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콘서트를 하고 달이 넘어간다. 벌써부터 후기 글을 시작해놓았으나 연일 터지는 막장 뉴스에 뉴스 중독, 분노 중독으로 보내느라 글이 써지질 않았다. 시작해 놓은 글 갖다 버린 것 이 한둘이 아니지만 북 콘서트 나의 여정에 꼭 짚어야 할 분기점이기에. <뉴스앤조이>의 기사가 잘 담아내고 있어서 더하고 뺄 말이 없다. 첫 책 <오우연애>를 내고 북 토크를 했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책이 연달아 나오면서 두 책을 묶어 기획한 것이 이번 행사이다. 아, '기획'의 주어는 출판사, 특히 두 책의 편집을 맡으신 편집장님이다.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편집자님. (하하) 나를 '이선희'로 불러주시니, 급 이선희가 좋아져 판타스틱듀오의 이선희 노래를 듣고 또 들었었다. 그러니까 아이돌이 아니란 뜻이고, 반짝하는 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는 뜻이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오래 가는 작가가 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있다. 간식이며 아이들 돌보는 서비스 등, 오시는 분들을 극진하게 배려하셨지만 그 모든 것은 저자에 대한 극진함인 것을 안다.


[말하기]


순서를 다 마치고 인사하러 나오신 편집장님이 '이 분은 북 토크를 위해서 글을 쓰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하고 농담을 하셨는다. 내 입으로 이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책을 떨자면 '말의 잔치'가 유쾌하게 풍성한 시간이었다. 말이라는 것은 캐치볼을 하듯 던지고 받고, 던지고 받는 맛이 아닌가. 사회자 심 선생은 던진 말을 받아주고 거기에 한 개 얹어서 다시 던지는 최고의 캐치볼 상대이다. 돌아오는 공에 꼭 묻어 있는 것은 재치 한 스푼. 빵빵 터뜨리는 거친 유머에도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말을 찾아볼 수 없으니 타고난 마우스. 북 콘서트 참석했던 현승이 평은 이렇다. "그 쌤이랑 같이 하니까 엄마가 그렇게 오버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아서 좋았어." 그리고 원래 외향형 여자 안 좋아하지만 그 정도로 웃기는 외향형 여자는 좋다고 했다. 엄마도 외향형에 웃기는 여자 아니야 했더니. 엄마 개그는 하도 오래 봐서 질렸다고.


뒷 시간에는 '정신실의 일상 쓰기'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쓰기 강의를 하였다. 다들 아는 얘기가 아닐까, 너무 어려운 말을 늘어놓는 건 아닌가 싶었다. 풍성한 말의 잔치 후에는 어김없이 텅 빈 느낌이 밀려든다. 집에 돌아와 앉아 내 얘기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까발렸다는 후회, 부끄러움, 공허감으로 힘겨웠다. 말은 늘 그렇다. 말이 주는 충만함은 이내 공허감으로 돌아오니 이것 참 딜레머이다. 갈수록 강의 후 공허감 증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말하기는 위험하다.


[듣기]


출판사 본부장님께서 몇 명쯤 올 것 같냐고 물으셨는데 10명..... 도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40명이 넘게 모였다. 토크쇼를 하는 두 사람의 소통만 캐치볼이 아니다. 독자와 저자 역시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재미 있고 재미있어 계속할 힘이 나고, 계속된 무엇이 마침표을 찍을 때는 재미 끝 의미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 계속 이야기할 맛이 났고, 힘이 났는데 그 이유는 오신 분들의 눈빛으로 전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블로그 인연, 한영교회 인연, 100주년 교회 인연, 에니어그램 세미나 인연, 책 인연, 출판사 인연, 지인의 지인 인연.... 심지어 수년 전 잊었던 어느 강의 인연으로 군대 말년 휴가를 나온 국군장병 형제도 찾아와주었다. 모든 분들의 발걸음은 이미 어떤 마음의 소리이고, 나는 그것을 듣는다. 덜 말하고 더 듣는 것은 언제나 옳다.


[쓰기]


'정신실의 일상 쓰기'라는 제목에 담은 이야기는 나는 왜 썼는가? 중학교 1학년 어린 나이부터 왜 그렇게 써댔는가? 자문자답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쓰는 행위 자체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것에 세월이 더해질 때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나의 이야기이다. (자세한 내용은 안 알랴줌이다) 돌이켜보면 '쓰기'는 내가 단지 쓰기가 아니라 존재를 견딤이고,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질문이고, 동의할 수 없는 가르침들에 대한 반항이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 일기장이든 이 블로그의 요즘 글이든 마찬가지이다. 알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글의 첫 문장을 시작은 유치함과 지질함이다. 결국 지속적인 글쓰기는 나의 나됨을 살고 싶은 갈망이었고, 덕.분.에. 나는 갈수록 나의 나됨에 관한 산더미 같은 질문에 둘러싸여 있다. 그 질문을 나누며 독자를 얻고, 수강생을 얻으며 살고 있다. '쓰기'는 내 인생의 선물이다.


[읽기] 


쓰기 못지 않게 읽기에도 집착하는 터라. 집착하는 만큼 과시하고픈 욕망도 크다. 한때는 읽는 책마다 포스팅을 하고 싶어서 안달을 했었다.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는 글쓰기의 철칙은 예외 없다. 강의나 글이나 매 한 가지. 북 콘서트를 앞두고, 특히 짧은 글쓰기 강의를 준비하면서 다시 폐인 모드로 지냈다. 늘 그런 식이다. 어떤 강의나 글을 앞두고는 여자임에도 얼굴에 수염 덥수룩한 기세로 지낸다. 당일이 되면 면도 하고, 화장 하고, 드라이 하고 포장잘 된 정신실의 얼굴을 하고 집을 나서는 것. 집을 나서기 전 공들여 하는 화장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읽고, 배우고 싶다. 예쁘게 화장하고 예쁜 옷 입는 것, 내게는 포기하지 못할 일이라...... 잘 꾸며놓은 겉이 부끄럽지 않게 속에도 뭔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읽기에 집착한다. 북 콘서트 당일 오전에 노트북을 끄면서 옆에 널린 책을 보아 쌓아보니 이런 사진이 되었다. 강의에 단 한 줄도 인용하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뿌듯하다. 엄청 뿌듯하다. 읽기의 묘미는 티나지 않음이니까.


**** 함께 해주신 분들께 뒤늦게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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