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서 기억나는 꿈을 기록하고, 고요한 시간에 꿈의 영상을 리플레이 해보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는 것. 꿈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이 참 좋다. '꿈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하찮은 것을 귀하게 바라보는 눈,  스쳐지날 것을 응시하는 눈을 뜨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던지는 볼멘소리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강변 마른 풀들 사이 삐져나온 손톱보다 작은 들풀에서 그 나라의 생명을 보는 것에 견줄 수 있다. 아이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쪼르르 식탁으로 달려와 '엄마, 나 꿈꿨어. 무슨 뜻일까?' 자주 묻는다. 엄마가 꿈해몽 점쟁이냐? 무슨 뜻인지 알게? 아이들의 꿈을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악몽을 꾸더라도 꿈일 뿐이니 다행이고, 기분 좋은 꿈을 꾸면 기분이 좋으니까 좋고!  

 

굳이 꿈분석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꿈을 가지고 이야기 하다 보면 어느새 치유, 어느새 자기 성찰, 어느새 소망의 의자에 앉아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엊그제 주일 아침에 그랬다. 채윤이가 꿈을 꿨다면서 내 침대로 와 턱 걸터 앉아 쫑알거렸다.  

 

* 채윤이의 꿈

 

친구들이 나를 버리고 갔어. 학교 친구들인데. 한영교회 동산에 날 버리고  간 거야.
나는 동산에 혼자 남아 있어. 혼자 남아서 '어, 이건 뭐지?' 하고 있는 거야. 끝.

이 꿈은 내 꿈이 아니라 채윤이 꿈이다. 그러나 내가 그 꿈을 꾼 것처럼 진지하게 듣는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묻는다. 친구들이 왜 버리고 갔어? 따돌림당한 거야?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나를 혼자 두고 간 거야. 동산에 혼자 있는 느낌이 어땠어? - 슬프거나 그렇진 않고 그냥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러고 있었어. 채윤이게 있어 학교 친구들은  어떤 친구일까? 채윤이에게 한영교회 동산은 어떤 곳일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여 한참 얘기를 나눴는데..... 들어보시라. 결론은 꿈보다 해몽!이다.

* 학교 친구들

 

채윤이가 얘기하는 학교 친구들이란 이렇다. 예술 중학교라는 특성 때문에 너무 서로들 경쟁적인 관계라서 친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단다. 실기 성적으로 줄을 세워서 그 잣대로만 친구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마음을 터놓을 수가 없다. 학교 다니면서 자주 채윤이가 말했었다. '엄마, 학교 친구들은 친구라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아.' 얼마 전에는 그런 말을 했었다.  '엄마 나 정말 예고 정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이 얘기 해주면 엄마도 놀랄걸.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써냈는데 피아노과 친구들 장래희망이 다 똑같애. 완전 대박이야. 나 빼고 모두 똑같애. 뭔 줄 알아?  모두 교수야. 그것도 서울대 교수. 대박이지?' 그 사이에서 채윤이가 항상 고립감을 느낀다는 걸 알고 있다. 여러 환경이 채윤이와 다를 뿐 아니라 음악, 학업을 하는 방식도 다르다. 게다가 채윤이는 학교의 잣대로 보면 늘 자신을 부족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채윤이에게 성적과 상관없이 채윤이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그렇게 줄 세우는 방식이 얼마나 악마적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가정교육이라면 가정교육이었다.

 

* 한영교회 동산  

 

한영교회 동산은 채윤이가 5학년 때까지 다녔던 한영교회, 즉 한영고등학교 안에 있는 동산이다. 한영 동산은 채윤이에게 이런 곳이란다. 어렸을 때 재밌게 놀던 곳, 눈치 안 보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놀던 곳. 너무너무 재밌었던 곳, 도심 속에 어울리지 않는 동산. 참 좋은 곳.
그리고 한영교회는 채윤이에게 이런 곳이다. 늘 그리운 곳, 모든 사람이 나를 알아 주고 예뻐해 주던 곳. 이곳 교회에 와서 1년이 넘도록 '왜 아빠는 교회를 옮긴 거야? 이 교회에는 친구가 없고 아는 사람이 없어. 그리고 재미도 없어. 나 엄마랑 어른 예배드리면 안돼?' 하며 긴 적응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했다. 

