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5일.
아침 운동 갔다 돌아오는 길, 고개를 푹 떨구고 걸는 중이었다. 짹짹짹짹, 귀를 잡아 이끌어 위로 향하게 하는 소리이다. 새 한 마리가 혼자 허공을 향해 고래고래 울음을 내뱉고 있다. 왜, 왜애, 무슨 일인데? 왜 혼자 그러고 있는데? 고개를 들고 가만 서서 들어보니, 울음 섞인 성토 같기도 하다. 무엇이 됐든 '혼자' 저러고 있는 게 마음이 쓰인다. '혼자'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바로 옆 나무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둘이 대화 중이었구나! 둘이 주거니 받거니, 어는 순간엔 함께 짹짹짹짹 꽥꽥꽥꽥한다. 하나는 제자리에, 또 하나는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 다니며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대화 중에 움직이는 게 예의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 있으려 했는데, 둘의 대화가 끝나지 않아서 내가 먼저 털고 나왔다. 한참 고개를 쳐들고 있었던 탓에 뒷목이 뻐근하기도 하고...

교회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는 날이다. 벌써 내려앉는 마음, 벌써 치밀어 오르는 뜨겁고 차거운 분노, 벌써 띵한 통증이다. 하늘의 전령이며 우리들의 선생님인 새가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 고개를 들어 높은 곳을 바라보라고. 함께 쓰고, 말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기억하고 떠올려 보라고. '혼자'가 아닌 게 얼마나 큰 힘이냐고. 발치에 떨어진 낙엽 하나를 주워와서 책갈피에 꽂았다.

2022년 가을과 함께 깊어질 또 하나의 W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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