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버리는 것 아깝지만, 더 아까운 것은 손이 많이 간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김치. 담근 사람을 알 때는 물론이거니와 어쩌다 한 다리 두 다리 건너온 김치라도 그렇다. 묵은지라는 이름의 배추김치는 시어 꼬부라져도 김치찌개로, 김치찜으로, 활용도가 높은데. 다른 김치들, 특히 무로 만든 김치들은 어쩔 수 없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시판 인스턴트 볶음밥(비비고 차돌 깍두기 볶음밥)을 보고 무김치도 볶음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라면을 부르는 김치"라는 이름으로 섞박지 한 통을 얻었다. 라면을 불러 충분히 즐겨보지도 못하고 시어버렸다. 라면은 틀렸고, 스팸을 부르고 그다음 밥을 불러들여 볶음밥이 되었다. 맛있다. 볶음밥 킬러 남편은 먹으면서 운다. "어떡하지? 반 밖에 안 남았어. 여보, 어떡하지? 밥이 자꾸 없어져..." 누가 어디서 담갔는지 모르는 시어버린 섞박지를 마지막 한 조각까지 알뜰하게 먹으려고 한다. 이 김치를 담근 손에 복을 내려주세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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