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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일상

엄마의 몸, 쇠잔해감을 막을 수 없다

larinari 2012. 9. 1. 23:17





지난 주 월요일 친정에 갔을 때 엄마랑 산책을 했다. "너 나허구 한 번 나가볼텨? 좋은 거 보여 줄 것이 있는디....." 새로 이사한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였다. "여기여. 여기 한 번 서 봐. 솔나무 냄새가 폴폴 나. 얼매나 좋은 지 모른다. 우리 하나님 얼매나 좋은 분인지...."


나는 엄마가 혼자 걸어 화장실에 다니실 수 있다는 게 매일 매일 얼.매.나. 좋았는지 모른다. 얼매나 감사혔는지..... 심한 골다공증과 협착증으로 엄마의 뼈가 유리같이 느껴졌다. 오래 살던 주택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하셔서 산책을 즐기실 수도 있으니.


이틀 전 비 오는 날 집 앞에서 넘어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통증이 있으셨지만 외상도 없고 붓는 곳도 없어서 타박상이려니 했다. 하루 이틀 지냈는데 상황 악화되어 거동을 못하시기에 이르렀다.


오늘 아침 눈을 떴는데 꿈자리는 뒤숭숭하고 마음은 무거웠다. 동생과 통화하니 아무래도 고관절 골절 같다고... 노인네들이 고관절 골절이 이후엔 오래 못버티신다 들었단다. 게다가 업어 모시고 화장실 가다 동생마져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갑자기 밀려드는 절망감과 두려움으로 눈물이 쏟아졌다. 이번 휴가에 그런 결심을 했는데.... '단풍이 절정일 때 설악산의 호텔로 엄마랑 단둘이 여행을 가야겠다. 전망 좋은 방에서 주무시게 하고 조식뷔페도 함께 먹고 단풍길을 산책도 해야지. 바닷가에 모시고 가고 황태구이도 사드려야지. 온천도 하고.... 엄마 생전 못누려본 걸 꼭 하시게 해야지.' 이런 계획을 했다는 게 더 슬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도 어려운 '김서방' 등에 업혀 두 군데 병원를 돌아 세 번째 병원에서 수술하시기로 하고 입원을 했다. 자세 하나 바꾸는데도 고통스러워 하셨다. 어렵사리 MRI 촬영까지 했다. 한 쪽 고관절이 틀어져 있었다. 실은 오랫동안 아팠었다고 하신다.


긴, 아주 긴 하루를 보내고 엄마는 옆에서 푸푸 주무신다. '비오는데 나간 내가 미쳤지.'하며 자책하시다 '김서방 힘들어서 어떤댜. 병원비 어쩐댜. 나 수술 안혀. 늙어서 다 산 사람이 무슨 수술여.' 하시더니 점점 편안해지셨다. 더불어 나도 머릿속에서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 쓰기를 멈췄다.


엄마의 몸이 어떻게 쇠잔해 가는지를 보며 인생과 죽음과 거기 맞닿은 저 하늘을 다시 생각한다. 사진에서 처럼 엄마랑 다시 그 솔밭 아래 나란히 설 수 있을까? 단풍이 들 때 함께 붉게 물든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사실 이런 날이 와 멈춰 생각하면 하늘 소망은 너무 멀고 엄마에 대한 유아기적 애착과 원초적 그리움만 크다.


그나저나 엄마가 코를 점점 심하게 곤다. 옆에 계신 환자분 신경이 많이 쓰이시나본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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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 프로필사진 forest 2012.09.01 23:58 나이드신 분들 원래 코 많이 골아요.
    특히 병원에서 이것저것 검사하느라 피곤하셔서 더 코를 많이 골수도 있구요.
    어머님 마음 편하게 해드리세요.
    저야 보태드릴게 마음 밖에 없으니 잠시 두 분 계신 곳으로 마음을 보냅니다.
    어머님의 따님도 힘내시구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09.02 00:20 신고 동생 말이 며칠 만에 제대로 주무시는 걸 거래요.
    아파서 잠도 못주무셨다고.....
    진통제 맞으시며 그나마 편안한 밤이신 것 같아요.
    마음이 여까지 왔어요.^^
  • 프로필사진 mary 2012.09.02 19:52 아니. 어쩌신다... 고관절 다치시다니.
    어머니는 물론 가족이 다 힘든 시간들을 보낼듯하나 잘 감당하시길..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09.02 22:53 신고 거의 연배가 비슷하신 어머님들 사이에서 저희 엄마 건강하신 편이었는데요....ㅠㅠ
    비 오는 날에 방울 토마토 조금 싸게 사시겠다고 나가셔서 미끄러지셨어요.
    하룻밤 간호하고 넉다운 됐어요.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스런 행위를 스스로 되지 않을 때,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도 어려운 일이 되더라구요. 수술이 연기되어 더 걱정이예요. ㅠㅠ
  • 프로필사진 BlogIcon 뮨진짱 2012.09.02 23:11 신고 에휴..ㅠㅠ
    저도 모님 카톡보고 눈물이 또르르르..
    무서울 거 같아서요.
    기도했어요. 힘내세요!
    그 아픔 혼자 감당하시는 거 아닌 거 알죠? ㅠㅠ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09.04 17:19 신고 그래 그래. 고맙다.
    다행히 입원하시고 더 마음이 안정되시고,
    나도 편안해졌어.
    내일 수술인데 잘 될 거라 믿는다. 이렇게 기도해주는 마음이 있으니까.^^
  • 프로필사진 손녀 No.2 2012.09.03 08:42 우리 할머니..
    늘 피부가 뽀얗고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셔서.. 우리 할머니 연세를 인지하지 못하고 지낸거 같아요. 어제 성은이를 품에 안고 병실문 앞에 섰는데, 할머니 성함 옆에 써있는 "86"이라는 숫자! 만나이로 적힌 것일텐데.. 순간적으로 놀랬어요. 내나이가 곧 마흔인데, 제 생각속에서 할머니는 우리 자매 봐주시던 60대 초반에서 멈췄었나봐요.

    고모, 할머니 수술 잘 받고 다시 일어나 걸으실거에요~!
    저는 뭐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할머니 지금 불편하고 고통스러우신것이 맘이 안좋아서 그렇지 수술하면 원래보다 더 잘 걷고 건강하실거 같아서 기대되는 마음이 크거든요^^

    말씀묵상으로 하루를 보내시는 할머니. 자세때문에 성경보기 힘드셔서 그게 제일 맘에 걸리네요~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09.04 17:20 신고 고모도 그런 생각이 들어.
    MRI 사진을 보니 양 쪽이 모양이 현저하게 다르더라.
    그런 상태로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을까 싶어.
    병원에서도 그러대. 오히려 더 좋아지실 수도 있다고.
    기도하며 바랄밖에....
  • 프로필사진 BlogIcon 해송 2012.09.04 19:45 신고 ㅠ 어쩌나?
    참으로 사람이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기력이 없어지는 것이 속상해요.
    하늘나라 가는 길에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인데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살다가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뭏튼 속히 회복하셔서 계획하신 여행 꼭 다녀 오시기를 바랍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2.09.05 09:19 신고 오늘 수술하세요.
    처음엔 금방 돌아가실 것 같고 두려움이 엄습했는데...
    수술만 잘되시면 오히려 더 편하게 남은 여생 보내실 수도 있다네요.
    생각나시면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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