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아침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꽃을 샀다. 며칠을 고민하여 선물도 준비했다.
주일 예배에 세례식이 있는데, 모처럼 예수 믿는다는 것, 예수의 공동체라는 것의 본질을 일상에서 느끼는 일이다. 남편으로서는 목사 인생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라고 했다. 교회 등록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으니 으레 하는 의례로서의 세례식이 아니다. 교리의 틀에 넣고 찍어내는 식의 세례가 아니다. 메타노이아, 삶의 방향을 바꾼 그 선택을 확인하는 세례이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그 선택, 본연의 세례 그것이다.

'갑자기 떠난 친구의 장례식에 예배를 인도해 줄 수 있는지' 울며 걸어온 권사님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한 만남이다. 가서 장례 예배를 인도했고, 인사의 차원으로 두 아들과 함께 주일 예배에 한 번 오신 P 형제님이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고... 사랑방이라 불리는 소그룹 공동체에 들어가 연결되고, 같은 취미를 가진 오토바이 타는 형님 아우들을 만나고, 그렇게 "예며든"(예수님께 스며든) 시간을 거쳐 세례를 받으셨다.
설교가 재미있는데, 재미있게 들은 설교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힘들고. 교회 오면 참 좋은데, 죄 많은 나 같은 사람이 여기 앉아 있는 것이 맞나, 위선은 아닌가... 이런 시간과 성경 공부 끝에 선.택.한. 세례이다. 식을 마친 후 축하 시간은 연예 대상을 방불케 했다. 한 아름에 안을 수 없는 꽃다발 세례와 허그들... 눈물이 자꾸 났다.

공교롭게도 남편의 목사 인생은 죽음과, 여러 죽음과 맞물린다.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하고, 그보다 열심히 할 수 없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 후 풀타임 목회자로 3년을 산 후에 목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고3 때부터 품었던 목사의 꿈이지만, 목회자로 사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3년이 걸렸다. 과감히 결정하게 한 힘은 죽음에서 왔다. 5월에 청년 한솔이, 6월에 아버님, 그리도 또 다른 청년 일식이의 아버지. 연이은 세 죽음이 던진 질문에 응답하여 남편은 목사로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극적인 반전으로 전세 계약을 파기하며 목회의 길을 이어가게 되었고, 이듬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즈음 교회 회보에 "죽음을 짊어진 삶"이란 글을 썼었다.
흔히 말하는 단독 목회의 형태로 목사를 살았던 지난 10여 년, 목회를 그만 두겠다는 두 번의 결정이 있었다. 두 번 다 죽음에 가로막혔다. 갑자기 암 선고받으신 권사님의 투병과 죽음과 장례 예배를 함께 해드려야 한다는 거룩한 책임감으로 멈추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교회 주보의 로고를 오려서 현관에 붙여 놓으신 귀여운 장로님의 임종 예배를 드려 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다시 발목을 잡았다. 죽음을 짊어지고 시작한 목사의 길을 포기하려 할 때마다 '성도의 죽음' 어깨를 눌러 다시 앉혔다.
P 형제님의 세례식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회심, 생명의 리추얼이었다. 극한의 고통이 가져온 회심이라니... 이 아픈 역설을 설명할 수 없어서 더욱 눈물이 났었다. 이 죽음과 생명의 교차가 다시 한번 목사 소명의 길과 맞물렸다. 목사로 사는 일, 연좌제처럼 묶여서 그의 영광과 오욕을 함께 살아야 하는 아내와 아들과 딸로 사는 일이 가족의 운명이기도 하다. 죽음을 짊어진 삶으로서의 목회,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목사의 딸, 목사의 누나, 목사의 아내라는 정체성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쓴 글이 <신앙 사춘기 너머>가 아닌가 한다. P 형제님의 세례식은 인생을 다 털어 넣어도 아깝지 않을, 충분히 값진 소명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오욕과 영광을 함께 끌어안은, 죽음을 짊어진 그의 목회를 부드럽게 받아들인다. 일찍이 죽음으로 아버지를 빼앗긴, 목사 아버지를 빼앗긴 내 운명과 함께. P 형제님의 세례식으로 하늘 아버지 그분께서 확인해 주셨다.
P 형제님의 신앙 여정, 남은 인생 여정을 위해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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