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래 초록 요리사였다.
타고난 색은 초록이다.
초록빛 잔디, 숲을 보면 주체할 수 없는 평화가 밀려온다.

초록 요리사로서
삶과 세상을 요리하는 게 제일 편하고 익숙한데.
어쩐지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초록에 연연하여
다른 색은 느끼지도 누리지도 못하니 말이다.
특히 어떤 색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예를 들면, 갈색...
나름의 서사는 있다.
열세 살, 이제 막 틔운 새잎 같은 인생을 통째로 흔든
죽음의 사건 때문이다.
1981년 12월 16일, 겨울의 재난.
갈색 겨울나무, 겨울의 풍경은 무작정 싫었다.
초록에 집착했다.

나이 육십을 바라보며 갈색도 좋아졌고,
기쁘게 갈색 요리사로 산다.
그래도 내 바탕색은 초록이다.
초록은 얼마나 싱그럽고 풍성한가.
초록은 '성장'의 색이다.
성장하는 초록이들의 아름다움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인가.
갈색 죽음에 물들어 '구겨지고 빛바랜' 나의 초록을
거기에 비춘다.
그래, 구겨진 초록에 금이 간 항아리이지만
조금씩 나아지면 되는 거야...

이즈음엔 초록 요리사이다.
제철 '초벌 부추'와 '청도 미나리'가 손에 들어왔고.
장을 보다 만난 매생이를 지나칠 수 없었고.
초록에서 시작하여 피어나기 시작한 프리지어 향기가
코끝에서 떠나질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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