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4/19

1. 유치원 면담 갔다 오다.
작년에 선생님 면담에서 그저 잘한다 잘한다 얘기만 들어서 이번에는 좀 맘 먹고 갔었다. 채윤이가 유치원에서 잘 못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들어야겠다고.
예상했던 얘기들이었다. 이해력이나 언어표현이 좀 빠른 아이가 가진 단점들이 유치원 생활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면담을 마쳤다. 약간 속이 상하기는 했다. 채윤이가 말만 잘했지 아직 만 네 살 밖에 안 먹은 아이인데...선생님은 말이 빠르다고 정서적으로도 어른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2. 너무 결점만 듣고 왔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눌리기 시작했다. 면담 내용들이 그대로 살아서 귀에 쟁쟁하면서...선생님이 말한 내용 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김채윤이 좀 못난(유치원에서 말을 안 듣거나 말썽꾸러기로 알려진) 아이들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 애들이 아무리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에서 끓기 시작한다. 지 에미 애비가 무엇에 목숨 걸고 사는 사람들인데...죽으나 사나 약한쪽 편들기로 결심하고 사는 사람들인데...지가 뭐라고 사람을 무시해! 김채윤이 얄밉기 시작한다. 집에서도 이제는 잘못하는 것만 보이고, 김채윤이 조금만 잘못하고 고집을 부려도 화가 불같이 나면서 감정절제가 안된다.
너무 결점만 듣고 왔나 싶다.

3. 이성을 잃어가는 엄마
점점 채윤이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안된다. 채윤이가 조금만 내 말을 안 들어도 그저 문제아 같아 보인다. 이제껏 채윤이를 대하면서 흥분한 상태에서 혼내고 때려본 적이 거의 없는데...며칠 동안 채윤이에게는 무조건 흥분 상태다. 한편 채윤이가 가엾기도 하다.
채윤이에게 물었다. '채윤아! 전선하는 인사를 잘 한다며?' '그런데 전선하가 아침에 채윤이한테 여러 번 인사하는데 안 받어준 적 있어?' '응! 전선하랑 김윤주랑 이언빈이랑...인사하는데 다 안 받아줬어' '왜애?' '속상해서' '뭐가 속상했는데?' '엄마한테 엉덩이 맞아서...'

그러고보니!!!
채윤이가 여섯 살 햇살반이 되고나서 기분 좋게 유치원에 보낸 날이 없다. 여섯 살 되면 혼자 유치원 가기로 했었는데 죽어도 엄마랑 가겠다고 버팅기는 바람에 구박하고 협박하고 결국 데리고 나가서 말 한마디 친절하게 안 하고 유치원에 들여보낸 날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맞다! 그거다!! 내가 미쳤나봐.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채윤이 유치원 내 손으로 보내주고 싶어서 풀타임도 그만 뒀으면서...내가 미쳤나봐!!
게다가 저녁에는 강의 준비하네 치료 준비하네 하면서 채윤이랑 눈 마주치고 앉아서 놀아준 적도 언제였던가 싶다.

4. 멘토, 김인아를 만나다.
이럴 때는 김인아를 만나서 고해성사를 해야한다. 양육에 대해, 엄마의 삶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늘 같은 생각을 가진 김인아를 짬을 내서 만났다. 그리고 고해성사하듯 지난 며칠을 고백했다.
'그랬겠네. 아침에 매일 그러고 가는데 유치원 가서 어떻게 잘 지내...' '언니! 그래서 부모도 자식과 함께 성장해가야 한다고 하나봐. 하다못해 남편과도 깊은 대화 없이 한 달이 지나면 어떻게든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자녀와도 마찬가지 같애. 가만놔두면 현상유지가 되는 게 아니라 떨어지고 말아! 그런 것 같애'
맞아! 어느 새 좋은 엄마 되겠다는 기도도 잊고 노력도 잊었어.

5. 남편과의 결론
채윤이를 잘 키운다고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왔지만 우리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남편이 말했다. '그래서 결국 기도로 키워야 하나봐. 우리 힘으로 안 되는 것들 어떻게 하겠어? 아이들 위해서 기도해야지'

6. 목장모임에서 회개기도
채윤이가 함께 있으면서 자신의 얘기를 하니까 엄청 예민하게 신경 쓰기는 했지만 나눔시간에 내 잘못(죄)를 고백했고 기도 시간에 회개했다. 부모로서 채윤이와 영혼의 대화를 하지 않은 '직무유기'에 대해서....

7. 주일예배에서 은혜를 주시다
주일 예배 시작마다 합심기도를 하는데 늘 세 번째 기도제목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다. 채윤이를 놓고 기도하는데 뜨거운 눈물이 비오듯 흘렀다. 채윤이가 요사이 보이는 단점보다 비교도 할 수 없는 악한 것들을 가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날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채윤이를 사랑하겠다고 했었는데 그 작은 일로 채윤이를 마음으로부터 밀어내려 한 내 자신을 생각하면서...
예배 시간 내내 채윤이를 품고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부른 찬송이 411장.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그렇다. 채윤이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울 때가 아니라 흠이 보이고 연약함이 보일 때 더 사랑받아야할 때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사랑하셨다. 어쩌면 이제 진짜로 부모로서 자라가야할 시간이 온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10대가 되고 사춘기가 되면 더 어려운 순간이 많을 것이다. 내가 부모로서의 성장을 위해서 더 몸부림 쳐야할 시간이 온 것이다.

8. 다시 시작
아침에 즐겁게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함께 손을 잡고 가면서 막 터지려는 꽃봉오리도 오래 들여다 보고, 민들레도 들여다 보고, 쑥을 뜯어 비벼서 향내도 맡아보고...
이러면 내가 먼저 행복해지는 것을 말이다. 바보. 정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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