을 뜯는 속도가 느렸다.

친구들 바구니에 나숭개가 수북해져가는데 나는 아직도 한 줌이다.

어찌어찌 바구니를 채워 집에 돌아왔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내가 캐온 나물이 저녁상에 오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음 날 아침상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캐 온 나물을 그대로 갖다 버렸다.

염소 똥이 있는 곳에서 캐온 것이라는 둥,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나물 뜯으러 간 것을 단지 소꿉놀이 취급을 하고 잘 놀았으니 됐다는 식이었다.

주부가 되고 보니 야생의 냉이(나숭개)로 된장국을 끓이면 그 향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봄내음이다.

 

주로 나숭개를 캐고,

가끔 달래도 캤다.

달래는 흔하지 않아서 수북한 나숭개 더미에 몇 쪽을 얹어갈 수 있으면 운이 좋은 거였다.

어느 날 나물을 캐러 갔는데 달래가 지천인 것이었다.

오메 오메, 이게 달래구나!

살살살살 어르고 달래서 동그란 뿌리까지 제대로 채취해서 집에 가지고 갔다.

역시나 그게 요리가 되어 먹은 기억은 없지만

어디서 이렇게 달래를 많이 캐왔느냐고 칭찬은 받았던 것 같다.

 

어떻게 밝혀졌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알고 보니 야생 달래가 아니라 어느 집 밭이었다.

밭에 키운 달래를 여자애 몇 명이서 알뜰살뜰 뽑아 나눠간 것이다.

엄마가 그 집에 사과를 했던 것도 같고,

아니었던 것도 같고.

주인의 마음이 쉽게 달래졌다면 이처럼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진 않고.

 

장을 보다 달래를 보면 일단 천 원어치라도 달래고 보는 편이다.

달래 간장을 만들어 도토리묵에 끼얹어 내놓고 비빔밥도 해주곤 하는데

이느무 차도식(차거운 도시 식구)들은  내 이런 사연에 도통 관심이 없다.

달래 한 묶음을 사서 된장찌개를 끓였다.

멸치 반 물 반, 이렇게 많이 넣어도 될까, 싶도록 멸치를 빡빡하게 넣어 육수를 냈다.

정선 오일장에서 사 온 표고버섯 가루도 듬뿍 넣었다.

양평의 개척자들 공동체에 강의하고 선사 받은 된장으로 진하게 끓였다.

그리고 달래를 수북하게 얹었다.

국물이 끝내준다.

 

기억 속에만 아련한 고향 생각,

어릴 적 나물 뜯으러 다니던 생각,

엄마가 내가 뜯어온 나물을 장난인 줄 알았던 기억.

갑자기 고향의 봄이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편님 말씀따라_샐러드 스파게티  (2) 2015.05.30
그가 돌아왔다, 냉면을 삶아라  (2) 2015.05.22
봄은 고향이로소이다  (4) 2015.03.15
대리석 스테이크  (4) 2015.03.09
키친이 아트  (0) 2014.12.21
엄마 밥  (4) 2014.11.16
4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