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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마음의 환대

마리아의 마음 마르다의 손

by larinari 2026. 2. 17.

 

명절마다 만두 전쟁, 송편 전쟁이었는데. 결혼 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에 충격을 받기도 했는데, 어언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송편 한 말, 전 열두 가지, 스무 명이 넘는 식구가 모여 식사하던 명절이 아득하다. 그 많던 아버님 중심의 사람들이 흩어졌다. 아버님을 위시하여 여러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병원에 계시니 모일 집이 없다. 그러니 명절을 긴 휴일로 보낸 시간이 빡센 종갓집 명절의 시간만큼이나 길어지고 있다. 병원에 계신 어머님 모시고 나와 집에서 모이자면, 우리 집 밖에는 없다... 라는 생각을 늘 하는데. 그렇다고 우리 집에서 모여야 한다는 당위란 없다. 모름지기 명절이란, 며느리란, 여자란... 온갖 당위가 어른들의 존재와 함께 사라졌다. 우리 집에서 모인다는 것은 나 혼자 음식을 다 준비해야 한다는 뜻인데 매 명절 때마다 남모르게 갈등을 하다 이번에는 선언했다. 조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어머님 말씀처럼 당신이 키운 손주인데... 집에서 식사하며 인사드리면 좋겠다는 내 혼자의 자기만족적 그림도 있었고. 이런 일만 있으면 긴장부터 하고 보는 남편에게 "여보, 걱정하지 마. 기꺼이 하는 거야." 기껏 마음먹었더니 후유증 쎈 독감에 걸려서 어찌해야 하나 싶었으나 적당히 회복되고, 적당히 무리하지 않으며 준비하고 잘 치렀다. 말없는 가족들 달그락달그락 숟가락 소리만 나는 식탁이었다. 그 고요한 '달그락달그락'을 BGM 삼아 주방에 혼자 서서 다음 음식 준비하고, 내놓고 하는 시간이 평화로웠다. 며느리가 하녀냐, 나도 우리 엄마에겐 소중한 딸이다, 당위의 수감자였던 젊은 시절에는 견딜 수 없는 그림이었는데... 평화로웠다. 무엇보다 어머님이 잘 드셨다. "나는 못 먹는다. 이래서 못 먹고 저래서 못 먹고..." 하는 '거식 방어' 없이 맛있게 많이 드시는 어머니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지지난 주일 설교 본몬이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였고. 어제 아침 말씀 묵상 후에 "마리아의 마음으로 마르다의 손"이 되어 가족들을 환대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돌아보면 30여 년 명절 풍경(내 마음의 풍경을 말하는 것이다)이 그대로 나의 성장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페미니스트 동지 채윤이가 함께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이 정도 얘기하면, 말 너머의 수많은 이야기를 다 알아듣고 엄치 척! 하면서 "에쉐트 하일! Brave Woman!" 해줬을 것이다. 명절은 보고 싶은 채윤이 생각이 사무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는 향심기도 시작하던 근 20여 년 전에 제랄드 메이 책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되었었다. 관상과 활동의 아름다운 조화, 관상적 현존에 관한 가르침이다. 읽고 또 읽어 너덜더덜해진 페이지를 다시 찾아 읽다가 옮겨 적어본다.  

 

관상적 현존에 대한 또 다른 긍정적인 이미지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일화이다. 예수님은 이 사랑하는 친구들의 집에 초대받으셨다. 그때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었고 마르타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매우 바빴다. 마르타는 동생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타가 너무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하셨다. 사실상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라고 하시면서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으니 그것을 빼앗지 말라고 하셨다. 이 대목은 많은 사람들, 특히 대다수 여성들에게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겉으로 모면 이 말은 마치 예수님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마르타를 나무라시고, 수동적으로 앉아서 듣기만 하고 있는 마리아는 칭찬하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은 마르타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그녀가 하고 있는 걱정들에 도전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의 유순함이 아니라 그녀가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을 칭찬하시는 것이다.(눅 10:38-42)

마르타의 마음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그리스어는 '메림나오merimnao'이다. 이 말은 수많은 것들에 몰두하여 마음과 정신이 산만한 상태를 의미하며, 양쪽으로 잡아당겨 '산산이 흩어지다'란 의미인 '메리스모스merismos'라는 어원에서 파생되었다. 

문제는 마르타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일하는 데 사로잡혀 마음을 거기에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진정으로 관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필요한 한 가지, 곧 하느님께 열중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것은 어느 특별한 순간에 일어났는데, 바로 마리아가 침묵 속에 조용히 머물러 있음으로써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후에 "마리아는 마르타의 일을 도우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마음을 집중할 수 있었다."라고 이야기가 전개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게다가 만일 예수님도 함께 마르타의 일을 도와주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마르타의 문제는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김으로써 자신의 의식을 주님의 현존으로부터 빼앗겨 버렸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활동과 기도를 구분하려고 한다. 그들은 아마도 "하느님이 나에게 의지를 주셨다. 그래서 하느님은 내가 스스로 행동하기를 원하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런 말을 증명할 아무런 근거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확실히 하느님은 우리가 행동할 때 그분께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거나 기울이지 않을 자유를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우리가 내면 깊은 곳에서 간절하게 추구하는 것들은 모두가 사랑이 전부이신 분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의식하면서 매 순간 살아가며 행동하고 호흡하는 것이다.

제랄드 메이 《일상의 기도를 넘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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