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시까지 줌으로 하는 내적 여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소파에서 기절하듯 낮잠을 잤다. 기절 낮잠은 참 오랜만이다. 이유 있는 기절 낮잠인 것이, 한 이십몇 년 만에 시험공부를 했는데, 그야말로 시험공부였다. 외우는 공부 말이다. 문제는 나와 있지만, 문제마다 답을 정리하는 것이 리포트 하나를 써야 하는 수준이고, 그걸 쓰자면 한 과목의 한 학기 공부를 정리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간 의미 있게 들었던 과목을 내 것으로 정리하는 시간이 되고, 그걸 외우기 위해 안 쓰던 머리를 써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라고 지나고 나면 말할 수 있는 거지! 답을 정리하고 외우느라고 죽을 뻔했다는 말은 하지 말자.)
 
기절 낮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시험공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아... 논문 쓰고 싶다. 외우는 고통에 비하면 논문 쓰기가 훨 낫네" 했었으니까. 정말 달콤한 책상 앞 시간이구나... 하는데, 채윤이가 등장하여 카페 가자고 난리를 친다. 점심 먹기 전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 장은 봐야 한다." 이런 얘길 했던 것 같은데, 분명히 가기로 했다고 떼를 쓰고 (진짜로) 거실 바닥을 구른다. 쟤가 미쳤나 싶어, 미친 애는 이길 수 없지 싶어 카페에 가기로 했다. 주섬주섬 책을 챙겼더니 "제발, 제에발... 그냥 보통 엄마처럼 카페에 가자"고 다시 발을 구른다. 책 가져가지 말라고. 쟤가 미쳤나 싶었지만, 기꺼이 져주기로 하고 지갑과 휴대폰만 챙겨 나섰다.
 
채윤이가 꼭 가고 싶었던 카페는 늘 지나다녔지만 카페인 줄도 몰랐고, 카페라 해도 "어반 런드렛", 세탁소 겸 카페라니 끌리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끌려 나온 몸, 끌려가자 싶어 들어간 카페는, 오!!! 분위기 좋고, 뷰 좋고, 음료 마음에 들고! 1층은 카페, 2층은 세탁소라는 이상한 조합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창가에서 보이는 내가 늘 걷는 탄천 길의 큰 나무였다. 오미자 신맛 좋아하고, 자몽의 쓴맛 정말 좋아하는데, 얘네 둘을 콜라보한 '오미자몽'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한가로이 앉아서 즐기고 노닥거리는데 잃었던 어떤 것을 찾은 느낌이었다. 잃은 줄도 몰랐던 어떤 좋은 것 말이다. 커다란 덩치에 갑자기 다섯 살 채윤이가 되어 거실을 구르던 채윤이 덕에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만났다. 게다가 이 얘기 저 얘기, 수다수다 하다 채윤이가 툭 던진 한 마디가 마음 깊은 곳으로 풍덩 들어왔다. 듣고 보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는데,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그 말이었다. 듣고 보니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복닥거리며 찾아다니던 것이 있었는데 채윤이 입에서 나온 한 마디였다. 이럴 땐 정말 "아이는 하나님의 메신저다."라는 말이 수사가 아니다. 다 큰 채윤이가, 힘을 써서 나를 끌고 나가서 내 지갑을 털고 제 욕구를 채우는 줄 알았는데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끌려나갔더니, 내가 얼마나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달리는 것 자체에 취해서 어떤 감각을 마비시키고 살았는지 깨달아졌다. 문자 그대로 달린다는 뜻은 아니다. 내 방식으로만 일하고, 내 방식으로만 쉰다는 뜻이다. 카페에서 보이는 나무 아래는 내가 늘 걷는 길이다. 나름대로 쉼이며 멈춤이라 여기며 혼자 산책하는 길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내 방식대로 쉬는 고착이라는 것을 알겠다. 내 스케줄과 내 방식을 포기해야 비로소 늘 보던 나무 저편 아래에 카페가 있고, 상상치 못한 조합의 '오미자몽'이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런 딸, 잘 키운 딸, 열 친구 부럽지 않은 잘 키운 딸을 영접하게 된다.
 
