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증은 있었지만 설마 설마 했었고,
확 믿어버리기엔 아기 채윤과의 추억이 너무나 애틋했다.
며칠 전 대화 중에
'나를 현승이와 다르게 대해줘. 난 3학년이 아니고 6학년 이라고... 똑같이 애들취급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르게 대해 달라는 내용은 화낼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자신이 예민할 때니까 그러려니 하고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요거 봐라.... 하면서 조금 가볍게 넘겼다.


오늘 또 다른 일로 설전이 시작되고 감정이 격해지면서 놀라고 당황도 되었다. 내가 대화하고 있는 이 아이는 내가 젖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던 내 아기가 아니라 완전히 독립된 '너'라는 인식이 되면서 자세를 고쳐 앉게 되었다.


중간중간 대화 결렬의 위기가 있었다. 그것은 순전히 엄마의 위엄을 상실한 엄마로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판을 깨버리고 싶은 충동이었다.진심 절망스러웠다. 채윤이 입에서 나오는 엄마의 실체란.... 화가 치밀어 올랐고 따귀라도 한 대 치면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았다. 협박도 했고 화도 냈다. 채윤이가 결코 밀리지
않는다.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이제껏 써왔던 혼내는 모드로는 안된다는 직감이 왔다. 막막하고 아득해졌다. 남편과 언쟁을 할 때 처럼 해야겠다고 순간 마음을 고쳐먹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다시 얘기했다.
내가 엄마로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무엇을 감수하며 양육하고 있는지, 그래서 가진 자부심과 좌절과 부끄러움을 또래 엄마들에게 나누듯 이야기 했다. 그리고 '엄마는 길을 잃은 것 같애. 좋은 엄마 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이 순간 채윤이 눈에 눈물과 함께 가득 서려있던 독기가 빠져나갔다. 아! 이제 성인이다. 채윤이가 성인이다. 어른끼리의 갈등의 해결은 누군가 먼저 무장해제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군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무장해제 하는 순간 상대에게도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힘을 준다. 성인 채윤이와 논리로 싸웠고 논리를 내려놓고 마음을 고백하는 순간 놀랍게도 말이 제대로 오가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채윤이와 사람대 사람으로 대화를 했다. 혼내고 가르치는 통제로서의 일방적 대화가 아니라 사람대 사람의 대화다. 서로 못할 말을 해서 상처도 남겼지만 긴 시간 포기하지 않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그 자리에서 눈물로 손을 맞잡는 윈윈의 끝을 보았다. 할렐루야!!


대화를 마치고 엄마가 기도해도 되겠느냐 했더니 눈물로 답했다. 내 덩치만한 채윤일 안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주 작은 갓난 아기로 제게 처음 왔던 채윤이가 이렇게 자랐습니다" 목이 메였다.


진실로 그러하다.
내 몸을 통해 나온 2.9kg, 48cm의 아기가 이제 동급의 인격체로 우뚝 서고 있다. 성장통은 채윤이만의 몫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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