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감에 걸려 교회에 가지 못하고 온라인 예배를 드렸던 몇 주 전 주일 오후. 예배와 회의와 모든 일정을 마치고 들어온 남편이 늙은 얼굴로 돌아왔다. 모처럼 보는 주일 오후 낯빛이다. 예전에는 '공허와 무기력'의 얼굴이었는데, 같은 시간의 같은 감정이 이젠 '늙음'으로 읽힌다.
무기력의 얼굴일 때는, 그대로 양복을 벗고 침대로 들어가 얼굴까지 이불을 덮고 낮잠을 자곤 했다. 그렇게 잠으로 잊거나 떨치고 나와 일주일 중 가장 풍성한 저녁 식사를 하며 본래 얼굴빛을 되찾곤 했다. (그래서 늘 주일 저녁에 뭐든 맛있는 걸 만들거나 주문 배달하곤 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그 낮잠이 없어졌다. 낮잠 없이도 본래의 JP로 빨리 되돌아왔다. 늙은 얼굴을 하고 돌아와 양복을 벗더니 바로 아저씨 등산바지를 착장하고 나갔다. 경안천으로 고니를 보러 간 것일 게다.
남편이 경안천의 철새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라며 유튜브, AI 비서들을 총동원하여 이름을 찾아내고 생태 습성을 알아내곤 하면서 신이 났다. 경안천에는 십여 마리의 고니가 상주한다. '상주'라고 했지만, 어떤 때는 두어 마리, 또 어떤 날에는 한 마리도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십여 마리는 우리 동네 경안천에 본적을 두고 있다고 믿는다. 안 보일 때는 퇴촌 쪽 습지나 어디로 마실 갔겠거니 여기면서.
날이 푹해진 2월이 되자 고니들이 며칠 자취를 감추었다. 남편은 조바심을 냈다. "떠났나 봐. 이제 갔나 봐..." 그러던 며칠이었는데, 독감 주일 바로 전날 토요일에 올겨울 최대 인파, 아니 고니파가 경안천에 모여든 것이다. 삼십여 마리라고 했다. 날이 따뜻해지니 떠나기 위해서 집결하나 보다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주일 오후, '늙은 얼굴'의 남편은 어쩌면 마지막 인사일지 모른다 여기며 경안천을 향했을 것이다.
어깨가 축 처져서 돌아왔다. 고니들이 없다는 것이다. "다 떠났나 봐..." 실망 가득한 소년의 얼굴이다. 아끼던 강아지를 잃은 소년, '날아라 병아리'를 부르는 신해철 얼굴에서 힐끗 보았던 소년의 얼굴이다. 가엾다. '늙은 얼굴'의 축 처진 어깨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그러려니 하는데, "다 떠났나 봐..." 하는 소년 같은 얼굴의 슬픔엔 마음이 무너졌다. 위로받고 돌아오길 바랐는데. 주일 저녁, 독감으로 골골대느라 맛있는 무엇을 해주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그의 축 처진 어깨를 두고 기도했다.


그리고 맞은 놀월, 안식일인 월요일이다. 더 심해진 독감 후유증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 드라이브라도 가자며 나섰다. 발길 닿는 대로, 자동차 바퀴 굴러가는 대로 다니다 경안천 습지공원에 닿았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고니 떼를 만난 것이다.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고니 "떼"였다. 이런 반전의 '위로 드라마'라고?!!! 내 아버지 하시는 일이란...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지, 언젠지 남편은 새 관찰용 망원경을 샀다. JP 인생, 난생처음의 '내돈내산'이다. 필요 아닌 자기 취미를 위해 처음으로 해 본 소비! 망원경 목에 걸고 경안천으로 나갔다가 가장 행복한 소년의 얼굴이 되어 돌아온다.
여보, 오늘은 드디어 황조롱이를 봤어! 봐 봐, 얘가 황조롱이야. 황조롱는 정신실이야. 매과거든... 아무래도 황새를 본 것 같아... 아, 이 녀석이 깝작도요인지, 아닌지 헛갈린단 말야...
시끄럽고 지겨워서 새 얘기 그만 하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경안천에서 돌아와 말없이 저녁을 먹는다. 조용하긴 한데 어디선가 안.절.부.절.안절.부절.안절부절. 안절부절안절부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침묵의 식탁이 오래 가지 못했다. "여보, 미안한데... 나 새 얘기 딱 하나만 하면 안 돼? 그 녀석 깝작도요 맞아. 확실해! 이 사진 봐 ... 보니까...@#^#%$@^$....." 아이들과 통화하면서도 기승전"새" 이야기이다. 채윤이가 그런다.

엄마, 아빠 새에 꽂혔어? 새 얘기만 해. 새는 원래 엄마가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둘이 좋아하는 방식이 다르대. 엄마는 새와 교감하고, 아빠는 새를 이해한대... 새와 교감은 또 뭐야? 깔깔깔...
새와 사랑에 빠져 망원경을 들더니 경안천 겨울 철새와 텃새의 이름을 외우고 변별해 낸다. 하루하루 더 새를 '이해'해간다. 시끄럽다고 그만하라고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는 그의 새 지식에 놀랍다.
평생 새를 좋아하는 나는 그 순간 날아든 새를 느낀다. 새는 내게 초월의 존재, 관상과 현존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존재. 맞다, 남편의 말처럼 나는 새를 느끼거나 교감한다. 우리 각자의 사랑법이다. 이해하고,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남편이 사랑하는 방식이다. 새뿐이랴. 사람에게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도 그러하리라. 남편에게 소년의 얼굴을 선사한 새로운 연인, '새 연인'에게 고맙다. 예쁜 사랑하길…! 나란 여자, 참 너그러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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