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엄마55 결혼식에서 만난 엄마 부장님 같은 표현이지만 "백만 년 만에" 결혼식에 다녀왔다. 조카 결혼식이다. 막내 외삼촌을 뵈었다. 보기 드문 좋은 노인이시고, 좋은 노인이 되시기 전부터 그냥 좋은 외삼촌이었다. 우리 엄마와 제일 마음이 잘 통하던 분이기도 하다. 엄마 노년에 침대에 누워서도 전화로 연결되어 있던 막내 동생이고. 좋은 부모가 계시면 늘 그렇듯, 삼촌의 자녀들끼리도 화목하다. 사촌 언니 오빠들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신 외삼촌을 발견하고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에 눈만 보였다. "삼촌!"하고 달려갔다 얼음이 되고 말았다. 엄마다! 엄마의 눈이다. 어쩌면 그렇게 엄마의 눈이다. "삼촌, 건강하시죠?"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식이 진행되고 식사하는 중에도 힐끗힐끗 삼촌 계신 테이블을 바라.. 2021. 6. 6. 꽃보다 엄마 영혼 이제야 나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몸을 입고 인간이 된 이유를 알았다. 죽음으로, 가장 극적인 죽음, 극형으로 '몸'을 버리신 이유를 알겠다. 아주 잠깐 인간으로 사시다 그 몸을 버리고 돌아가신 이유를 알겠다. 함께 먹고 자고, 몸으로 부대끼던 당신의 제자들 앞에서 무력하게 끌려가신 이유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유를 알겠다. 두려움과 호기로움 사이 좌충우돌하던 베드로의 인격이 변형되었다. 선생님의 죽음을 수치스럽게 통과한 베드로가 그 새벽 자기혐오 속에 헛 그물질을 하는 그 심정을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불을 피우고 아침을 준비하며 따뜻하게 맞아주신 선생님.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할 그 수치스러운 지점을 짚어내시더니 용서 너머 부탁을 하시는 선생님. 그리고 나서 떠나신 선생님을 어.. 2021. 3. 12. 엄마 없는 아버지 추도식 아버지 추도식이다.가족 모임도 삼가야 하는 코로나 19 엄혹한 시절, 그냥 넘어가는 것은 어떤가 생각했다. 39년이나 지난 일 아닌가. 한 번쯤 각자 집에서 예배드리면 어떤가 하는 얘기도 오갔다. 결국 모인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다. 얼굴도 보지 못한 손주들에게 아버지는 기가 막힌 선물을 안기신다. 아이들에 할아버지(외할아버지) 추도식이 송년 축제와 같다. 기말고사 마치고 겨울방학과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 맛있는 것 먹고 노는 날인 것이다. “아버지 추도식인데 엄마 생각하고 울기 없기!” 고민 끝에 모이기로 결정하고 동생이 한 농담이다. 이걸 들은 우리 애들은 “삼촌 자신에게 하는 말 아니야?” 했다. 농담이 예언이 되었다. 예견되는 일이었으니 예언도 아니다. 이번에 모이지 말지, 모이지 말까, 나도 자.. 2020. 12. 15. 지난 추석 작년 추석에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추석, 설 명절에 흔하디 흔했던 장면들, 꿈만 같다. 생후 10개월 증손자와 95세 할머니가 눈을 맞췄다. 한 세기 가까운 나이 차이다. 사람을 알게 되면 이름부터 물어보고, 그 이름을 성경 안쪽에 적고 굳이 ‘이름’ 불러 기도하던 할머니.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외우니 적을 필요도 없다. 할머니가 그렇게 사랑하는 손녀 ‘지영이’가 낳은 ‘준우’의 이름은 듣자마자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할머니는 귀도 눈도 어두워 정확히 들을 수 없고 글자를 읽을 수 없으니 새로운 단어가 입력되지 않는다. 준! 우! 준우! 주누! 고래고래 알려드려도 입력불가. 자꾸만 ‘아가, 아가~아’ 손을 내밀어 보는데 아가는 엉덩이를 뺀다. 아가는 아가대로 10개월 뇌로는.. 2020. 10. 2. 몸이 기억하는 명절 희한한 일이다. 명절이라고 명절 음식 먹은 게 1도 없는데, 명절 저녁에 기름기 없는 깔끔한 음식을 먹고 싶으니. 52년 몸에 쌓인 명절 음식이 때맞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냐. 명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추석 저녁에 며칠 기름진 음식 먹은 느낌으로 풀밭 밥상을 차렸다. 희한한 일이다. 명절에만 엄마를 보던 것도 아닌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만 들어도 엄마 생각이 난다. 탄천을 걸으며 아무 자극 없는데도 엄마가 보고파 눈물이 난다. 목까지 슬픔이 가득 찬 것이, 다시 3월이 온 것만 같다. 엄마가 보고 싶다. 너무나. 2020. 10. 1. 따순 늠, 찬 늠 2014년 8월 1일 자 포스팅이었다. 매년 7월 마지막 주는 동생 네 휴가 주간이고, 엄마는 우리 집으로 휴가를 왔다. 