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복 셰프가 알려준 그대로 고추잡채를 해봤다. 이제껏 고추잡채 중 제일 맛있다는 평이 압도적인가 하면. "맛있긴 한데 뭔가 평범하다. 나는 엄마 식 고추잡채가 좋다. 급식에서 먹었던 것과 맛이 똑같다.(두 아이 모두 중국집 고추잡채를 먹어본 적이 없음. 집 아닌 다른 곳에서 먹었다면 오직 급식.) 엄마 고유의 맛이 있다."라는 평도 있었다. 채윤이 평가이다. 이런 피드백 좋아한다.

현승이는 나중에 "이연복 셰프가 중식 전문이잖아. 무슨 명언을 남긴 게 있어. 엄마 알아?” 한 마디에 '이연복 명언, 이연복 띵언...' 엄청 검색해봤다. 저도 '뭐였더라, 뭐였더라' 한참 검색하더니 못 찾겠다 포기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건진 띵언이다. "가르쳐줘도 따라 할 사람만 하지 게으른 사람은 안 해요." 사실 나도 고유한 레시피 거침없이 유포하는 편이다. 요리는 특별한 걸 하는 게 없지만, 영성심리와 마음의 여정에 관한 한 나름의 팔살기 레시피가 있다는 자의식이다. 묻는 이에게, 필요한 이에게 아낌없이 공개한다. 나만의 레시피, 도서 목록, 통찰들.

가르쳐줘도 안 할 사람은 안 한다. 내가 몰랐던 것은 그것이다. 아니, 모르고 싶었던. 가르쳐주면 그대로 할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그대로 하기만 하면 비밀병기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태도였다. 가르쳐줘도 하는 사람만 한다! 그렇지! 이런 태도라면 피 땀 눈물이 담긴 레시피 공개해놓고 속 끓일 일 없겠고만. 10년 넘게 그때그때 한 권의 책, 한 사람의 저자를 만나면서 그 저자가 소개하는 또 다른 저자와 소개팅하고 사귀면서 살아왔다. 누가 알려주는 길이 아니었다. 더듬더듬 홀로 만들어온 길이라, 누군가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다면 과도하게 정보 투하하곤 했었다. 물론 나처럼 처절하게 읽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즈음엔 연구소 SNS든 블로그든 책 리뷰를 하지 못하고 있다. 나처럼 읽지 않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나처럼 읽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좋은 책들을 눈팅하거나 사놓고는 다 안다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까지 닿았다. 여기 닿기까지 나는 얼마나 헤맸던가. 사람 사람 마음의 여정이 고유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 고유함이 끝이 어딘지를 모르며 안다고 착각한 것이다. 기꺼이 공개해 온 레시피에 담긴 내 고독의 몸부림이 민망해 하며 배워가는 중이다. 사람 사람의 고유함을.

요리 고수가 되긴 멀었다. 이연복 쉐프처럼 "어차피 안 할 사람은 안 해요." 아직 그리 쿨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쯤 되면 뭣이 중헌지 헛갈리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나는 어떤 레시피들을 목록으로 저장해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적절한 레시피를 만나면 가능한 바로 해서 먹고 먹이기로 했다. 많은 레시피를 저장해 두고 마치 요리를 한 것처럼, 심지어 먹은 것처럼 착각하며 살진 않기로. 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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