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죽음을 생각한다. 벌써 손에 넣고 사순시기를 기다렸다. 사순절 묵상집 『기억하라, Memento Mori,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과 함께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다. 죽음을 생각한다. 돌아보면 평생 죽음을 생각하며 살았다. 나의 영적인 여정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 죽음을 믿지 않기 위해 신앙에 매달렸고 착한 삶에 매달렸다. 죽음이 두려우니 삶이 두려웠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죽음은 대림시기이다. 교회력으로 시작하는 새해이다. 내 마음의 교회력은 죽음으로 시작하였다. 그렇게 40여 년을 살았다. 죽음을 피하기 위하기 위한 삶이었다. 곧 엄마 3주기이다. 엄마는 사순시기에 돌아가셨다. 그야말로 죽음과 수난의 시기이다. 내 인생이 여기까지 왔다.

 

대림시기는 소망의 시간이건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내 인생은 절망의 시간이 되었다. 대림시기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절망으로 시작한 여정이기에 기다림과 그리움의 인생이 되었다. 아버지 죽음은 역설적으로 나를 기다리는 사람, 소망하는 사람이 되게 하였다. 40여 년 기다림의 시간 동안 죽음이 조금씩 덜 두려워졌고, 엄마의 죽음으로 큰 선물을 받았다. 언제든 도망갈 태세를 취하고 죽음을 바라보았다면,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은 오롯이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봄이 오건 말건, 꽃이 피건 말건 충분히 울고 주저앉아 있으니 공포도 슬픔도 흘러가고 없는 것이 되었다. 슬픔을 슬퍼하는 일, 슬픔을 쓰는 일』이 되었다. 내 인생, 슬픔의 시작도  '쓰는 일'의 시작도 아버지 죽음이다. 엄마가 큰 선물을 주고 떠났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피하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기억하라! 

 

이 선물은 이미 2000년 전에 나의 예수님께 받은 선물이다. 해마다 그것을 재차 확인하는 시절이 사순기간이다. 죽음이 두려울수록 믿음이 뒤틀렸었다. 고백컨대, 십자가의 달린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었던 때가 2008년 사순기간이었다. 그전까지 십자가 예수님께 눈을 맞추지 못했다. 어서 빨리 부활절이 오기를... 부활의 예수님만 영혼을 다해 갈구했다. 아버지 죽음으로 겨울산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현승이를 품고 맞던 겨울이 생각난다. 일하던 치료실의 창가 책상에 앉으면 키 큰 미루나무들이 보였다. 뱃속 아기에게 "기쁨아, 괜찮아. 겨울이 갈 거야. 저 나무에 푸르른 잎이 돋으면 우리 만나. 겨울이 갈 거야." 이렇게 말을 걸었었다. 뭐가 괜찮다는 건가? 겨울이 뭘 어쨌다고? 겨울 그 자체로 죽음이고 폭력 같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맞은 겨울이 그랬고, 그 이후의 모든 겨울이 그랬으니까. 뱃속 아기에게 그 말을 건네며 처음 인식했던 것 같다. 겨울 풍경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겨울이란 계절을 없는 것으로 치고 살려하는지.

 

이제 그렇지 않다. 나목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느낀다. 겨울 산에 걸린 노을이 그 어떤 풍경보다 좋다. 그걸 보러 부러 산책을 나간다. 아버지와 엄마의 죽음 또는 사랑의 선물이다. 이제야 받아 누리지만 그리 늦지도 않은 타이밍이다. 대림절 아버지의 죽음, 사순절 엄마의 죽음. 그러고 보니 채윤이는 대림 직전에 태어났고 현승인 부활절 직후에 태어났다. 그 죽음의 시간의 시작과 끝에 나는 두 생명을 낳았네!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 없는 빛나는 생명인데. 이 두 생명으로 천국의 기쁨과 지옥의 고통을 함께 맛보며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는데. 놀라운 발견이다. 이런 걸 두고 더는 '우연'이라 말하지 않는다. '신비'라고 말한다. 내 인생의 신비, 죽음의 신비, 생명의 신비. 

 

만물이 소생하는 봄 아침은 죽음을 생각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기억하라, Memento Mori,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중년 인생의 사순절 묵상집으로 딱이다.

 

 

2013년에 리얼 이랬었었었었다고.... ↓↓↓

 

 

Sabbath diary8_쓸쓸한 산

그 : 여보, 저기 봐. 멋지지? 수묵화 같은 모노톤의 산이 좋다. 나는 약간 쓸쓸함이 있는 느낌이 좋아. 나 : 나는 쓸쓸한 산 안 좋아해. 특히 막 시작되는 쓸쓸함은 더더욱...... (몇 년의 내적작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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