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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엄마55

어버이날 하얀 꽃 며칠 산책에 실패했다. 비가 그쳤나 싶어 나가면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비 맞으며 걸을까, 들어가 우산을 챙겨 나올까 갈등하다 생각보다 차거운 비에 집으로 들어오기를 두세 번. 완전히 그친 것을 확인하고 밤산책에 나섰다. 길은 젖었으나 적당한 기온, 적당한 바람에 며칠의 결핍감이 싹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탄천 길 좋다. 아, 좋다. 향기로 존재감 뿜뿜하는 아카시아가 코와 눈과 마음을 잡아끌었다. "하나님, 아카시아 향기가..."로 시작했다는 어머니의 대표기도가 다시 생각난다. 아카시아 향에서 하나님을 느끼는 감성과 영성이 우리 어머니에게 있다는 것, 아는 사람이 있을까? 어머니 영혼의 아름다움을 나만큼 아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어머니는 아카시아꽃이다. 탄천에 찔레꽃이 있었다고? 길 오른편에.. 2024. 5. 9.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엄마 4주기 추도예배를 뉴질랜드 다녀온 주일에 조금 늦게 드렸다. 엄마 얘기 그만 하려고 했는데, 4주기에 맞춰 글을 쓰게 되었으니 좋은 핑계로 당당하게 다시! 거기 쓴 말을 그대로 다시 경험하는 일이 생겼다. 4주기에 엄마가 여러 모양으로 다시 말을 걸어온다. 나는 매일 엄마를 새롭게 만나가고 있다. 이제는 더 조금씩 알아듣고 있다. 엄마가 나에게 하려고 했던 말을. 엄마 없는 하늘,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와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쓰기’로 숨을 쉬었어요. 그리고 소중한 것을 배웠어요. 슬픔을 드러내면 누군가는 같이 울어준다는 것을요. 물론 위험한 일이었어요. 그만 잊어라, 장수하시고 좋은 곳 가셨는데 뭘 그리 유별나게 구느냐, 믿음의 사람이 천국을 소망해야지... 그런 소리가 이미 들리는 듯했.. 2024. 4. 6.
별이 빛나는 밤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쏟아지듯 빛나는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펠로우십교회 리더십 수련회로 시작한 뉴질랜드의 여행이었는데. 첫새벽에 '일단' 보고 말았다. 캠핑장이라 외부에 있는 화장실에 가느라 잠든 남편을 깨워서 나갔다. 혹시, 하고 무심코 하늘을 봤는데 안경도 끼지 않은 눈인데 이미 반짝반짝...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는 남섬 여행 둘째 날에 테카포 호수에서 본 밤하늘! 작은 성공회 교회 하늘 위로 사진에서나 보던 별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남섬 여행 정보를 이렇게저렇게 주워들으면서 존 맥클린의 를 흥얼거리게 되었었다. 엄마 4주기와 맞물려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꾸 흥얼거리다 보니 가사 한 문장만 결국 남았는데, 최대환 신부님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제는 알겠어요, 당신이 내게 .. 2024. 4. 5.
마지막 생일 페이스북에 5년 전의 포스팅이라며 올라왔다. 엄마 생신잔치이다. 우리 집에서 내가 생신상을 차려 드렸다. 엄마 생신을 지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저 날이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4주기 추도식이 며칠 남지 않았다. 엄마의 마지막 생신을 추도식을 기억하는 봄날이다. “맞는 놈이 여기 쳐라, 저기 쳐라 허남? 혀주는 대로 먹는 거지” 이라니... 우리 엄마도 충청도 화법 쩔었었네! 돌아가신 엄마가 웃음을 준다. 5년 전 페이스북에 올렸던 엄마 이야기를 다시 본다. --------------------------------- 천진난폭, 순진무궁 우리 엄마(2019년 3월 5일) 생신상 차린다고 떠벌이고 생색 낸 김에 애기가 된 우리 엄마.. 2024. 3. 5.
엄마, 살아 있는 엄마 5월이 되면 괜한 결심을 하게 된다. 어버이주일 예배시간 "어머니의 넓은 사랑"을 부르거나, SNS 어디서 어버이날 어머니와 식사한 사진 같을 것을 보면 울지 말아야지, 괜한 허튼 결심을 하게 된다. 울만큼 슬프지 않을 것인데, 울만큼 부럽지도 않을 것인데 눈물이 먼저 설레발치는 짓은 그만이야... 하고 결심을 한다. 다행히 5월 주일들은 다른 교회 강의가 있어서 온라인 예배로 드리고 하느라 잘 넘어갔다. 6월 어느 수요일. 어느 교회 수요예배에 강의가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어버이 노래' 폭격을 당하고 말았다. 어쩌자고 수요예배 찬양 두 곡이 "어머니의 넓은 사랑"과 "예수 사랑하심은"이었다. 강의 시작 전 한 곡, 강의 마치고 한 곡. 강의 시작 전에 한 번, 강의 마치고 한 번.. 눈물 없이 보낸.. 2023. 6. 24.
