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분위기 있는 찻잔을 득했습니다. 커피를 내려서 담아놓고 보면 참 예뻐서 카메라질을 하게 만듭니다. 이 잔이 더욱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선사해주신 분이 이걸 고르기 위해서 인사동을 헤집으셨다 하더군요. 가령 내가 인사동 골목에서 그릇 구경을 하다가 위의 잔과 마주쳤다고 합시다. '이쁘다' 하며 들어볼 수 있을지언정 최종적으로 낙점하여 구매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걸 두고 취향이라고 하겠지요. 그 취향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내가 입는 옷, 쓰는 그릇은 어찌나 늘 비슷비슷한지....  요즘 이 잔에 자꾸 손이 갑니다. 그리고 자꾸 바라보게 되는 것이 여간 마음에 드는 게 아닙니다. 내 손으로는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다른 취향이 내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0대 중반에 만난 H는 나랑 참 다릅니다. 다른 게 그냥 다른 게 아니라 나보다 우월한 것으로 느껴져 참 부러웠습니다. 내게는 가장 취약한 점이 H에게는 풍성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내게 없는 것이 H에겐 있다고 느껴졌고 그것으로 스스로 점수를 매겨 H는 우등생, 나는 루저. 라는 생각에 오래 매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중년을 맞이하던 어느 날 '나는 젊었을 때부터 니가 참 부러웠어.'라고 처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때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때부터 입니다. '부러움'이라 이름하고 나니 H에겐 있고 내겐 없다고 느껴지는 성품으로 인해서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닦달했는지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꽤나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우리들의 20대를 돌아보며 한 가닥 한 가닥 엉킨 실타래 풀 듯 함께 하는 여정의 도반이 되어주고 있지요. 그 H로 인해서 어쩌다 또 다른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짧은 시간 만났지만 '진즉 만날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H랑 닮은 구석이 많았습니다. 그분이 인사동을 헤매며 골라서 주신 커피잔입니다.


나와 다른 취향의 H와의 만남, 그 만남이 만들어낸 또 다른 만남. 두 다리를 넘어간 취향은 내가 늘 선망은 하지만 손에 들지 못하는 커피잔 같은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내게 없어서 선망하지만 내게 없다는 이유로 더는 나 자신을 미워하거나 닦달하지 않을 때, 진심으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것은 커피잔의 스타일이기도, 스타일에 대한 취향이기도, 성격이기도, 성품이기도 합니다. 왜곡된 질투가 아니라 진심어린 부러움,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가졌다고 빼앗아 버리고픈 공격성이 아니라 진심으로 찬사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지고 싶습니다. 착한 마음이 결심으로 가져지는 것 아니지만 왠지 앞으론 더 잘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저 커피잔을 마주하면 괜시리 마음 한 자락이 가벼워지고 기분 좋게 간지럽습니다. H와의 긴 이야기와 H가 다리 놓은 짧지만 여운이 긴 만남 또한 담겨져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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