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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마음의 환대

4인분 같은 1인분 상을 차리고

by larinari 2025. 9. 21.

 

아들이 오신다! 가슴이 뛴다. "엄마는 너무 설레"라고 말하는 건 좀 못하겠다, 이젠. 벌써 몇 번째 나오는 휴가 "우리 아들 휴가 나와요, 너무 좋아요."라고 떠벌이는 것도 그렇고. 엄마도 아빠도 자기 일이 있고, 휴가 나온 아들도 제 계획이 있으니, 휴가 며칠 동안 세 식구가 한 상에 앉을 기회도 없다.
 
휴가 나온 날 밥만 차려주고 부랴부랴 나가야 했기 때문에 설렘에 분주함까지 한 스푼이어서 양념 숟가락 잡은 손이 살짝 떨렸다. 냉동실에 꽁꽁 얼려둔 간장게장을 해동하고, 통삼겹살 김치찜도 했다. 둘 다 "2인 이상 주문" 메뉴이지만, 한때 단골이었는데 갈수록 너무나 뜸하게 오시는 귀한 고갱님이니까 막 퍼주기로! 4인분 같은 1인분 밥상을 차려주었다. 
 
80이 넘도록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해줬던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 나가서 밥 먹을 거야. 맛있는 거 사드릴게." 하고 흑석동 엄마 집에 가면 현관 계단에서부터 생선 굽는 냄새가 났다. 우리 채윤이 좋아하는 뭐, 김서방 좋아하는 뭐, 신실이 좋아하는 뭐... 밥이 딱 차려져 있었지. 그러면 나는 신경질을 냈다. "아니, 나가서 먹는다는데 왜애?!!!" 지난 달 그 메뉴의 그 밥상, 아니 늘 같은 메뉴의 그 밥상. 
 
조기를 굽고 부추 샐러드를 무치는 엄마 손도 설레서 떨렸겠구나 싶다.   
그리웠어, 보고 싶었어... 라는 말 대신 밥을 차렸나 봐. 우리 엄마도.
 
내 앞에서 처묵처묵 밥을 먹는 아이를 보면서 벌써 이 아이가 그립다. 그립다고 말하니 꾹꾹 눌러 놓았던 그리움이 막 밀려온다. "현승이가 오니 채윤이가 보고 싶네..." 유학 생활, 적응하며 공부하는데 힘든 일이 하나 둘이 아닐 텐데 관성처럼 하는 걱정은 밥 걱정이다. "밥은 먹었어? 힘든 날은 돈 아끼지 말고 맛있는 거 먹어." 메뉴가 달라지지 않았던 흑석동 엄마의 밥상처럼 같은 말만 나온다.
 
밥상 가득한 그리움이 오늘 분량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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