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스턴에 있는 채윤이 만나러 가는 마음,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두려웠다. 택배 폐기 사건의 여파로 갑자기 정해진 보스턴행이라서 그랬다. 입국, 세관 심사 통과하겠나 싶으면서 짐을 싸는 마음이 쫄렸다. 게다가 분명 아버지 죽음 경험의 영향 같기도 한데. 어디 멀리 떠날 때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비합리적인 두려움에 휩싸인다. 내 일상, 싹이 난 고구마를 물에 담가 키우며 아침마다 들여다보는 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결국 돌아왔다. 돌아왔더니 싹 난 고구마는 이렇게 자라 있었다


막상 가서 보니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이었다. 채윤이의 일상에 들어가 함께 먹고 자고 지내기 시작한 처음 며칠은 쓰라리기만 했다. 2주 후에 어떻게 두고 가나 싶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돈이 없다고, 돈 때문에 나를 비참하게 두는 애가 아니잖아." 여행 후반에 채윤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랬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방의 벽에 사랑 가득한 사진과 글귀와 카드 붙여 가꾼 것처럼, 저 자신과 일상을 가난하고 비참하게 두지 않음이 느껴졌다.

떠나던 날 집을 나서며 네 식구가 함께 기도하면서 아빠가 시편 121편을 읽어 주었었는데, 침대 머리맡에 그걸 써서 붙여 놓고 있었다. 내가 돌아오기 전날 밤에 엄마 글씨로 이걸 다시 써달라고 했다. 이건 채윤이를 위해 내가 써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주시는 그분의 위로였다. 기도이며, 위로이며, 약속인 말씀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써주니 침대맡에 붙였다.
꿈같은 2주를 보내고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상 회복이다. 채윤이도 이제 일상 회복해야지... 싶었는데. 아니다. 일상 회복이 아니라 일상 진보이다. 낯선 땅에서 홀로 일군 채윤이의 일상에 함께 하는 시간은 내게도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함께 보낸 2주 동안 커진 내 마음은 나와 그분만 아는 비밀이다. 질곡의 한 학기를 보내며 꾹꾹 눌러두었던 마음을 엄마 앞에서 쏟아낸 채윤이의 2주 역시 깊은 확신의 시간이었음을 안다. 그러니 다시 돌아간 각자의 일상은 더는 전과 같지 않다. 진보한 나, 진보한 채윤이의 오늘이다. 새로운 그리움, 새로운 희망으로 이 일상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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