마침 다음 날 주일 예배 설교의 본문은 이것이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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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진리'를 묻고 들었던 빌라도, 그가 어떤 예수님을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한 마디가 제 마음을 울립니다. "이 사람을 보시오!" 죄 없으신 사람, 하나님이신 이 사람이 수난을 향해 한 걸음씩 가시는 것을 봅니다. 사랑으로 내어주신 주님의 몸을 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얼마나 우리를 끌어당기는 말입니까. 정말 그러고 싶습니다. 자유롭게 되는 것... 궁극적으로 영적인 자유이겠으나, 어쩌면 영적 자유의 한 부분일, 어쩌면 영적 자유로 가는 길에서 아주 중요한 경유지일 '정서적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의 정의는 간단하네요. 다른 누구에게 나를 증명할 것이 없고, 다른 누구로부터 지켜 낼(얻어 낼) 것이 없는 상태.

물론 마음을 닫고 있으면, 연결을 딱 끊으면 저런 상태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바라는 것 없다. 나도 바라지 않을 거다! 이런 마음은 자유가 아니라 차라리 감옥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영향받지 않겠다는 심장은 자유라는 착각의 고립 상태입니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이 말하는 '정서적 자유' 공간이란... 충분히 작아지고, 충분히 벌거벗고, 충분히 수치당할 수 있는 자리인데요. 벗님들은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십자가가 떠오릅니다. 누명을 뒤집어쓰고, 맞고, 모욕당하고, 벌거벗겨져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곳에 매달려 수치의 극한에 있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 자신이 지금 어떻게 보이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자기답게 생의 마지막 숨을 내뱉는... 정서적 자유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그 뒤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거두게 하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의 제자인데,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또 전에 예수를 밤중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게 침향을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잃어봐야 그 존재의 소중함을 비로소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 사랑하는 이들을 천국에 보내고 나서야 그분이 제대로 보였던 여러 경험이 있습니다. 상실의 공간은 얼마나 투명한 공간인지요. 예수님을 잃은 자리에서 두려워 숨어 있던 제자들이 커밍아웃 하여 그분의 시신을 수습합니다.

 

적막한 토요일. 예수님이 무덤에 내려가 계신 시간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의 손에서 장례가 치뤄지는 중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난 제자들은 얼마나 처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상실감과 슬픔, 죄책감으로 견딜 수 없는 시간일 것 같습니다. 가장 캄캄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제 상상도 못 했던 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것이고, 가장 부끄러운 이 시간으로 인해 남은 인생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더욱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 주님 버리고 떠나 홀로 계시게 했던(하는) 많은 시간들이 부끄럽고 슬픕니다. 이런 저를 위해 기꺼이 죄값을 "대신 지불하신" 당신을 더욱 사랑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
고난주간 한 주 간의 묵상 조각글이다. 하나는 학교 수업에서 렉시오디비나를 심플하게 가르쳐 주시는 신부님의 안내에 따른 것이고, 하나는 연구소 카페 아침 묵상으로 올린 것이고, 하나는 교회 큐티 나눔방에 댓글로 남긴 것이다. 세 공간이 어쩌면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표현의 방식이 다르고, 표현하는 태도도 조금씩 다르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조심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내 마음은 하나다. 각각 다른 공간에서 거기 적절한 옷을 입고 그 자리에 부합하는 언어를 고르는 일을 분열적으로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이 하나인 것을 나의 그분께서 알아주신다.  Behold the man! 고난을 향해 한 걸음 씩 걸어들어 가시는 예수님과 그 어느 해보다 길게 눈 맞추고 보낸 사순기간이다. 비 오는 날 산책길에서 만난 떨어진 벚꽃은 예수님의 심장에서 쏟아진 피 같았다. 흐르는 빗물이 그렇게 보이게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면...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이 찬양에서 십자가에서 쏟으신 사랑은 콸콸 흐르는 피의 이미지로 떠올랐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인 예수님과 그 몸으로 겪어내신 고난이 감당 못할 사랑으로 나를 향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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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가 저녁으로 삶은 계란을 싸가고 있다.
반숙, 반완숙 등을 주문하면 내가 또 기가 막히게 삶아서 주는데...
잘 삶아진 계란을 유리그릇에 담다가…
이것 말고 냉장고에 있는 날계란을 넣어 보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맛있게 먹을 생각에 두근두근 계란을 탁 깼는데 주르륵....
"으.... 정신실!!!!!" 
남편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생각만 해도 웃기고 신이 난다.
이게 '감동란'이지.
 
