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저녁, 밥솥 뚜껑을 열면 뜨거운 안개 같은 하얀 김, 뜨거움이 물러가고 안개가 걷힌 밥솥 위엔 힘 빠져 축 늘어진 가지가 몇 개가 누워있다. 가지 냉국은 그 뜨거움에서 비롯한다. 밥솥 옆엔 다진 파와 마늘이 깔린 양푼이 대기 타고 있다. 가지는 젓가락에 옆구리 찔려 파 마늘 위로 던져진다. 젓가락 대신 주걱을 들고 바쁘게 밥솥의 밥을 휘저은 엄마가 다시 다시 젓가락을 잡는다. 흐물흐물한 가지를 젓가락으로 쭉쭉 찢는다. 그리고 거기에 조선간장, 고춧가루... 그리고 시원한 물, 그리고 얼음. 양푼 째로 마당에 놓인 평상으로 가져가 밥상 옆에 놓인다. 땀 뻘뻘 엄마가 한 그릇 씩 퍼주던 여름 용 국물. 가지 냉국이다. 엄마가 해주던 가지 냉국 말고 먹어본 일이 없다. 가지 냉국 얘기를 하면 가지로 국을 만드냐며 놀라는 사람이 더 많다. 이번에도 아이들이 "이게 뭐야? 무슨 음식이야?" 했다. 몇 번 만든 적이 있는데, 처음 보는 음식이란 거다. 실은 나도 한참 잊고 있었다.

가지 냉국 생각이 간절했다. 음식이 아니라 엄마 생각인 것을 알지. <슬픔을 쓰는 일> 북토크 여파인지, 아니면 7말8초 휴가철의 기억 때문인지, 둘 다 인지. 북토크에선 '상실' 에 대한 강연을 하고 바로 글을 써보았다. 두 분의 글을 낭독하여 나눴는데, 같지만 다른 어머니 이야기이다. 두 분 다 남성이라 연구소 글쓰기 여정에서의 느낌과 또 달랐다. 글이 아니라 쓴 글을 낭독하는 목소리가 가진 힘과 여운이 있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새로운 경험은 아들의 목소리로 부르는 '엄마'였고, 엄마를 그리는 '아들'의 마음이었다. 그 여운으로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새로운 얼굴로 왔다.

해마다 이 즈음, 동생네 휴가 기간이 되면 엄마랑 함께 지내곤 했다. 돌아보면 고마운 시간이다. 죽도록 미워하던 엄마, 그러나 죽도록 그리운 엄마를 곁에 두고 맛있는 것 만들어 드리던 날들. 폭염의 날들. 폭염이라 땀을 줄줄 흘리며 음식을 해야 했고, 어쩌면 그게 좋았다. 벌을 받는 느낌, 엄마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엄마를 부끄러워 하고 미워했던 나날을 보상하는 느낌으로 뜨거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좋았다. 몸이 기억하는 그 시간이라 그런가, 나도 모르게 가지 냉국을 만들고 있었다.

희한한 건, 이제껏 만든 가지 냉국 중 엄마가 내던 맛에 가장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비법이 하나 생각났다. 통깨가 아니라 깨가루를 써야 했다. 문득,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통깨를 부숴 깨소금을 만들어 넣었더니 달랐다. 아, 어떻게 해도 엄마 맛과 달랐던 건 통깨와 깨소금 차이에 있었어! 한 그릇 두 그릇 들이키다 보니 그 외 비법들이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밥솥 위에 가지를 쪘다. 가지를 처음부터 넣었을까? 언제 투입 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젓가락으로 꺼내던, 그래서 밥알을 몇 개 달고 나온 가지. 평상 위에 저녁 식사. 가지 냉국과 함께 빠지지 않던 감자볶음... 엄마가 가지 냉국을 만들고 연탄불 위에 감자볶음을 하는 사이 방에 모기기약을 뿌리고, 방문에 모기장을 꼼꼼하게 치던 아버지.

상실의 텅 빈 공간에서 바람이 분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그리움의 바람이 분다. 강연에서 말했다. 상실의 공간은 창조성의 공간이며 구원의 공간이라고. 내 말이 아니다. 헨리 나우웬, 제랄드 메이 같은 선생님들의 말이다. 부모 상실을 안고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 폴트루니에의 고백이다.

통깨 아닌 깨소금! 가지 냉국 비법은 그리움의 공간에 머무르다 얻은 오래된 참신한 아이디어! 창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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