230329 또 엄마 편지 엄마가 또 편지를 보내왔다.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을 총동원하여 마음을 보내왔다. 책상 앞에서는 뜯어볼 수 없는 편지라, 노트북 뚜껑을 딱 덮고 '봄날 우체통' 앞으로 나가야 했다. 2020년 봄은 잃어버린 봄이다. 봄과 함께 색도, 맛도, 생명도, 사랑도 모두 잃었었다. 여러 번 써서 퇴색한 단어이지만, 흑백 세상이었다. 퇴색... 색이 없는 봄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색이 드러난 적도 있지만, 그럴 때는 상처를 받았다. “꽃 피지 마! 우리 엄마가 죽었는데 꽃이 피는 건 잔인해!” 그렇게 2020년 봄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맞은 2021년 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달랐다. "이렇게 아름답다고? 세상이?" 하면서 봄 산책을 다녔다. 엄마를 잃고 얻은 막연한 것이 있었는데, 그 막연한 것은 '영원한 것.. 2023. 3. 30.
2023년 3월 10일, 엄마의 편지 2023년 3월 10일 봄 하루의 풍경이다.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활짝 핀 매화에 깜짝 놀랐다. 언제 이렇게 활짝? 길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만났을 때처럼 심쿵했다. 쑥이 제법 많이 올라와 있다. 며칠 전 산책 길과 또 다르다. 저걸 아까워서 어쩌지? 자동차와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라 관상용이다. 어느 숲에 들어가 저 정도 여린 쑥을 잔뜩 뜯어다 콩가루를 넣고 쑥국을 끓이고 싶다. 고사리 삶아둔 것으로 파스타를 했다. 갈치속젓이 만능 소스이다. 오늘은 엄마 3주기이다. 엄마의 죽음은 팬데믹의 고립으로 왔다. 그해 봄은 애도로 뿌연 시간이었다. 일상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고, 일상을 위해 눈을 뜨는 아침이 괴로웠다. 어느 밤, 문득 마주한 목련꽃에 충격과 함께 깊은 상처를 받기까지 했다. 먹고, 수다 떨고.. 2023. 3. 11.
7말8초, 엄마의 시간 왜 불쑥불쑥 엄마 생각이 나고,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고, 전화하면 받을 것 같고, 딸이여?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엄마에게 전화 걸어 한없이 울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드는가 했더니. 휴가 주간이다. 7말8초, 동생네 휴가 기간. 엄마랑 함께 보내던 시간. 밥을 차리다 깨달았다. 내가 저걸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애호박 새우젓 국. 내가 나 먹자고 저걸 만들 줄이야! 정말 엄마 음식이었는데... 나는 입에도 대기 싫은 반찬이었는데... 블로그에 있는 엄마 관련 글은 대부분 매년 7말8초에 쓴 것들이다. 다시 엄마의 계절이다. 전화 걸어서 딱 한 번만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삶의 모든 무게와 아픔이 씻겨 내려갈 것만 같다. "정신실이여?" 이 소리 한 번 들으면. 엄마와 캬라멜마끼야또 풍의 아이스커피 작.. 2022. 8. 1.
악투스 트라지쿠스(actus tragicus) 3월 11일, 엄마 2주기이다. 엄마 2주기, 코로나 2년. 2년 만에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몸도 마음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날에 엄마 2주기를 맞았다. 엄마의 마지막 나날, 요양병원의 '격리'로 함께 하지 못했는데. 2년이 지나고 내가 '격리'되어 추도 예배도 무엇도 하지 못하고 보냈다. 위로와 이끄심은 의외의 길을 따라 온다. 대학원에서 이란 과목을 듣고 있다. 강의와 선곡으로 엄마 2주기를 기리고, 죽음을 묵상하며, 큰 위로를 받았다. Bach의 칸타타 ‘악투스 트라지쿠스(actus tragicus)'다. ‘장송 음악’으로 불리는 이 음악의 원제 ‘악투스 트라지쿠스(actus tragicus)'는 '죽음과 이별이라는 인생의 비극 앞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질문해온다'고 신부님(교수님)은 강.. 2022. 3. 12.
엄마, 엄마에겐 매 순간 새해지? 종갓집 막내며느린데, 심정적으론 맏며느리로 살았다. 거듭되는 명절을 통해 단련된 23년 차. 막내며느리, 맏며느리 상관없이 대한민국 며느리이며 딸이며 여자는 엇비슷한 짐을 지고 산다. 곡절없이 지나는 명절이 없다. 명절이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문제다. 구조를 파계하여 며느리 명절을 잘 지내고 엄마에게 갔다. 엄마 산소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채윤이가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외할머니한테 가자." 명절 오후, 사랑의 의무 또는 의무의 사랑의 짐을 내려놓는 시간에는 엄마에게 갔었다. 그리 편하진 않았었다. 명절 음식을 차려놓고 맞아주는 친정엄마가 아니었다. 또 다른 어떤 며느리를 착취함으로 생존하는, 전적으로 의존된 엄마였다. 엄마를 중심으로 엄마 집에 모여든 친정 식구들은 엄마 며느리에겐 또 다른 부담이.. 2022.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