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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SS 영혼의 친구

Sabbath diary13_그림자

larinari 2014.08.29 10:55

 


현승이 개학 전 마지막 월요일이라 어디든 데리고 나가보려 하였다. 체험놀이를 하러 가기엔 늙은 나이, 그렇다고 엄마 아빠 식 데이트 따라가기엔 어린 나이의 현승이는 잠시 고민을 한다. 어디든 데려가겠다고 선택권을 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강공원에 나가서 축구하는 것만 못 한가보다. 점심도 혼자 먹고 친구들과 놀고 수영 다녀오겠단다. '너도 떠나려느냐? 그래, 가라. 네 친구들에게로' 시원 섭섭하게 현승이 떨궈내고 늦게 포천의 평강식물원으로 향했다. 교회에서 어르신들 나들이 많이 가시는 곳이다. 믿음 좋은 장로님이 정성을 다해 기획해서 꾸며놓은 느낌이 물씬 난다. 시어머님 모시고 가면 딱 좋아하실 분위기라서 '다음번엔 어머니 모시고 오자' 하며 걸었다.



가는 길 차 안에서 강의를 하나 같이 들었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세미나였는데 장신대에서 영성신학을 가르치시는 유해룡 교수님 강의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융 심리학의 마음의 구조 이야기다. (실은 나는 이미 뚜껑을 열어서 들었다) 믿는 바와 사는 바가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었고, 나답게 살고 싶었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복잡하기 그지 없는 내면을 정리하며 살고 싶었던 내가 만난 궁극의 학문이 분석심리학이다. 좋은 것을 좋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것이 당연한데, 그 마음이 충천하여 입만 열면 융 드립으로 남편을 꽤 괴롭혔다. 덕분에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융' 일지도 모른다. 아, 그렇게 전도할 기회를 아예 잃어버린 것이라 자책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기대없이 '들어볼래?' 제안을 했는데 의외로 재밌게 잘 듣고 간간이 질문도 한다. 예~

 

 
강의하며 '매력있는 사람' 또는 '성숙한 인격'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 역시 오랜시간 고민했던 것이기도 하다. 요즘은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 성숙한 인격이란 자신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타인에게 말할 여지를 주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사실 우리는 내 약점이나 어두운 부분이 드러내지 않기, 틀어막고 감추고 방어하기 위해 심리적 에너지 대부분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어두운 부분, 의식되지 않은 자아의 부분을 Jung 심리학에서는 '그림자'라고 한다. 무의식 속에 있는 또 다는 '나'이다. 싫고 부적적하다고 느껴져 무의식으로 밀어넣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나'라고 인정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그런데 Jung이 말하는 성숙, 자기실현의 첫 스텝은 그림자를 인식하고 통합해내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것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모른다. 유해룡 교수님은 강의에서 그러시더군. '내가 죽는 일'이라고.



자신의 그림자를 알아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의식에 있다 하지 않는가. 직접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투사'를 통해서 확인된다. 말하자면 내가 수용할 수 없는 내 모습이라 무의식으로 밀어 넣었는데, 누군가 바로 그 짓을 하고 있으면 꼴보기 싫어 견딜 수 없는 것. 투사현상이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싫을수록 그 사람을 더욱 비난하는 것이다. 남편이 내게 물었다. "나는 누구한테 그림자 투사를 하는 것 같아?" 아, 우리는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이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그럴 듯한 내 모습이 아니라 내 어둡고 때로 추악하기도한 모습이 어떤 것 같냐고 묻고 있지 않은가?  함께 이렇게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그림자 인식은 물론 내 어두움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반감된다.  그러면 그림자은 나쁜 것인가? 아니다. '큰 나무에 큰 그림자'라 말하는 것처럼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필수적인 인간의 조건이다. 그러면 융이 말하는 것처럼 그림자를 인식하고 투사를 거두어들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과연 투사를 다 거두어들일 수나 있는가? 난 사실 요즘 이 문제를 끌어 안고 딜레머에 빠져있다.

 

안식 데이트 이틀 후에 MBTI 연구소에 강의 들으러 다녀왔다. 유해룡 교수님 강의와 상관없이 한참 전에 등록해 놓은 것이다. 굳이 들어야 할 외적인 이유는 없다. 이미 들어야 할 강의를 다듣고 강사 자격을 따서 강의한 지가 몇 년인가.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비용과 시간을 지불한다. 때문에 하루 종일 강의 듣는 일이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정말 재.밌.다. 지적인 호기심만은 아니다. 자라고 싶어서이다. 하루 종일 들은 내용은 지난 수 년간 혼자 피나게 공부했던 것들이라 새로운 것은 없다. 현실적인 목적이 있다면 강의할 때 조금 더 쉽게 전달할 방법이 있을까를 얻고 싶은 것이지만, 간절한 열망은 마음과 영혼이 자라고 싶어서이다.



