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아이 품었던 시절, 태교라 이름 붙이고 했던 일이 딱 하나 있었다. 〈지혜 성경〉이라는 어린이용 잠언 성경을 아빠 목소리로 읽어준 것이다. 입덧이 심해서 초기에는 하루하루 생존이 관건이었으니 안정기에 접어든 때부터였을 것이고, 매일 저녁도 아니었을 것이다. 둘째 현승이 때는 부모님과 함께 살기도 했고, 네 살 채윤이가 있고, 풀타임으로 일하던 때라 몇 번이나 했을까 싶다. 그래도 두 아이 태교, 하면 아빠 목소리로 읽어준 잠언이었다.
잠언이었던 이유가 있다. 당시 유치부 설교로 교회 봉사하고 있었는데, 매주 설교하며 온몸으로 알게 된 것이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아이가 있다. '듣는 아이'와 '안 듣는 아이'. 머리가 좋고 나쁘고, 성격이 활달하고 조용하고... 이런 모든 조건과 상관없이 설교에 귀 기울이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전 나름 유치원 교사도 했었고, 성가대 지휘와 찬양 선생님을 비롯해서 오랜 주일학교 경험이 있었다. 당시에는 초년병 음악치료사로 장애 아이들을 만나고 있었고. 나름 남 부럽지 않은 아이들 전문가였던 셈. 그런데 설교자로 아이들 앞에 섰을 때만 보이는 것이 있었다. 듣는 아이와 안 듣는 아이.
그 즈음 채윤이를 품었고, 뱃속 아이를 위한 단 하나의 기도는 "하나님, 진리를 듣는 아이가 되게 해주세요. 그런 귀를 가진 아이를 주세요."였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잠언 읽어주기 태교였다. 채윤이의 이름에는 잠언의 주제가 담겨 있기도 하다. 가려낼 채, 물 깊고 넓을 윤. 옥편을 검색하고 뒤지고 하여 찾아낸 한자이다. 깊고 넓은 하나님의 지혜로 분별력 있는 아이. 이 바람과 기도는 현승이 이름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지능과 성격과 무관한 '듣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확인한다. 듣는 사람이 있고, 듣는 척하는 사람이 있다. 듣는 마음이 있고 결코 듣지 않기로 작정한 마음도 있다. 그리고 한 사람 안에 그 두 마음이 공존한다. 듣지 않기로 작정한 마음일 때, 타인은 물론 누구보다 나를 지옥에 가둔다는 것은 아프게 배우는 진실이다. 매일 아침 말씀 묵상과 영적 독서를 통해 '듣는 마음'을 수련한다. 할 수 있다면 이른 아침 말씀으로 기도할 때마다 어제까지의 경험을 리셋하여 새 마음으로 그분의 메시지를 '듣고' 싶다.
수년 전에 출간한 《나의 성소 싱크대》에 "성경 안 먹이는 엄마"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아이들에게 말씀 묵상이나 기도를 강요하지 않기로 작정한 나름의 육아 원칙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 본성 안에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다는 믿음이다. 신시아 부조의 《마음의 길》에 나오는 말로 하면 "사랑의 숨겨진 근저" the hidden ground of love이고, 쉽게 말하면 우리 존재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이다. 좋은 것을 가르치는 방식 또한 좋아야 한다. 하물며 가장 좋은 하나님을 강압으로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다. 가장 막막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 말씀 묵상을 즐거워하고 예배로 행복한 부모의 모습, 갈등과 다툼 속에서 결국 사랑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저절로 자기 하나님을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성인이 된 아이들 보면서 이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완벽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 "나는 하나님을 더는 믿지 않겠다",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같은 말을 들어야 했고, 그 순간에는 마음이 무너졌고 신앙 교육은 실패한 것 같이 느껴졌다. 뒤늦게 목사가 된 아빠로 인해 '목사의 딸, 목사 아들'의 의무를 지우지 않으려 애썼지만, 이미 붙여진 이름으로 인해 스스로 지는 짐은 어쩔 수 없었다. 아빠가 목사인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겪었던 진통의 시간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교회에 대한 냉소와 혐오의 태도가 느껴질 때마다 밀려오는 죄책감을 떨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안 먹이는 엄마"를 다짐하고, 종교적 행위를 강요하지 않은 선택은 후회하지 않는다.
두 아이 모두 자기 하나님을 찾는 여정을 가고 있다. 모범적인 교회 언니, 교회 오빠 같은 청년은 아니지만, 한계 앞에서 기도할 줄 아는 아이들이다. 아빠의 설교에 은혜 받으며 동시에 차겁게 비판 할 줄 안다.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만큼 온 세상과 인류를 사랑하시는 크고 신비로운 하나님을 만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충돌하는 제국의 가치를 저울질하며 갈등하고 좌절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지만, 결국 좋은 편을 선택하리라 믿으며 기다리게 된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 큐티〉로 말씀 묵상을 하고 있는데, 이 즈음 본문이 잠언이다. 그래서 태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책이 아직 있을까? 온라인 서점에 검색했다. 저 표지, 아... 저 표지였어! 개정판이 나오고 절판되었지만 오래도록 아이들 그림책과 함께 뒹굴던 《지혜 성경》 표지에 울컥, 반가웠다. 성인이 된 아이들과 함께 잠언 묵상을 하면 참 좋겠다 싶다. "성경 안 먹이는" 엄마가 갑자기 가족 큐티 나눔을 하자고 하면 먹히지 않을 일이니 가볍게 요청했다. 아이들에게 각각 태교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최소한의 부담감으로 함께 하기를 요청했다. 매일 아침 아빠의 해설과 묵상, 그리고 엄마의 묵상을 가족 단톡방에 공유할 테니 눈팅만 해달라고. 한 번 읽기만 하자고 했다.
바라기는... 뱃속에 품고 기도했던 것처럼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삶과 신앙이 더욱 무르익었으면 한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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