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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영원에 잇대기3278

종강의 밤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우연히 찾아든 선물같은(다른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 시간이었다. 대학원 4학기를 완전히 마치는 마지막 종강 날이었다. 수업 마치고 늘 수녀님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곤 했는데, 학생으로서 특혜였다. 그날 수업으로 시작하여 별별 얘길 다 나눈 것 같다. 이건 진짜 상상도 못 한 일인데. 대학원 생각을 하면서 학교를 결정하는 문제로 의논을 하기도 했었다. 이 학교로 결정하고 "어느 신부님 강의는 꼭 들어보라"는 말씀을 해주실 때도 이런 날을 상상이나 했냐는 말이다. 4학기 차에 수녀님이 우리 대학원에 강의를 나오시게 되고, 그 과목은 무려 이었고, 박사논문으로 연구하신 베긴(Begine) 신비교사 '안트위르펜의 하데위히' 강의였으니! 이건 하나님께서 너~어무도 나만 생각.. 2023. 7. 2.
질문 한 번 잘하고 슈바인 학센 현승이는 마주 앉은 사람 말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신공을 갖고 있는데... 비법은 '질문'이다. 사람사람에게 맞춤형 질문을 조곤조곤 던지는 것이다. 아빠에게는 철학이나 성경 관련, 엄마에게는 꿈을 비롯한 사람 마음에 관한 것, 누나에겐 음악이나 친구, 영화 같은 주제. 엄마빠 함께 앉아 식사하며 음식 얘기하는 중(내 보기엔 질문 꺼리가 떨어져서 대충 내보낸 질문) "학센 알아? 먹어봤어?" 한 마디 하고 주일 저녁으로 특템하였다. 주일 오후엔 아빠가 살짝 나사가 풀리면서 지갑도 막 느슨해지는데. 뭔가 색다른 맛있는 무엇을 먹으며 셀프 위안을 얻으려는 뜻도 있는 것 같고. 암튼 덕분에 남해 독일마을에서 먹어봤던 독일식 족발, 슈바인 학센을 먹었다. 2023. 7. 2.
존엄한 죽음, 그 불가능의 가능성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6 최 선생님은 주변 모든 이들을 위한 상담자 같으시다. 선생님 댁 현관 앞에서 울며 나오는 한 여자분을 만났다. 내담자려니 했는데, 친구분의 며느리란다. 얼마 전 치매 증상으로 요양병원에 가신 선생님 친구분, 그 소식으로 선생님도 한동안 적잖이 힘겨워하셨었다. 듣자 하니 어머니 요양병원 입원 후 자녀들 사이 갈등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다친 며느리가 선생님을 찾은 것이다. 집에서 치매 어머니를 모시던 분이다. 스쳤지나 듯 마주쳤지만, 고통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일은 뭔가 남 일 같지가 않다. 선생님, 힘들어 보이세요. 좀 쉬실까요? 그러게. 기력이 없네. 이젠 상담도 접어야 할 때가 됐나 봐. 잠깐 있어 봐. 으읏짜, 내가 뭘 좀 먹어야 한다. 네, 선생님... 2023. 7. 1.
육식동물을 위한 비빔면 장맛비가 종일 내리는 날, 점심으로 비빔면을 했다. 고기만 달라고 하지는 않지만, 고기가 없으면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육식 인간 현승을 위해서 고기 몇 조각도 올렸다. 야채도 먹여야 하는데... 음, 배추를 얇게 썰어서 면과 함께 비볐다. 첫 입에 "으음... 역시 엄마가 삶으니까 면발이!"라고 한다. 면발의 식감을 말하는 건데, 아마 아삭거리는 배추의 지분도 있을 것이다. 비빔면을 베이스로 하여 고기와 야채를 균형 있게 잘 먹였다. 2023. 6. 29.
미리 책임 오타가 있네. 어, 같은 단어를 또 틀렸네. 몇 쇄를 찍었는데 오타가 있는 거야? 이런 건 출판사에 알려주는 게 좋은데. 엄마, 오탈자는 저자 책임이야? 편집자 책임이야? 그래, 그러면 내 책임이려니... 하고 그냥 읽어야겠다. 미래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장래희망이 편집자 / 그냥 편집자 아니고 반드시 꼭 '파주 출판단지'에서 일하는 편집자 / 알고 보니 오탈자 아니었고, 무식한 거였음 / 이래서 편집자 되겠나, 해서... 열심히 더 배우기로 함) 2023. 6. 29.