고난주간인데, 고난주간 저녁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참았다.
언젠가는 꼭... 감동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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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이우 인생의 빛 학교"라는 이름으로 몇 개의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부터 이어오는 육아 세미나는 생애 주기에 맞춰 '아침 햇살 학교'라 칭하는데, 2월에는 영화 <늑대 아이>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에게 온 아이들은 모두 늑대 아이이다. 사람인 내가 사람과 결혼한 줄 알았는데, 나와 본성이 완전히 다른 늑대였다는 발견과 함께 내가 낳은 아이도 반은 늑대라는 현타가 부부생활 부모생활의 시작인지 모르겠다. 늑대 남편은 죽고 혼자 남아 두 늑대 아이를 키우는 엄마 '하나(일본말로는 '꽃'이라는데)'가 인상적인데. 엄마 됨과 아빠 됨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하나처럼 각자 걷는 '하나의 길'인지도 모른다. 육아 세미나 내내 하는 말은 '왕도가 없다'이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주일에는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을 쓰신 옥명호 대표 모시고 강의를 들었다. 강사 초대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쓴 '사랑스런 젊은 부부들'이란 표현을 그대로 따서 ppt 첫 화면에 '이우교회 사랑스런 젊은 부부 특강'이라고 써주셔서 내 마음이 심쿵했다. 부모교육 강사가 주로 여성이라, 늑대아이를 키우는 아빠 이야기 들어볼 기회가 전무하다. 책, 독서, 책 읽어주기...는 아이 잘 키우고 싶은 부모에겐 솔깃하는 주제라. 그걸 낚싯밥 삼아 '사랑스런 젊은 부부들에게 '적당히 뽐뿌질 하면서 강의를 기다렸다. 삶의 소중한 것들에는 전문가가 없고, 전문가가 필요치도 않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고민하며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한 발 앞선 선배들이 있어야 한다. 삶도 신앙도, 우리에겐 자기 삶을 사는 이들이 필요하다. 이미 들어본 강의인데 다시 들어도 좋았고, 마치고 단톡방에 올려준 후기들 보니 뿌듯하고 보람이 차오른다. 이러니 사랑스런 사람들이지. 이들의 후기를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강의 어떻게 들었는지도 궁금해요. 사실 저는 '책 읽어주는'이 아니라 '아빠가'에 방점을 찍고 강사님을 초대했어요. 솔까말 누가 저 옥아빠님처럼 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야근야근야근.... 하는 삶 속에서 '아빠 됨'의 고민을 놓지 않고, 나는 받아보지 못한 '아빠와의 친밀감'을 내 아이에겐 남겨주고 싶은 열망과 시도들이 제게는 큰 울림을 줘요. 무엇보다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여 꾸준히 쌓아가는 성실한 사랑을 배우고 싶고요. 한주간 여러분의 일상, 육아의 삶 속에 우리 주님이 주시는 깊은 평화가 함께 하길 기도해요. 파이팅!❞

 

라고 내가 단톡방에 썼더니 이후 줄줄 올라온 후기.

