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간다고 나서던 채윤이가 돌아서며 말했다. "아우, 귀여워. 귀여운 엄마를 두고 나가는 게 싫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이게 무슨 '하룻강아지 범 귀여워하는' 소리냐. (어쩔 수 없는 것이 하룻강아지 사이즈가 범을 압도하여! 엑스라지 사이즈 하룻강아지가 아침에 일어나 스몰 에스 범에게 "엄마아~"하고 달려들어 안기면, 안기는 게 아니라 '엄마아~'를 폭 안아주는 형국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귀여운 아이 두고 출근하는 심정은 엄마가 안다. 니 어릴 적에, 증말 귀여워 미칠 것 같은 니를 두고 출근하는 엄마 마음이 그랬느니라,라고 말했더니. 으으...(닭살)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하고 나갔다. 아, 자기 두고 출근하는 게 뭐가 그리 아쉬웠냐고 엑스라지 사이즈 하룻강아지가 물었다. "니가 하루 종일 순간순간 귀여울 텐데, 그 순간을 놓치는 게 아쉬웠어."라고 나오는 대로 답을 했더니. 아, 그게 아쉬웠던 거구나 깨달아졌다. 

 

지금 이 순간,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것처럼 아쉬운 것이 없지. 치명적인 손해지.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다 어느 새 보면 날이 어두워져 있다. 요기까지만 쓰고 나가야지, 몇 페이지까지만 읽고 나가야지, 하다 보면 결국 나가지 못한다. 이 좋은 날들, 지금 이 순간을 자꾸 놓친다. 며칠 전에도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고 뭉기적대고 있는데 귀는 아니고 마음인지 어딘지에서 막 이 가사가 막 울렸다.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 들은 체하려나" 고개 돌려 베란다 밖 하늘을 보니 거기서 나는 소리였나 싶기도 하고... "이런 날에 집구석에 처박혀서 책이나 파고 이겠다고? 미쳤어, 미쳤어." 하는 소리로도 들렸다. 그렇게 끌려 나간다. 이 소중한 순간을 놓칠 거야? 하는 소리에.

 

이 동네 참 희한하다. 탄천을 따라 산책 하는데, 그 옆길로 살짝 올라가면 농로다. 논이 있으니까 농로겠지? 논을 지나 보이는 차들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이다. 깜짝 놀랐다. 한동안 안 찾았더니 그새 겨울 논이 되어버린 것이다. 불과 한 달 전에는 채 황금물결도 되기 전이었다. 곧 황금물결이겠네. 꼭 와서 봐야지. 결심했었는데, 놓치고 말았다. 어느새 추수 끝난 텅 빈 겨울 논이 되고 말았다. 소중한 순간은 이렇게 놓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의 은혜'는 늘 지금 여기의 은혜이다. 주님의 은혜를 아니 받고 못 들은 체하면 이렇게 된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게 된다. 놓치고 나서는 아쉬워해도 소용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겨울 논을 즐기는 수밖에 없다. 엑스라지 사이즈가 된 하룻강아지 딸의 품에 안겨 즐기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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