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가 없으면 하나님이 주신 일이 아니다.
# 실패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일이 아니다.

교회 젊은 부부들과 함께 하는 육아 세미나를 마쳤다. 『타고나는 부모는 없다』 오래된 책이고 고리타분한 책이다. 그럼에도 함께 읽을 충분한 가치가 있어서 선택했다. 육아의 기술이란 없고, 기독교 상담을 한다는 아빠의 실패담만 넘친다. 알 듯 모를 듯한 육아 원칙은 요즘 엄마 아빠들에게는 쉽게 다가가지도 않는 것 같다. 여백이 많은 책이다. 그래서 선택했다. 마지막 챕터는 '놀이'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책을 썼다면 "아이들은 그 어느 때도 아닌, 부모가 놀아줄 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라고 썼을 텐데. 역시나... '놀이에 대한 신학적 이해' 같은 소제목의 글로 '재미'를 쏙 빼고 글을 쓰셨다.

그러면서 결론은 위의 두 문장이다. 그러니까 단지 아이와 놀아주는 얘기가 아니다. 육아를 아이와 함께 하는 긴 놀이로 보는 것이다. 조금 확장하면 인생 자체를 놀이로 보자는 말이었는데. 성과에 목숨 걸지 말고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자는 뜻으로 나는 읽었다. 소명으로서의 놀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부여하신 소명은 "놀다 와라, 잘 놀다 와라"이다. 그러니 재미가 있어야 하고, 실패도 있어야 한다. 정말 나는 찰떡같이 알아들어진다.

모임 마지막에 그렇게 말했다. "저는, 저와 현승이는 지금 대학입시 놀이 중이에요!" 말하고 나니 더욱 믿어졌다. 맞아, 결과 하나가 아니라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거야. 과정 하나하나를 즐기기 때문에 재미가 있고. 실패가 있어서 심장이 쫄리고 잠시 하늘이 내려앉기도 하지만, 과정이니까...

과연 실패도 있고, 재미도 있는 대입의 과정이었다. 잠시 희망의 속삭임이 마음을 간지르기도, 실패감의 먹구름이 덮치기도 하였다. 현승이 어깨가 툭 떨어지고, 말이 없어지자 가족 모두 생기를 잃었다. 슬픔과 막막함에 휩싸이기도 했다. 우리 현승이, 좋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보석 같은 선생님들을 만난 덕에 하루 이틀 고통의 터널을 지나 다시 희망을 붙들기로 했다. 고통 회피를 위한 긍정적 해석이 아니라 '큰 그림을 보자'는 뜻을 품게 되었다.

입맛을 돋궈서 밥이라도 많이 먹이려고 저녁으로 좋아하는 삼겹살과 파김치를 준비했다. '큰 그림'을 안고 학교에서 돌아온 현승이 얼굴이 편안하고 밝았다. 전날 저녁에는 꽉 막혔던 대화의 길도 활짝 열렸다. 둘이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구운 삼겹살과 파김치를 두고 기나긴 이야기를 나눴다. 대입을 통과하고 뽀개는 재미, 실패를 마주하고 일어서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말을 잘한 거다. 우리는 대학입시 놀이 중이다.

현승이가 이번 가을에 혼자 먹은 파김치가 5kg이다. 3kg 씩 두 번 주문해서 거의 혼자 다 먹었다. 뜨거운 밥에 먹고, 짜파게티에 먹고, 삼겹살에 구워 먹고... 심지어 수능시험 보는 날 도시락 반찬 뭘 싸줄까 했더니 파김치를 주문할 정도. 파김치 5kg 먹어 치우면서 행복한 대입 준비였다. 여러 번 말했지만 행복 등급으로 치면 1등급, 대한민국 고3 상위 5%였다.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대학 입시 놀이 잘 끝났다. 재미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일이 아니다. 실패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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