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16강 진출!! 김종필 메롱~" 식탁에 아이패드 놓고 그 역사적이고 짜릿한 포르투갈 전을 혼자 관람한 채윤이 작품이다. 16강 진출의 기쁨과 '축구 친구 김종필'에 대한 배신감이 고스란히 담긴 몇 마디이다. 현승이는 친구들과 보러 가고, 엄마는 원래 축구에 관심이 없는데... "아빠는 안 봐. 내가 보면 져."라고 말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버린 아빠, 결국 이 재밌는 순간을 주먹으로 입 틀어막고 보게 한 아빠에 대한 배신감과 복수심이다. 축구에 너~어무 진심인 아빠는 '보면 질까 봐'가 아니다. 설교를 향해 몸과 마음을 만드는 금요일의 리듬이 깨질까 피한 것이다. 몸은 물론이거니와 축구 승패로 마음이 요동칠까 하여 미리 피한 것이다. 축구할 때 보면 김종필이 아니라 그냥 아저씨다. "야아, 그걸 왜 그쪽으로 보내. 에휴... 저런 멍청한... 안 돼, 안 돼. 우리나라는 안 돼..." 평소 김종필에게 볼 수 없는 아저씨 본능이 그대로 나온다. "그렇게 잘하면 니가 가서 해!"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일종의 아바타 같은 거란다. 자신의 승부욕을 투사받아 대신 싸워주는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하란다. 아, 그렇다면 이해되지.
축구보다 설교에 진심이다. 그의 일주일 시계는 설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설교하는 직업이 아니면 삶이 훨씬 더 여유로울 것이다. 뉴질랜드 코스타에서 맡은 설교는 콘퍼런스 마지막 날 오전이었다. 지난여름 미주 코스타에 참석했던 채윤이가 "아빠, 어떡해. 그 시간은 애들이 거의 다 자. 마지막 날 새벽까지 놀고 얘기하고, 설교 듣는 애들이 없을 걸." 했다. 게다가 새벽에 월드컵 우루과이 전까지 있었으니 청중은 거의 사망이라고 봐야... "마음을 비우고 해. 한 사람은 깨어 있을 거야. 그 친구만 보고 설교해. 나도 전에 어느 청년부 수련회 마지막 날 오전 강의에서 회장만 깨어있는 강의 한 적 있어. 그냥 당신 자신을 위해 진심의 설교를 해." 본인도 충분히 각오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정반대. 설교자로서 근래에 경험해보지 못한 충만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청중과 함께 뜨거워지는 그 맛, 영혼이 살아나는 그 느낌을 나도 좀 안다. 역전골을 넣는 순간,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너와 나 구별 없이 모두 얼싸안고 뛰는 느낌에 비할 수 있을까?
축구에 진심이고, 축구보다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설교에 진심인 JP(‘제이피’ 아니고 ‘종필’로 읽어야 함) 은 달라스 윌라드에 진심이다. 목회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께 배우고, 영성은 달라스 윌라드께 배우는 모범학생이다. 연구소에 오는 목회자들을 위해 달라스 윌라드의 <마음의 혁신> 읽기 모임을 이끌어주었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정성을 들여준 것인지 잘 안다. 그에게 시간은 내게 정말 마음에 드는 정장 원피스처럼 소중한 것인데, 매주 꼬박꼬박 시간을 내어주었다. 시간뿐 아니라 진심을 담아주었다. 보상도 없이 내어준 모든 것에 감사하다. 모임 후기를 남겨두고 싶다. 설교에 진심인 JP에 주신 위로와 격려가 코스타의 경험이라면, 목회에 진심이고 싶은 JP에게 주신 기회와 성취감이 이번 책모임이 아닐까 싶다. 2022년 가을, 늦가을의 소중한 경험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고, 메마른 일상의 설교에 지칠 때 꺼내볼 수 있었으면. 자신의 진심을 믿어줄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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