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문제에 있어 넘어야할 가장 큰 산은 옆 집 아줌마다' 라는 말에 200% 공감하면서 가급적 아이들 학교 엄마들하고는 별다른 소통을 안하고 있는 현승이 엄마, 나.


오늘 만난 어떤 엄마로부터 '애들 반에서 난리 났던 것 아냐? 옆 반 하고 거의 싸움이 일어났는데 어떤 애가 목을 조르고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더라. 그래서 담임 선생님한테 싸운 애들은 세 대, 구경한 애들은 두 대 맞았다는데.... 어떤 엄마가 애들 맞았다고 너무 걱정하더라. 남자애들 열 명이 맞았다니 안 맞은 애는 다섯 명이란 얘기 아닌가?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현승이 이 놈은 안 맞은 다섯 명 안에 있었겠구만!' 하고 웃어 넘겼다.






조금 전에 온 가족 함께 둘러앉아 치킨을 먹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이 얘길 꺼냈다.
'현승아! 너희 반하고 어느 반 애들이 싸워서 선생님께 맞았다며?' 했더니 진상은 소문과 달랐다. 패싸움 얘기는 완전 다른 얘기였고...


학교 운동장에 공사중이라 '안.전.제.일'이라고 되어있는 곳에 가지 말라는 선생님 말씀 안 들었던 남자 애들이 맞았단 얘기다. 세 대와 두 대는 사실이었는데 '세 대'를 맞은 아이는 두 명이란다. 세 대 맞은 아이들은 누구야? 했더니...
'한 명은 무환이, 또 한 명은 나!'
'너~어? 김현승? (공인인증 범생이)김현승이 왜?' 했더니...
'무환이는 맨 애들 다 데리고 가서 세 대, 나는 안들어 갔다고 뒤에 서서 거짓말 해서 세 대,
그냥 들어가기만 했던 애들은 두 대....
'란다.


김현승이 거짓말 할 아이는 아닌데.....
얘기를 듣다보니 얘긴즉슨, 자기는 '안전제일'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단다. 거기로 들어가는 뒷길에 서 있었단다. 그래서 안들어갔다고 했는데 가장 친한 친구인 민영이가 '얘도 들어갔는데 거짓말 해요' 해서 세 대 맞게 됐단다.
이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길래.


'현승아! 그런데 괜찮아? 니 마음은 괜찮아' 했더니 '응, 뭐가? 난 괜찮아' 한다.
억울하면 눈물부터 쏟는 아이가 이게 어찌 안 괜찮을까 싶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물었다.
'엄마는 억울하다고 생각이 들거든. 넌 들어가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안했는데 맞았잖아' 그래도 괜찮단다. 감정의 문을 안 열기로 결심한 듯 '괜찮다'만 연발하는데 이런 저런 질문과 공감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혹시, 선생님께 저는 안들어갔어요. 그리고 거짓말도 안했어요' 라고 말할 생각은 없었어? 라고 물었더니 현승이 감정의 방어벽이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용기가 없는 애라고 말했잖아.....(눈물을 참느라 목소리와 입술이 바르르 떨리며ㅜㅜ) 하나님은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데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도 안들어주시고, 나한테 사랑도 안주시고 기쁨도 안주셔. 나에게는 반쪽 짜리 용기만 주셨어. 선생님한테는 그렇게 말할 용기가 안 생기고 친구들이 잘못하면 막 화내고 짜증낼 용기만 생겨...'


마음에 있는 게 바로 말로 줄줄 나오는 누나와 달리,
정말 마음에 있는 얘기들은 기다리고 격려하는 시간이 많이 걸려야 나오는 아이 현승이.
짧지 않은 시간, 눈물의 치킨을 뜯으며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용기없는 마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덟 살 아이에게 이렇게 깊은 내면의 고통이 있었다니....


엄마 아빠가 자기에게 깊이 공감을 해준다고 느꼈는지... 일기를 써서 선생님께 현승이 마음을 알리자는 제안에,
'싫어. 선생님한테 이 얘기 하고 싶지 않아. 나는.....사실..... 강 00 선생님이 조금 나쁘다고 생각해. 유치원 때 이영주 선생님처럼 친절하게 물어봐줬으면 좋았겠어. 내 마음을 선생님은 모르잖아. 내가 엄마한테 말했잖아.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고...내 마음을 몰라'


현승이와 대화하면서,
현승이에게 용기가 무엇이지, 그리고 다른 사람이 과연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을런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말해줬다.


현승아. 최고의 용기는 자기 마음에 있는 걸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거야. 지금 현승이가 엄마 아빠한테 현승이 속마음 얘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내가 정말로 잘못했구나'를 알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용기야. 현승이는 진짜 용감해. 그리고.... 현승이 마음을 사람이 다 알아줄 수 없어. 엄마 마음도 현승이가 다 모르잖아. 그런데... 그래도 괜찮은거야. 원래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다 몰라주게 되어 있어. 다만, 예수님은 현승이 마음을 완전히 다~~~아 아셔.
라고.
이것은 현승이 엄마가 현승이 엄마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내일쯤 감정이 조금 차분해지면 쿨하게 '용기'에 대한 일기를 쓰자고 해볼 생각이다. 현승이가 거북해 한다면 이 사건 자체는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월요일에 선생님께 편지 한 통을 써서 보낸 생각이다. 용기가 필요한 현승이에게 선생님의 따뜻한 도움이 필요하다고.....ㅠㅠ



* 사진은 만날 때마다 현승이를 밝은 아이, 용기있는 아이로 만들어버리시는 털보 아저씨께서
   예봉산에서 찍어주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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