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는 생애 마지막 몇 년을 그보다 단조로울 수 없게 보내셨습니다. 단조로운 삶 속에서 하루하루 기력이 약해지고, 더불어 시력과 청력 등의 감각도 둔감해지셨습니다. 잘 듣지 못하시니 긴 대화나 통화는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시니 여러 번 같은 말을 하거나 소리를 높이는 딸의 목소리에 민망해하시며, 무력하고 어색한 웃음으로 알아듣는 척 대화를 마무리하기도 하셨습니다. 밝고 긍정적인 분인데, 몸과 함께 기분까지도 침울해 보일 때는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벌떡 일으켜 세우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엄마, 기도 해줘요. ㅇㅇ가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어요... 김서방이 요즘... 이래요. 기도해 줘요.”라는 말에는 귀가 번쩍 뜨여 반응하시는 겁니다. 그 순간 귀도 잘 들리시는 듯하고, “알었다, 기도허야지. 내 기도 소용없어. 니가 기도해야 헌다….” 하시면서 벌써 기도 태세를 갖추고 생의 에너지를 다시 길어 올리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야야, 전화 끊어라. 느의 외삼촌하고 이모한테도 기도 부탁을 허야겄다.” 노화와 함께 옅은 우울 속에 계시다 중보기도의 소명이 일깨워지자, 생기를 되찾으십니다. 요즘 병원에 계신 시어머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 병원의 환경 등, 온갖 불편한 것에 대해 한참 늘어놓으시다가도 “어머니, ㅇㅇ가 중요한 시험 앞두고 있어요. 기도해 주세요.” 한 마디에 “그래, 기도해야지. 우리 ㅇㅇ, **... 위해서 내가 늘 기도하지.” 하시면서 한창 건강하실 때 사셨던 ‘기도 용사’의 면모를 보여주십니다. 중보기도는 누구보다 기도하는 그 사람을 먼저 구원합니다. 노화와 질병이라는 감옥에 갇혀 ‘쓸모없음’의 우울과 싸우던 어머니들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의 팔을 높이 드는 순간 좁은 감옥의 문은 열립니다. 나의 아픔에만 매몰되어 있던 시선이 타자의 고통을 향해 뻗어 나갈 때, 비로소 멈춰있던 생명의 에너지가 다시 흐르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는 단절과 고립, 무기력과 무감각으로 딱딱해진 마음 밭을 갈아엎어 말랑하게 만드는 일인가 봅니다.
<시니어매일성경> 7-8월 호, 기고글 "타인의 고통에 기댄 나의 구원, 중보기도" 중
평생 기도로 자녀들을 사랑했던 노년의 어머니들을 일으켜 세우는 한 마디는 "기도해 주세요"였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라는 질문에 바로 돌아온 '먹고 싶은 메뉴'는 갈색 요리사 엄마를 뚝딱 요리사로 변신시켜 일으켜 세웠다. 점심때 놀러 온 시누이들 식사를 칼국수 집에서 대접하고 널브러져 있던 오후에, 벌떡 일어나 파스타를 만들었다. 들어오자마자 기다리지 않고 먹게 하기 위해서 15분 안에 만들었다. 나 대다나다....! 우리 엄마 같은 기도의 용사는 못 되지만, 요리의 용사는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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