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사춘기. 내가 '신앙 사춘기'에 대한 글이나 강의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데. 진짜 사춘기가 그렇다. "엄마, 나랑 산책 한 번 할까? 오늘 한 번도 안 나갔잖아?" "오늘 친구랑 미금역에서 죽전역까지 걸었어. 얘기하면서 걸었지." 현승이가 이런 말을 할 때, '녀석 사춘기가 완전히 끝났네'라고 생각한다. 사춘기를 알리는 여러 지표가 있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걷기 싫어하기'로 그 신호탄을 터트렸다. 채윤이 5학년 때, 영월 하루 여행 갔다가 '걷기 싫어하기' 증상이 발현하여 '한반도 지형'을 코앞에 두고 보지 못하고 돌아온 일은 유명한 일화다. 그 어간 설악산에 가서 흔들바위까지 걷고 돌아오는데, 어르고 달래고 혼내면서 울산바위 올랐다 내려온 에너지를 썼다고나 할까. 여행 가서 '기분 잡치기'의 시작은 생각해보면 '걷기'에 있다. 여하튼 두 아이 다 사춘기가 끝나고 집에서나 밖에서나 크게 문제가 없다. 성향이 다른 성인 넷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느낌. 여름휴가에서 모처럼 속 뒤집어지는 걸 경험했다. 날씨도 선선하여 걷기 딱 좋은 날씨, 양떼목장을 걷는 느낌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쓰레빠 신고 마스크로 가린 입이 댓 발 나온 한 녀석만 아니었으면 완벽했는데. 속은 뒤집어지지만 기분까지 잡치지 않기 위해 피차 조심하다 조용히 타협했다. "나는 저 아래 가서 기다리고 있을래. 셋이 갔다 와." 하이고, 바로 내가 하려던 말이었다. 셋이 마음 편히 신나게 걷고 사진 찍고 돌아 내려오니 나무 아래 저러고 먼 산 보고 앉아 계시는 분. 사춘기는 지나갈 듯 지나갈 듯, 쉽게 끝나지 않는다.

엄마빠 사이에서 '우웃짜' 하면 걷는 것 좋아하는 유아기.
엄마빠랑 어딜 가도 좋아서 뛰고 날고 하는 아동기.
엄마빠랑 어디 가는 게 귀찮고 싫고, 특히 걸어가는 건 더 싫은 사춘기.
엄마빠랑 어디 갈 때마다 맥락없는 지랄 떨었던 사춘기 시절에 대한 성찰과 함께 미안함으로 애써 함께 잘 놀아주는 성인 초기.
(여기까지 키워봤다.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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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쩌다)
걷는 게 무조건 좋은 중년기.


걷기로 보는 생애 발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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