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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마음의 환대

잘 해먹고 사는 일

by larinari 2025. 8. 26.

 
오빠가 갓 잡은 싱싱한 꽃게를 잔뜩 보내주셨다. "신실이가 게를 좋아하잖니..." 싱싱한 그대로 빨리 먹는 게 보답인데, 저녁에 바로 찌기로 했다. 둘이 먹을 양이 아니다. 게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초대할 분이 계셔서 얼마나 좋았는지. 나란 사람, "벙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샐러드 가져오시고 호박전 하나 부쳤더니 근사해졌다. 입가심으로 잘 삭혀서 간직한 오이김치로 국수를 해드렸더니, 허튼 말 없는 담백한 언니님께서 한 마디 해주셨다. "잘해 먹고 사네~!" 이 말이 그렇게 좋네.
 

 
살림 대충 하고 산다. 장도 잘 안 보고... 어글리어스 마켓에서 배송받는 못난이 채소를 썩히지 않는 수준으로 근근히 그때그때 끌리는 음식을 해 먹는다. 음식도 벙개로 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도 해놓으면 웬만하면 맛있다. 내가 한 요리가 맛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나는 요리가 재미있다. 가볍게 점심을 먹고 싶어서 샐러드 파스타를 했다. 시들어 죽어가기 직전의 야채들 심폐소생 요리였다.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으니 더 맛있었다.
 

 

갑자기 올라오신 시아버지가 가져오셨다는 튼실한 오징어를 H가 갑자기 안겨주었다. 다른 것 말고, 찌개와 밥이 고픈 저녁에 오징어 찌개를 했다. 미역오이 초무침도 하고. 밥을 푸는데 왈칵 마음이 또 쓰렸다. 콩밥을 하면 일단 나와 남편 밥에 콩을 죄 쓸어 담는다. 아이들 밥에 콩이 들어가지 않게, 냉동해 놓을 나머지 밥에도 콩이 섞이지 않게. 그래서 밥을 풀 때 밥솥 바닥까지 뒤집는 법이 없었다. 습관대로 위에 있는 콩을 거둬내며 살살 밥을 푸고 보니...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 콩 골라낼 아이들이 없네. 제일 싼 밥이 5불짜리 조각 피자인데, 그것도 비싸다고 걱정하는 채윤이가 이 찌개를 보면 먹고 싶을 텐데... 포스팅하지 말까? 생각했다.
 

 

채윤이 가고, 휴가 나온 현승이 들어가고 며칠 여행하며 봉평의 묵집에 갔었다. 몇 해 전에 아이들과 함께 가서 정말 맛있게 먹은 집이다. 묵과 보쌈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는둥 마는 둥 하고 나왔다. 이심전심 아이들 생각에 둘 다 음식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던 것. 채윤이가 죽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생각나고 마음이 쓰이니 어쩌겠는가. 
 
엄마 돌아가시고 슬픔에 늪에 빠져 비정상적으로 살 때 그런 결심을 했었다. 다시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해주지 말자, 다시는 아이들과 좋은 추억될 일 만들지 말자, 알콩달콩 재밌는 대화도 말자. 이게 다 내가 죽고 없어진 후에 아이들에게 슬픔과 그리움이 될 것이니... 그딴 것 만들지 말자. 물론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 슬픔은 지나갔다. 불량 엄마라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온전히 떨칠 길은 없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들 잘 해먹이며 키웠다. 영영가 있는 것, 유기농 재료 이런 것으로 먹이진 못했다.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걸 최대한 맛있게 해 주고. "아, 뭐 먹고 싶다" 이런 말을 들으면 놓치지 않았다.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저격" 요리이다. 먹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헤아려 만드는 요리. 아이들 먹이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그 순간순간이 선물이었다.
 
남편과 둘이 먹는 밥을 그때그때 이것저것 맛있게 해먹고 있다. 맞아, 우리 처음 가족은 이랬었지. 둘이 2인용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었었지. 처음 하는 살림에, 자주 엄마에게 전화 걸었었다. 엄마 된장찌개 어떻게 끓어야 맛있어? 도라지초무침 어떻게 해? 오직 남편을 위해서 밥을 했었네. 치즈로 하트 만들어서 도시락 위에 올려주기도 했었다. 남편만을 위한 밥을 해본지가 오래됐구나. 남편 취향만 생각했던 때가 오래 전이다. 뭘 먹고 싶다 말하는 남편이 아니니까. 두 아이 취향에 맞춰 음식을 했었네. 아주 그냥 JP 요즘 사랑을 독차지하고 좋아 죽고 계시다.
 
잘해 먹으려 한다. 포스팅도 계속할 것이다. 피자로 저녁 먹은 우리 채윤이가 엄마 음식 보고 그립겠지만 말이다. 엄마 아빠가 잘해 먹고사는 걸 무엇보다 좋아할 것이고. 나 역시 우리 채윤이가 그곳의 일상을 즐겁게 신나게 사는 것이 제일 큰 위안이니까 말이다. 잘해 먹고살다, 아이들이 곁에 오면 또 잘해주면 되는 거지. 잘 해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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