 

 * 꿈이 건넨 이야기

 

3학년이 되어 입시준비며 부담이 많은 채윤이의 의식세계를 '학교 친구들' 이란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친구들이 있는 학교로부터 떨어져나오고 싶은 바램도 간절하고  친구들이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지 않는 것이 두렵고, 그러다 왕따가 될까 봐 늘 노심초사이다. 무리에 섞이고 싶고 홀로이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꿈이 아닐까.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는 채윤이가 이런 지점에서 많이 힘든가 보다.

 

그 친구들이 버려놓고 갔다고 하는 동산. 그 동상은 놀짱 채윤이가 자기답게 자유롭게 놀던 곳이다. 저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까지 끌고 다니면서 극 놀이를 하고 신났던 곳. 이기고 지고, 줄을 세우는 경쟁구도가 없는 곳이 채윤이 마음 속 한영동산이다. 다시 가서 뛰놀고 싶은 동산. 그것을 채윤이는 '도심 속의 동산'이라고 표현했다. 동산은 채윤이가 그리워하는 물리적인 공간으로서 한영동산이기도 하지만 그 존재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 어떤 곳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채윤이에게 찬송가 한 장을 불러주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채윤아, 이슬이 맺혀 있는 장미가 있는 곳이 어디게? 그래, 동산! 동산은 채윤이가 말한 진짜 신나게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곳이고, 어릴 적에 너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에게 사랑받던 그런 곳이야. 엄마에게 동산은 저 찬송 가사처럼 아주 조용히 예수님 만나는 곳이다. 채윤이에게 자유, 즐거움, 사랑받음으로 기억되는 동산이 엄마가 조용히 기도하면 예수님 만날 때의 느낌과 같아.
꿈은 채윤이가 입시를 앞둔 학교생활에서 잘 못 섞이는 것 같아 힘들고, 떨어져 나오고 싶은 마음도 보여주고, 떨어져 나와서 가고 싶은 곳도 보여주네. 그런데 그건 지금 명일동에 있는 한영교회 동산만은 아닐 거야. 이미 채윤이 마음속에 있는 동산이야. 채윤이가 그때 받은 사랑과 그때 신나가 놀았던 기억이 채윤이 마음에 그대로 있거든. 그게 채윤이 마음의 동산이지. 그러니까 지금 언제든지 그 기억을 꺼내보고 기억 속에서 다시 힘을 얻을 수도 있는 거야.

 

아까 불러준 찬송 중에 엄마는 4절을 디게 좋아한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채윤이 주일날 중등부 가서 반주하고 찬양하고 예배 드리는 거 참 좋잖아. 일주일이 늘 그랬으면 좋겠지? 그런데 예수님은 학교로 가고 집으로 가래. 동산에서 얻은 쉼과 자유를 가지고 가래. 가서 채윤이 할 일이 있대. 할 일은, 학교에서도 기죽지 않고 채윤이 답게 즐겁게 자유롭게 지내는 일일 거야. 그런데 채윤이 혼자 가라는 게 아니라 이미 채윤이 마음의 동산에 예수님이 사시는걸.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라잖아. 참 좋은 꿈이다. 채윤이 마음의 동산에 살고 계신 예수님의 편지 같다.

주거니 받거니 나눈 긴 얘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어느 대목에선 채윤이 눈에 눈물이 비치고 나 역시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일어나자마자 잠옷 입고 침대 누워서 다정하게 편지 한 장을 함께 읽은 느낌이었다. 채윤이 편지에 내게 보내신 메시지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이제 난 채윤이 마음 말고 내 마음의 동산으로 그분 만나러 간다.  

 

* 그림은 고혜경 저 <나의 꿈 사용법> 안에 있는 삽화.

 

 

 

 

 

'푸름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챈, 잃어버린 표정을 찾아서  (8) 2015.06.24
중딩들의 흔한 가방  (4) 2015.05.20
스튜디오 열연습 챈  (10) 2014.12.08
매덩  (4) 2014.11.09
끼 좀 부리지 마  (6) 2014.11.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