엄마, 살아 있는 엄마 5월이 되면 괜한 결심을 하게 된다. 어버이주일 예배시간 "어머니의 넓은 사랑"을 부르거나, SNS 어디서 어버이날 어머니와 식사한 사진 같을 것을 보면 울지 말아야지, 괜한 허튼 결심을 하게 된다. 울만큼 슬프지 않을 것인데, 울만큼 부럽지도 않을 것인데 눈물이 먼저 설레발치는 짓은 그만이야... 하고 결심을 한다. 다행히 5월 주일들은 다른 교회 강의가 있어서 온라인 예배로 드리고 하느라 잘 넘어갔다. 6월 어느 수요일. 어느 교회 수요예배에 강의가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어버이 노래' 폭격을 당하고 말았다. 어쩌자고 수요예배 찬양 두 곡이 "어머니의 넓은 사랑"과 "예수 사랑하심은"이었다. 강의 시작 전 한 곡, 강의 마치고 한 곡. 강의 시작 전에 한 번, 강의 마치고 한 번.. 눈물 없이 보낸.. 2023. 6. 24.
쉪 컴 백 살아 돌아왔다. 쉪이 살아 돌아왔거든! 강의하기와 강의 듣기, 원고 쓰기와 과제 쓰기, 학생인데 강사인 역할의 혼재 속에 세 시간 자고 버틴 날을 뚫고 살아 돌아왔거든! 찐하게 운동 마치고 일단 손쉬운 걸로 '오리 떡볶이'를 하자! 장을 봐서 집에 왔더니...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쉪 현승이가 "알맘마(계란 볶음밥)"을 해서 저도 먹고 누나도 멕이고, 그리고 밥이 부족하다며 아빠를 위해선 짜파게티를 끓여 계란프라이를 하고 있네! 이젠 밥도 없고, 짜파게티도 없고... 고갱님도 없고... 먼 산 바라보는 정 쉪은 자기를 위한 요리를 했다. 한 학기, 아니 네 학기 대학원 과정 마치고 살아 돌아온 자기를 위해 정 쉪이 요리를 했다. 쉪 컴 백! 2023. 6. 23.
설탕 듬뿍 토마토 토마토 철이다. 퇴촌 토마토 축제를 하면 토마토 철인 걸 안다. 이 계절에 나오는 향이 진한 토마토 정말 좋아하는데... 월요일에 부러 이걸 사러 퇴촌에 갔다. 영양소가 파괴되네 어쩌네 하니가 매번 그러는 건 좀 그렇고.... 한 번 정도는 설탕 아끼지 않고 뿌려서 내놓는다. 나도 그리 줄 생각이었는데, "미치도록 달게 설탕을 막막 뿌려 달라"는 채윤 돼지 님의 주문도 있었고... 토마토 설탕 뿌려 먹으면 여지없이 엄마 아부지 생각나고. 다 먹고 생긴 달달한 국물 가지고 동생이랑 싸우던 생각도 안고. 2023. 6. 19.
꽃보다 남자들 캄보디아 선교여행을 가는 JP이 떠나기 전날에 꽃을 사 왔다. 자기 없는 사이 자기 본 듯 보란다. 왠지 당신이 싫어할 조합이지만...이라고 했다. 어, 완전 내가 좋아할 조합인데! 꽃아서 식탁에 두었다. (미안해, 여보. 밥 먹으며 꽃을 보는데 꽃이 꽃으로 밖에 안 보여. 당신 생각은 꺼졌나 봐...) 캄보디아에 함께 간 남자 둘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속속 보내오는 세 남자 사진을 보면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왤케 대견한지...라고 말하다가 깨달았다. "아, 조장 누나 마인드구나!" 근 30여 년 전에 저기 두 남자의 청년부 조장 누나였었다. (지금은) 남편을 캄보디아에 보낸 (한때) 성경공부 조장이었던 누나 둘이 간절하게 기도하며 며칠을 보냈다. 두 조장 누나 각각의 오랜 (또는 그리 오래지 않은.. 2023. 6. 6.
이런 삼겹살 또 없습니다 기숙사 밥이 맛있다더니, 메뉴가 다양하고 식당도 여러 개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더니. 그래서 나는 "원래 모든 음식이 많이 하면 맛있어."라고 응대했다. 몇 개월 지나더니 기숙사 밥이 맛이 없다고. 대량으로 하는 음식이라 맛이 없다고 못 먹겠다고 한다. 삼겹살에 명이나물과 밥 한 공기를 줬는데 "와, 이 맛이지! 이거지, 엄마!" 한다. "너 엄마 음식이 그립고 그렇기도 해? 엄마가 한 음식 뭐가 생각나?" 했더니 "당연히 생각나고 엄마가 해주는 모든 음식이 다 생각나지. 엄마 음식은 나만을 위한 음식이잖아. 나한테 딱 맞춘 그런 음식이잖아. 명이나물 어디서 샀어? 비싸? 내가 전부터 삼겹살하고 같이 먹고 싶다고 했었지?"라면서 처묵처묵. 맞아, 너만을 위한 단 한 번의 삼겹살. 이런 삼겹살 또 없는 거.. 2023.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