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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키우는 엄마

끝나지 않은 예배, 아니고 육아

larinari 2014. 1. 19. 19:08

 


예배 마치고 혼자 시간을 좀 가지고 싶어 동네 카페에 갔다. 우유 먹고 기저귀 차는 아이들도 아닌데 방학이라 내내 붙어 있는 시간이 참 힘겹다. 내가 책 보고 싶으면 보고 글 쓰고 싶으면 쓰면 될만큼 아이들이 컸는데도 말이다. 읽고 있는 책 진도를 좀 뺄 겸, 틈새 자유를 맛볼 겸 카페를 찾은 것이다. 얼마 안 돼 현승이에게 어디냐는 문자가 왔다. 어디라고 했고, 오지 말라고 했다. 30분이 안 되어 카페 문을 열고 나타났다. 으이그, 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블루 레모네이드를 시켜주니 이가 퍼레지도록 마시다 대뜸 질문을 했다.


♥♥
엄마, 엄마는 현실로 돌아가는 게 어때? 현실로 돌아가는 게 좋아? (이게 무슨 소린고?) 무슨 말이야? 아니, 그러니까.... 이런 데 카페에 있다가 이제 현실로 돌아가잖아. 엄마가 현실로 돌아가면 밥도 하고 일해야 하잖아. 그런 거. 돌아가고 싶어? 엄마는 돌아가고 싶은 것 같아. 나는 아닌데.... (내가 돌아가고 싶겠냐?) 일상, 말하는 거지? 엄마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걸로 보여? 그런 것에 적응이 빠른 것으로 보이는 게 아니고? 맞다! 엄마는 그런 적응이 빠른 것 같아. 나는 적응이 빠르지도 않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예를 들어, 런닝맨에 완전히 빠져서 보고 난 다음에 현실로 돌아오기가 싫고 좀 기분이 이상해. 덕소(할머니 댁)가 좋은 이유는 계속 티브이를 보면서 현실로 빨리 돌아오지 않으니까 좋은 것 같애.


♥♥♥
주일 예배를 마치며 부르는 찬송이 575장 '나 맡은 본분은'이다. 일주일 중 내 마음의 옷깃을 가장 경건하게 여미는 시간이 주일 예배이다. 예배를 마치며 부르는 이 찬송의 2절 가사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 하리'는 마음이 찌릿하여 그냥 넘어가질 못하는 부분이다. '내 형제'에서 두 아이 채윤이와 현승이를 생각한다. 다음 한 주간 두 아이에게 마음으로부터 정성을 다 하는 것, 존중하고, 자유롭게 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30분 일찍 가서 본당을 사수하는 정성과 마음가짐으로 일상에서 아이들을 대할 수 있으면 내 인생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리가 너무 커서 이 부분을 찬송할 때마다 목이 멘다.


♥♥♥♥
큰 아이든 작은 아이든 엄마로 살면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라고 하는 분들 존경한다.(라고 쓰고 뻥 치시네 라고 읽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악질 엄마는 아니다. 나름대로 끼니도 챙기고 같이 놀기도 하고 공부도 봐주고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나는 안다. 아이들과 있는 내 모습이 내 본질과 가장 가깝다는 것을. 예배드릴 때는 물로이고 강의를 마치고 상담을 요청하는 청년들에게 나 참 친절하다. 제자들이 찾아와 만날 때, 통화할 때도 물론 유쾌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하다못해 거리에서 길을 묻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대답하고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떠올릴 때 진정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나름대로 괜찮은 인간의 페르소나를 구가한다.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 엄마 페르소나일 때는 상황이 다르다. 원초적 신경질과 짜증과 악담이 저절로 나온다. 이게 내 본질에 가깝다. 내게 진짜 약자는 밀양의 어르신들이 아니라 채윤이와 현승이다. 난 이 아이들 앞에서 어떤 폭력도 행사할 수 있고, 행사하고 있다.


♥♥♥♥
예배 시간의 나도 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앞에서 분노 폭발하는 나도 나다. (우리 아이들 수수께끼 놀이 중 하나, '중성자 폭탄보다 더 무서워서 터지면 지구가 폭발하는 폭탄은?' 정답은 물론.....ㅜㅜㅜㅜㅜ) 이쪽의 나에서 저쪽 나까지 머나먼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 소명이고 성숙이고 자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멀었다. 인정하고 기도하며 애쓰는 한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낫지는 않겠지만 몇 년 후에는 아주 조금이라도 좁혀질 거라 믿는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상담을 하며 받는 찬사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이상 내 평균점수가 어딘지 잊지 않을 것이다.


♥♥♥♥
블루 레모네이드를 다 마신 현승이는 '엄마, 나 여기 있을까? 아니면 먼저 갈 테니까 혼자 책 더 보고 올래?' 한다. 그리고 홀연히 나갔다. 잠시 엄마에게 런닝맨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시간을 주겠다는 마음이다. 마음에 고인 찬송가 가사를 다시 되뇐다.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 하리' 런닝맨을 보거나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는 카페도 아닌 현실에서 이 가사를 살기란 참으로 어렵겠지만..... 한 줄기 빛은 비치고 있다. 방학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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