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만 업쒀~어!
여긴 내 공간이야아~!
이거 치우라고!
여기 앉아 있찌 말라고~오!"
라고 강짜를 놓으며 살고 있는데, 올여름은 좀 진심 미안하게 되고 있다.

말하자면 거실 탁자가 작업실인데, 글이 안 써지고 강의 준비가 풀리지 않으면 옆에 알짱거리는 아무라도 붙들고 신경질을 낸다. 너 때문에 지금 정신 산란해서 글이 안 써지는 거야!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집중을 할 수 있겠냐고! 그러고 보면 내 성질에 딱 맞는 작업실이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내게, 어떻게든 사람과의 끈이 있어야 일을 하는 내게 말이다. 그런데 여름이고, 뜻밖의 줌 강의가 상시로 있는 요즘. 에어컨 있는 유일한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으니 보통 미안한 일이 아니다. 가족들은 각자 자기 방에 갇혀 선풍기 하나 씩 끌어안고 더운 공기를 돌리며 버티고 있다. 찍소리도 못 내고... 강의 쉬는 시간이면 찜질방 가족들 숨 쉬는 시간. "하아, 쉬는 시간이야?" 하고 나와 물 마시고, 에어컨 쐬고 들어간다. 과연 현승이가 별명을 잘 지었지. '마키아신실', JP&SS는 종필과 신실의 사랑이 아니라 '조폭신실'. 올여름 가족들에게 진심 미안하게 생각함. "미안해, 내 방이 제일 좋아!"

온종일 밥하고 먹을 때 외에는 거실 탁자에 앉아 있다. 일찍 자러 들어갔다 아침에 나온 현승이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 나를 보면 "엄마, 설마 어젯밤 그 상태로 밤새고 앉아 있는 건 아니지?"라고 한다. 안 놀아주고 노트북과 책만 들여다보는 엄마의 주의를 끌기 위해 별 짓을 다 하기도 한다. 현승이 어떤 면에서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인데, 방학이라 어디 발휘할 데도 없고, 그렇다고 전처럼 시를 쓰거나 하지도 않으니 쓸데없는 곳에 창의성을 과소비하고 있다. "현승아, 주방 가는 길에 냉장고에 있는 보이차 좀 갖다 줘." 주문하고 하던 일 하고 있으면, 괴이하고 귀여운 알바 복장으로 배달을 온다던가. 책상 위 아무거나를 걸치고 나와 노트북 너머에 가만 앉아 있는다든가, 호롱불 들고 베란다로 나가 유리창 사이에 두고 얼굴을 들이밀기도 한다. 적극적일 때는 남매가 같이 엽기춤을 만들어 말없이 추고 사라지기도.

쓸데없이 낭비하는 어떤 것들이 더운 격리 세상을 버티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 창의력이라는 것이 폭발하는 현승이 사진들 올렸다 심의에 걸려 바로 내렸습니다. 줌 강의 준비하며 카메라를 거울 삼아 단장하는 엄마와 엄마를 찍는 채윤이, 엽기 댄스 추는 남매 사진 정도 허락받아 걸어봅니다. 조폭신실, 마키아신실 다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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