❝사모님 덕분에 너무 좋은 강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집에오면서 남편과 여러 얘기 할 수 있어서 더 좋았구요. 감사합니당 모두 이번주도 힘내세용💕❞

❝성실한 사랑! 저도 그 꾸준함이 정말 대단하시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사님 얘기하실때 신랑 무릎 친 사람 저예요.. ㅎ) 좋은 강의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어제 강의 넘 좋았어요~~ 교회 다녀오면 피곤한 날도 있는데 어젠 동윤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넘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린시절 얘기도 남편과 나누고( 울아빠 디스였지만) 자기전 책 읽어주는 시간도 좀더 생동감있게 좀 글밥 긴걸로 읽어주니 또 읽어달라는 말에 감동 받았어요~~( 글밥 긴건 힘들어서 잘 안 읽어줬었는데…) 어제 밤에는 남편과 여행사진 사진첩 주문하기도 했어요~~ 성실한 사랑 노력해야겠어요^^❞

❝다 너무 공감돼요~ 저는 어렸을때 엄마랑 같이 독후감을 서로 편지처럼 썼었던 것도 생각나고 같이 책을 읽다가 낮잠을 잤던 것도 생각나면서 그런 노력이 엄마의 사랑이었겠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남편도 어제 저녁에 책 읽어주는데 평소보다 더 하이톤으로, 더 오버해서 아주 잘 읽어주더라구요. ㅎㅎ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좋은 강의 듣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가서 너무 피곤하긴했지만 ㅎㅎ 어제 강의 유익하고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은하도 자기전에 아빠가 책 읽어줄까 엄마가 책 읽어줄까 하니까 아빠! 하더라고요~ 저는 어린시절 아빠와 친밀하지 못했던 경험을 답습하지 않고, '책'이라는 매개를 스스로 찾아 적극적으로 소통한 용기가 너무 멋졌습니다! 그런 부모가 되도록 평생 노력해야겠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일단 좀 독해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밖에서 몸과 마음의 체력을 다 소진하고 집에 오면 물렁물렁해져 있기 십상이어서 아내가 특히 볼멘소리를 많이 하곤 하는데요.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정한 철칙이나 약속은 예외없이 지킬 줄 아는 독한 아빠, 독한 남편이 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강의 듣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윤이가 책 재밌다고 한번 더 읽어달라고 하는데 그게 참 사랑스럽더라구요. 이런 아이가 우리한테 와서 감사하고. 같은 잠들기 전 시간인데도 언제 잠드나..가 아닌 책읽어주는 시간이다라고 기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사합니다. 어젠 제 마음도 풍요로워진 날이었습니다.❞

❝어제 꽤 글밥있는 이야기 책을 읽어주었는데 은하가 생각보다 집중을 잘하더라구요. 앞으로는 이야기를 많이 읽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은 하나의 좋은 수단이고 궁극적으로는 밀도있게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라는 말도 마음에 새겼습니다.
아울러,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건 비단 아이 뿐만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해당하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부쩍 책읽기를 즐기게 된 아내와 같이 저도 함께 읽기에 동참해야겠다는 다짐도 했구요.
강사님 책 서문에 남자목소리가 중저음이기에 책읽어주는건 오히려 아빠에게 제격이라고 써있는데, 제 아내는 목소리가 저음이라 우리부부는 책읽어주기에 참 유리하다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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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인문학적 통찰력과 따뜻한 목회자의 심정으로 평생 참된 제자도의 삶을 연구한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의 역작 『마음의 혁신』 강독 모임에 초대합니다.

『마음의 혁신』은 내적 여정, 영적 변혁에 대한 성경적 토대를 제시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유의 깊이과 폭넓은 신학적 지식을 밀도 있게 담긴 덕에(탓에) 쉽게 읽히지는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적 여정을 신학적 언어로 이해하고 체험하기 원하는 분은 누구라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5유형 추정) 달라스 윌라드를 사랑하여, 읽고 또 읽다 영혼의 치유를 경험한 (5유형) 목사님이 동반합니다.