수 년전 강사 자격을 위해 공부하던 과정 중에도 이 강의를 들었었다. 강사는 그때와 바찬가지로 서강대 교수셨던 김정택 신부님이었다. 전에 이 강의를 들을 때 얼마나 졸았는지 모른다.  MBTI와 사랑에 빠진 듯 헤어나오지 못하던 시절이었음에도 융 심리학 강의는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MBTI와의 관련해서도 의미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긴 대학, 대학원 때는 융을 배우지 않았나? 그때도 융은 융이고 나는 나였지. 몇 년 사이의 변화가 놀랍다. 한 마디도 스쳐지나가지 않고 가슴으로 들어오는 강의였는데 단지 '나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강의 하시는 김정택 신부님의 변화이기도 했다. 수 년전 내가 들었던 중급과정에서 분석심리 강의 이후로 새롭게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그 어렵다는 융분석가 과정을 8년을 하셨다고. 계산해보니 과정 마치고 자격을 받으신 것이 은퇴를 불과 몇 년 앞둔 시기이셨을텐데.


원래 내가 강의 듣고나서 궁금한 걸  묻는 스타일이 아닌데, 일빠로 손들고 질문 했다. 융심리학과 기독교 신학과의 관계였다. 학문적으로, 또 신부님 개인의 고백으로 어떻게 정리하고 계신지 물었다. 혼자 공부하며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절실한 의문이었다. 두리뭉술하게 답을 주셨다. 두리뭉술해서 오히려 내게는 명확한 답으로 다가왔다. 융 심리학에서 얻는 유익과 한계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번쩍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진심으로 고개가 끄덕였졌다. Jung은 '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이다' 라고 말했다며 신부님의 생애는 '하나님이 그 자신을 실현하고 드러낸 역사'라고 말씀하셨다.




그림자를 통합시켜 나가는 것은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이다. 내가 그렇게나 부대끼는 저 사람의 저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 지점에 비추어진 내 어두움을 봐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단지 인식하고 투사를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험으론 그렇다. 대상으로부터 투사를 거두어들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온전히 거두어들일 수도 없다. 은총의 빛이 비추어져야 한다. '그 생명 빛은 참된 빛이었다. 그분은 생명에 들어가는 사람 누구나 그 빛 속으로 데려가신다(요한 복음 1장, 메시지 성경)' 죄 없으신 예수님, 그림자 없는 빛 그 자체이신 예수님의 사랑이다. 결국엔 그 사랑의 빛이 참된 성숙에 이르게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자유에 이르게 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그 사랑의 빛은 실제적이어야 한다. 보통은 상담자가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설령 돈을 위해 하는 상담이라 할지라도 사랑 코스프레는 상담자에게 필수조건이다. 심지어 우리는 사랑 코스프레만으로도 감동을 받고 아픈 상처를 내보이게 된다. 하물며 사랑 그 자체라면! 김영봉 목사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쓴물을 받아 마셔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김정택 신부님의 말씀처럼 내 인생도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역사였다. 그 역사 속에서 그나마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다. 성장은 눈꼽 만큼인데 상처로부터 흘러나오는 고름과 신음소리는 길었다. 예수님 많이 닮은 남편이 그 쓴물을 받아 마셔주고 인내해줬기에 이 만큼이라도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심리학 좀 안다고, 에니어그램과 융을 좀 배웠다고 가까이 있는 남편을 얼마나 볶아댔는지. 내 속에 있는 어두움 보는 것이 힘겨워질 때면 남편에게 투사하여 '당신 좀 당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면서.


책 읽기 딱 좋은 식물원 벤치에 잠깐 앉았는데 남편은 차에서 책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당신 잠깐 책 읽어'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어주는 그 마음. 강사료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강의 들으러 다니는데 써도 오히려 격려하는 마음. 아내가 살림을 잘 하는 것보다 마음과 생각이 성숙해지는 것을 훨씬 더 가치롭게 여겨주는 태도. 무엇보다 내 그림자와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추한 모습을 가장 많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가주고, 그로 인해 아파도 포기하지 않는 대화로 이해해주려 하고, 나의 그 많은 약점들에 대해 비밀을 지켜주는 JP. 남편과 함께 융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다니! 이 사람, 나의 융 드립에 질려서 융 드립 커피도 싫어할 지경인데 말이다. 아, 오늘 저녁엔 융 드립 커피 한 잔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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