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도시락 세 개를 쌌다. 모의고사 보러 가는 현승이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출근하는 JP의 도시락을 싸는데 연습실 가는 채윤이도 "나도 싸갈까?" 했다. 셋이 각각 다른 곳에서 같은 밥을 먹는 것이다. 이게 뭐라고, 마음이 찡하지? 사진의 도시락은 요즘 꼭 남매같이 지내는 아빠와 딸의 것이다. 채윤이가 교회 근처에서 알바 중이라 출퇴근 길에 자주 함께 하고 있다. 띡띡띡띡, 투닥투닥... 현관 번호키 누르는 소리와 투닥거리는 소리가 둘의 퇴근을 알린다.

종끼~이, 종끼 싫어. 핵 싫어.
윤채, 윤채, 나도 너 싫어.
으으으으, 종끼 아빠!
으으으으, 윤채 김!

그러다 어떨 땐 육탄전까지. 먼저 시작하고 나중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쪽은 윤채 쪽이다. 고3 현승이가 야자 하느라 밤이 늦어야 집에 오니 싸울 시간이 없고. 갈고닦은 전투력을 아빠에게 쏟아붓고 있는지. 메롱메롱 유치 찬란한 남매 아니 부녀간 싸움이 볼만 하다. 불쌍한 JP. 이기는 적이 없다. 나름 유치 찬란 말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선전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승기가 아빠 쪽으로 기우는 중, "아빠,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한 마디에 순간 JP 움찔. "아빠, 움찔하는 거 다 봤어! 내가 이겼어. 무섭지?" "뭐, 뭐, 뭐? 뭘 일러?" "소용없어, 내가 이겼어."

토요일 아침, 똑같은 도시락 두 개를 준비하는 동안 둘은 계속 투닥투닥. 종끼 아빠는 거실에서 빨래를 정리하면서, 윤채김은 제 방에서 머리를 말리면서, 각자 볼 일 보면서도 투닥투닥. 그리고 같은 도시락을 들고 나란히 출근했다. 물론 현관에서 신발 신으면서도 빨리 해라, 하고 있다, 비켜라, 말아라, 투닥투닥.

진지하게 보는 첫 모의고사 중 현승이가 먹을 점심, 조용한 교회당 사무실에서 설교 준비 하다 먹을 점심, 좁다란 연습실에서 이어폰 꽂고 드라마 짤 보면서 먹을 점심. 이 시간쯤 따로 똑같이 먹을 점심 풍경을 그려본다. 소중한 님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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