결석 없이 성실하게 읽으실 분, 환영입니다.

✓ 일시 : 2023년 4월 17일(월) ~ 7월10일(월) 19:30-21:30
         (12강, 6월5일 휴강)
✓ 인원 : 6명                  ✓ 수강료 : 12만 원
✓ 장소 : 온라인 zoom   ✓ 동반자 : 김종필 목사
✓ 문의 : 010-6209-0635
✓ 신청 : https://bit.ly/3JQLWoq

 

달라스 윌라드 『마음의 혁신』 강독 모임

달라스 윌라드 『마음의 혁신』 강독 모임 신청 양식입니다.

docs.google.com

 

"날카로운 인문학적 통찰력과 따뜻한 목회자의 심정"은 모임을 이끄는 김종필 목사도 웬만큼 갖추었으나, 차마 그리 소개하지는 못합니데이.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두는' 성정을 가진 사람을 어르고 달래고 협박하여 겨우 도모한 모임이네요. 달라스 윌라든 전작을 읽은 것은 물론이고, 거듭 읽은 책도 있답니다.  『마음의 혁신』은 마음 맞는 목사님들과 옹골지게 읽었고, 연구소 남성 수강생을 중심으로 파일럿 모임도 했습니다. 목회자 마인드의 지성적인 목사라 삼고초려을 불사하고 영입한 것입니다. 책은 어렵지만, 어려운 내용 잘 풀어 설명해주고, 더불어 지성의 거울에 마음을 비추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전 참여자들의 증언입니다.) 다. 

 

등경 위에 빛나는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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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또 편지를 보내왔다.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을 총동원하여 마음을 보내왔다. 책상 앞에서는 뜯어볼 수 없는 편지라, 노트북 뚜껑을 딱 덮고 '봄날 우체통' 앞으로 나가야 했다.
 

2020년 봄은 잃어버린 봄이다. 봄과 함께 색도, 맛도, 생명도, 사랑도 모두 잃었었다. 여러 번 써서 퇴색한 단어이지만, 흑백 세상이었다. 퇴색... 색이 없는 봄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색이 드러난 적도 있지만, 그럴 때는 상처를 받았다. “꽃 피지 마! 우리 엄마가 죽었는데 꽃이 피는 건 잔인해!” 그렇게 2020년 봄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맞은 2021년 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달랐다. "이렇게 아름답다고? 세상이?" 하면서 봄 산책을 다녔다.  엄마를 잃고 얻은 막연한 것이 있었는데, 그 막연한 것은 '영원한 것'과 닿은 것 같았지.

 

꽃보다 엄마

영혼 이제야 나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몸을 입고 인간이 된 이유를 알았다. 죽음으로, 가장 극적인 죽음, 극형으로 '몸'을 버리신 이유를 알겠다. 아주 잠깐 인간으로 사시다 그 몸을 버리고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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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사 53:2)
 
어제 29일, 산책을 나가 먼저 만난 것 연한 순들이었다. 아, 이사야 선지자가 쓴 '연한 순'이란 메타포는 이렇게 아름다운 아름답고 깊은 것이었구나! 살포시 올라온 연한 순에 눈을 맞추고 사진을 찍자니, 요즘 묵상하고 있는 요한복음 예수님이 마음에 살아왔다. 그분, 연한 순 같은 분이지. 그런 분이지.
 
엄마의 죽음이 사순시기 안에 있어서 더 큰 선물이 된다. 2022년 봄에는 바흐 칸타타 actus tragicus와 함께 엄마의 때가 얼마나 좋은 때였는지를 생각했었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것, 격리된 채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떠나신 것이 어떻게도 떨쳐낼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바흐 칸타타에 담아 엄마가 보낸 편지였다. 천국에서 바흐와 만나 작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자, 우리 신실에게 부활을 고대하라고, 소망을 불러일으킬 메시지를 보내기로 합시다. 당신의 음악을 좋아하니 적절한 곡 추천부탁이외다."