가장 더운 때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하곤 했었다. 오늘 동생네는 오늘 휴가를 갔다. 하루 종일 마음이 이유없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뭔가 허전하고 우울했다. 밤에 산책하다 알게 됐다. 엄마가 집에 와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꽃게찜을 하고, 갈치조림을 하고, 팥을 삶에 팥밥을 하고. 무더위에도 따순 커피를 찾는 엄마랑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이 모든 게 힘이 들어 조금 짜증이 나고. 그래야 하는 시간이다. 엄마가 많이 보고 싶다. 오전 내 밥 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면서 사우나하는 셈 치자, 생각하며 참았다. 일을 다 마쳤으니 사우나에서 나온 셈 치고 딱 20분 에어컨 켜고.. 2020. 7. 29. 까노롬한 불에 가마안 두는 거여 ✓ 탄산수급 동치미 국물✓ 도라지와 오징어 초무침✓ 배추와 조화를 이룬 곱창전골✓ 완전 두꺼운 돈까스✓ 신김치로 끓인 동태찌개✓ 배를 갈아 드레싱으로 뿌린 부추 샐러드✓ 감자전✓ 고춧가루 토핑의 계란찜✓ 박대조림✓ 빨간 게장 우리 엄마 손끝에서 창조성과 생명력이 줄줄 흐르던 시절이 있었다.손에 잡히는 재료, 눈에 띄는 재료 모아서 한 상 차려내는 재주가 있었다.전설 속 음식이 되었다만.전수받은 요리가 거의 없어 더욱 전설로 남았다. 출출한 어느 날 '뭐 먹을 거 없어?' 할 때 나오는 떡이 있다.뒤에 뒤에 채윤이가 좋아하면서 붙인 제목이 '헐레벌떡'인데.인절미 콩가루를 털어 얼렸다 기름에 구워 꿀에 찍어 먹는 것이다. 주말 채윤이 아침으로 먹이려고 헐레벌떡을 굽는데 엄마 목소리가 귀에 울린다. ❝ 얼라,.. 2020. 2. 15. 나쁜 딸이 드리는 사랑의 기도 엄마의 노구는 얼마나 더 늙어야 그 늙음이 끝이 날까. 얼마나 더 무너지고, 망가져야 우리 엄마의 생기발랄하고 맑고 투명한 영혼을 놓아줄까. 침대에서 낙상하여 골절상 입은 엄마가 응급실을 거쳐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무너진 엄마의 몸을 마음에 끌어안고 주말을 보냈다. 코로나로 면회도 되지 않는 요양병원에 엄마를 (가둬) 두었다. 지난주와 다름없이 유머 감각과 자존심이 살아 있는 엄마의 정신과 맑은 영혼이 노구에 갇히고 노인병원에 갇혔다. 응급실 침대에 덩그러니 놓인 엄마의 몸은 사람 몸 같지가 않았다. 이동 침대로 옮겨져 촬영장으로 끌려가고, 잠시 누웠다 피를 뽑히고, 또 무슨 검사를 하고. 100년 가까이 버텨온 엄마 몸이 혹사당하는 걸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살살해주세요, 살살, 살살이요..... 2020. 2. 10. 늙은 젊은 엄마 분가하며 다 가져온다고 했는데 시가에는 아직 남아 있는 우리 물건이 있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 앨범은 꼭 가져와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아버님 돌아가시곤 '어머님이 인생 가장 행복했던 날'을 추억하며 들춰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채윤 현승이 어떤 시기의 사진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설에 가서 앨범에 있는 사진들을 찍어왔다. 현승이 낳고 짧은 조리원 경유하여 엄마 집에 얼마간 가 있었다. 낯선 곳이 너무 힘들고 두려운 현승이는 세상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다. 지금까지 한결 같다. 처음 집, 내 뱃속에서 나오던 순간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생애 초기에 그렇게 울어댔다. 그땐 몰랐는데, 저 성격에 터무니 없이 넓고 밝고 시끄러운 세상이 얼마나 두려웠겠나 싶다. 그나마 사람 몸에 닿아야 울음을 그치는 통에.. 2020. 1. 25. 순진무궁 천진난폭 엄마의 생신 95세 엄마의 생신이다. 5년 모자란 100년의 인생이라니! 명절 후 딱 한 달 후라 밖에서 하거나 출장 요리로 하곤 했는데. 어쩐지 이번엔 집에서 해드리고 싶었다. 한 2년 요리에 손을 놓고 살았더니 뭘 어떻게 했었던가, 생각도 안 나지만 하자, 하고 싶다. 엄마를 사랑하는, 할머니를 사랑하는 식구들 모여 맛있는 식사를 하자! 하길 잘했다. 남편은 물론 채윤이 현승이까지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줘 준비가 수월했다. 정 많은 친정 식구들 모여 짧고 굵게 즐거운 시간 보냈다. #1 전날 장보기와 청소, 재료 손질 등을 마치고 현승이가 말했다. “엄마는 좀 힘들겠지만, 나는 내일 외숙모가 와서 엄마를 돕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일 만큼은 외숙모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밥 먹으며 좋겠어” 채윤이도 적극 동의. .. 2019. 3. 5.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