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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에 박완서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의 방에 들락날락할 일이 있었는데 책꽂이에 꽂힌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먹었을까>가 눈에 들어왔다. 꿈에 그 책은 내가 오래전에 선물한 책이었다.(저자한테 내가 그 책을 왜 선물한담?) 암튼, 그 책꽂이의 책을 여러 번 보면서 '어, 저 책 내가 선물한 책인데 선생님은 기억하실까? 나를 아실까?'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유치원 교사를 할 때 박완서 선생님의 외손주가 우리 유치원엘 다녔었고, 그래서 행사에 참여하느라 유치원에 오신 선생님을 직접 뵌 적이 있다. 콩닥콩닥하는 가슴을 안고 맴돌다 어렵사리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먹었을까>는  그 즈음 내가 가르치던 아이의 엄마에게 선물했던 책이다. 꿈에서 박완서 선생님이 나를 다정히 부르셔서는 '이 책, 오래전에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서점에 가서 사 준 건데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둘이 마주 누워서 얘기를 했다. '아직도 아이들 가르치고 있냐? 지금은 뭐하냐?' 물었다. 다시 공부해서 음악치료사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제가 유치원에 있을 때도 음악을 좋아했거든요' 라고 말하다가 울음이 터져버렸다. 복받친 눈물이 그쳐지질 않아 민망해 하면서 '아이고, 선생님! 제가 왜 이 얘기를 하다가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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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의 느낌은 그런 것이었다. 마음 깊이 존경하는 어떤 분을 뵈었을 때, 그분의 아름다운 아우라에 내 마음이 비추어져 슬픔이 슬픔 그대로 아픔이 아픔 그대로  흘러나오는 느낌. 현실에서도 드물게 만난다. 평소 아픈 줄도 슬픈 줄도 몰랐던 나 자신을 그대로 비춰주는 맑은 거울 같은 사람. 아무 것 하지 않고 그저 눈빛 하나로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 
젊은 시절부터 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신앙의 멘토이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았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는데 청년 시절 위장이 좋지 않았다. 청년부 주보에 지체근황 이런 부분에 위장이 좋지 않아 치료받는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 같다. 평소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라, 전화하라, 여러 번 말씀하셨던 어른 한 분이 나를 부르셨다. 위장이 안 좋냐?  신경성이냐? 물으셨는데 그 후에는 대화라기 보다는 긴 설교 한 편을 들었다. 내용은 '신앙인이 신경성 질병을 앓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내가 보니까 니가 항상 웃는 낯이더라. 그렇게 겉으로  웃고 다니니까 속으로 신경성 병을 앓는 것이다. 절대 신앙인이게 신경성이란 없다' 이런 내용이었다. 어리기도 했고, 맞는 말씀이기도 했고 아무 말 못하고 자리를 떴지만 그 순간 결심한 것이 있다. '당신을 존경하지 않겠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상담자 멘토를 자처하시며 동시에 존경받는 걸 상당히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분에게 일말의 존경심도 갖지 않는 것이 복수라고 생각했다. 절대 상담받지 말아야 할 선배나 어른이 있다면 '그런 문제라면 나한테 와서 상담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진심의 존경을 받는 어른은 무엇을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존재로 살 때, 자연스럽게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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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시복미사를 위해 광화문으로 가는 길가에 유민이 아빠를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었다. '파파, 파파'를 목놓아 외치면서. 그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보면서 '파파'에 담긴 피 울음에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차가 바로 앞에 오자 '파파, 파파'하는 소리는 절규에 가까워졌다. '파파 여기 봐주세요. 여기로 와주세요' 차가 멈추고 교황이 내리고 유민이 아빠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셨다. 여러 가지 감정이 함께 올라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파파' 하고 부르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꼭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치는 소리 같이 들렸다. 그 '파파' 소리에는 나의 기도와 외침도 담겨 있다.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이 땅의 우는 자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자식 잃은 아비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곡기를 끊고 바라는 오직 한 가지, 진실을 알려달라는 피 울음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자식을 잃은 저들, 저 힘 없는 자들이 거짓과 모함에 두 번 죽는 것을 언제까지 두고 보시렵니까? 파파, 파파, 나의 아버지' 예수님이 2014년 8월 15일 대한민국에 오신다면 가장 슬프고, 가난하고, 상처받고 외면당한 유민이 아버지 손을 잡아주시지 않았겠나. 저 잡은 손이 교황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아, 정말 우리 예수님의 손이라면.  
교황을 만난 세월호 유가족들이 참사 이후 처음으로 위로 받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교황의 손을 잡은 유민이 아버지 마음이 짐작 되었다. 어쩌면 유민이 아버지는 신앙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꿈에 박완서 선생님께 내 얘길 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울음이 터져나왔던 것처럼, 생면부지의 교황과의 짧은 만남에 그 인품과 신앙의 향기에 저절로 젖어들었을 것이다.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러지 하면서 깊은 슬픔이 만져지는 느낌에 속울음을 울며 위로받았을 것이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것이 단지 교황이라는 높은 권위 때문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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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 교황을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라며 격노하는 개신교인들이 있다. 열정있고 믿음이 출중한 분들일 것이다. 맞다. 교황님이 하나님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껌벅 죽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개신교 믿음 좋은 분들이 목사님이 하나님도 아닌데 목사님 앞에 껌벅 죽기는 마찬가지, 아니 그 이상이다. 상식있는 비신자도 하지 않을 일을 해도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하면서 비호하는 교인들이 있다. 교회가 어떻게 되든, 교인들이 실족하여 나가떨어지든 말든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는 목사님들이 허다한데 그분들 곁에도 '사랑합니다. 목사님' 하는 분들이 있다. 목사님에 관한 한 상식적인 판단을 다 넣어두고 '주의 종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며 목사님의 거짓을 확인하고도 침묵하며, 침묵을 강요하는 지도자들. 목사님 하나 자리보전 시키기 위해서 자신은 물론 교우들의 영혼까지 말라 비틀어져 가는 것을 외면하는  하는 사람들이 '목사님 우상숭배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아닌가? '오직 은혜로만' 일을 처리하는 고상한 신앙인으로서의 '자신'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우상숭배자'인가? (아이고, 의미없다) 대놓고 '파파'라 부르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것이 차라리 페어 플레이다.  
교황님의 행보에 여러분 눈시울이 붉어졌다. 숙소에 도착하여 드린 첫 미사에서는 당신을 돌볼 요리사, 청소부 등 10 명을 초대하여 함께 드렸다고 한다. 내가 믿는 개신교에도 그렇게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나 허리를 숙여 고통받는 자의 손을 잡고, 울음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분이 계시면 좋겠다. 부럽다. 가톨릭 신자들이. 하지만 나는 안다. 프란치스코 교황만이 낼 수 있는 존재의 향기라는 것을. 가톨릭 역시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은 종교인의 풍모는 풍길지 몰라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높이는 분들이 개신교 못지 않게 흔하다는 것을. 그 앞에만 서도 눈물을 주르르 흐르는 성스러운 아우라, 거역할 수 없는 포근함은 '자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앞에 서 본 약자는 적어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세리와 창녀처럼 말이다.  

부디 유민이 아버지와 세월호 유가족들이 이번에 받은 깊은 위로로 삶과 인간에 대한 소망을 다시 붙들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나의 파파, 지금 여기로 와주세요. 광화문 시멘트 바닥 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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