 

악투스 트라지쿠스(actus tragicus)

3월 11일, 엄마 2주기이다. 엄마 2주기, 코로나 2년. 2년 만에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몸도 마음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날에 엄마 2주기를 맞았다. 엄마의 마지막 나날, 요양병원의 '격리'로 함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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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오는 엄마의 편지는 죽음이라는 편지봉투에 담긴다. 죽음의 계절이 오는 편지이다. 예고된 가장 비참하고 찬란하고 죽음,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온다. 꽃망울이 촛대처럼 달린 목련나무가 대부분인데, 벌써 피고 벌써 져버린 목련꽃이 있었다. 져버린 꽃이 슬프지 않다. 아, 슬프지만 다시 찬란한 슬픔이다. 죽음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자, 이제 탄천 길이다. 민들레, 아장아장 걷는 우리 채윤이 첫걸음마를 축복하던 그 민들레다.
 

초점을 맞춰도 맞춰도 도드라지질 않아서 여기까지 찍었다. 저 보라색 꽃의 이름이 좀 충격적인데 "큰개불알꽃"이다. 가만히 눈 맞추고 이름을 불러보면, 어쩐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꽃마리인 줄 알았다. 내적 여정 벗 중에 "꽃마리"라고 불리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는데, 냉큼 톡을 보냈다. 그대의 계절!... 이라고. 꽃마리 아니라고, 검색해 보니 "봄맞이꽃"이라고. 아, 이건 재작년 엄마 무덤에서 본 그 하얀 꽃이다. 기억할게, 봄맞이꽃.
 

바닥에 딱 붙어 들여다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이 꽃 이름 뭐예요?" 하기에 당당하게 "꽃마리요!" 했는데... 어떡하지? 아저씨한테도 미안, 벗님 꽃마리한테도 미안. 할 수 없다. 자꾸 이렇게 틀린 이름을 부르며 다시 들여다 보고, 미안해하고 하면서 나의 꽃이 되는 것이다. 그 아저씨 올봄에 꼭 진짜 꽃마리를 영접하시길.
 

처연하게 핀 냉이꽃이 화려한 벚꽃 못지않게 멋졌다. 화려한 자태로 주목받는, 친구들도 많아서 떼로 피어있는 벚꽃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기로 피어있는 냉이꽃, 리스펙. 
 

내가 주목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에도 크게 개의치 않겠지만, 나는 너의 멋짐을 보았어!라는 의미로 다른 냉이꽃 독사진을 여러 장 찍어주었다. 
 

얘는 꽃다지. 꽃 이름보다는 내겐 가수의 존재감으로 크게 다가오지만, 오늘만큼은 꽃다지꽃으로만 만나기로!
  

이건 좀 보너스였는데. 더 많은 열매 맺기 위해 포도나무 가지를 치신다는 주일 설교가 생각나는 장면을 만났다. 여기에 그분의 센스와 익살! 저 멀리 경부고속도로변 간판 글 보시게나. "JESUS LOVES YOU" 사랑하니 가지 치는 거다. 가지치기는 사랑이다... ㅎㅎ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제비꽃. 봄 편지 마지막은 노래로 마친다. 장필순이 부릅니다.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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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가 학위논문으로 허난설헌의 시 연구를 택한 것은 허난설헌의 시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허난설헌에 감동하기 위해 많은 지식이 필요했던 건 아니다. 그 시대배경이나 집안환경에 대해서도 보통사람 수준의 상식이 전부였다. 물론 그녀의 한문실력으로 난설헌의 한시와 직관적으로 만나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가 매혹당한 것은 시 자체의 뛰어남보다는 한 뛰어난 여자를 못 알아보고 기어코 요절토록 한 시대적 사회적 요인들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이었다. 그러나 논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출처가 분명한 실증할 수 있는 지식이었다.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그녀로 하여금 대학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충동질한 지도교수는 그녀의 상상력을 가장 경계했다. 영주가 제일 자주 들은 듣기 싫은 충고는 논문을 쓰면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는 거였다. 박완서 <환각의 나비> 중

 
기고글 쓰다 참고하려고 오래된 소설을 꺼내 읽다, 저 부분을 발견하고 혼자 웃겨 뒤집어졌다. 누구라도 옆에 있어야 붙들고 읽어줄 텐데. "이거 들어 봐. 지금 내 얘기야. 대애박, 내가 지금 논문 붙들고 있다 연재 원고 쓰면서 모드 전환 문제로 끙끙거리고 있었거든. 상상력 금지, 상상력 금지, 출처 밝힐 수 있는 정보만! 논문 쓸 때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뇐단 말이지.... 바로 이거라고!" 누굴 붙들고 얘기한들, 속에서부터 빵 터져서 뒤집어진 내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쓰던 원고에는 1도 관련 없는 구절에 꽂혀서 낄낄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펴다 허튼 시간만 보내.... 앤 건 맞지만, 적잖이 위안이 되었다. 가끔은 혼자 웃기만 해도 위안이 되니까. 게다가 실은 이번 원고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주제였는데, 어쩐지 글은 술술 쉽게 쓰였다. 이유는 분명하다. 마음의 길을 따라 쓰면 되니까! 
 
영성을 배우겠다고 대학원 입학을 결정했던 때, 논문은 생각 밖에었다. 영성사, 중세 신비주의, 영성신학... 과목만 보고 일단 들어가자! 결정했으니까. 내게 최적화 된, 과목과 교수님들이었다. 논문학기이다. 비논문 학위도 있어서 학점만 채우면 졸업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또 지금 논문 쓰러 온 학생처럼 열심을 내고 있다. 그래서 논문이 잘 써진다거다, 좋은 논문을 쓸 거란 전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논문을 위해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하자니 너무나 재미있고, 공부만으로도 기도가 달라져서 에라 논문은 때려치우고 이대로 혼자 공부하며 기도하며 살면 되겠네! 싶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공들여 논문을 써도 누가 알아줄 리 없지만, 모든 것이 달린 것처럼 쓸 생각이다.
 
세월과 함께 만들어온 "정신실식의 상상력 플러스 글쓰기"와 "논문 글쓰기" 사이, 두 글쓰기 사이에서 적잖이 괴롭다. 두 세계에 끼어 괴로운 일은 하나 둘이 아니다. 끼어서 살아온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기도를 배우고 영성을 배우느라 많이 괴로운 시간은 논문과 함께 끝내야겠다. 대학원 들어가기 전, 두 세계를 은밀히 오가며 배우고 읽는 것이 은근 짜릿했었는데 말이다. 학기가 거듭될수록 쪼개진 두 교회 사이에 앉아서 이쪽도 좋고 저쪽도 좋은, 이쪽도 어이없고 저쪽도 어이없는 시간을 사는 게 여간한 일이 아니다. 영성과 영성사, 신비신학과 신비주의 역사를 배울수록 "교회는 하나다!"를 외칠 수밖에 없는데, "한 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역설적이게도 수업에 앉아 있자면 하나의 교회가 얼마나 골이 깊게 갈라져 있는지가 몸으로 느껴진다. 교회가 하나인 것을 확인하는 수업일수록 오늘 이 순간 분열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져 몸이 긴장하고 만다. 몸의 긴장을 마지막 학기나 되어서 알아차리고 있다. 이 긴장조차도 누려야지, 하며 다스리고 있다. 
 
논문, 포기하지 않고 쓸 거예요(쓰고 싶어요). 조용히 기도의 응원을 보내주소서, 벗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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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세 남자(INTJ)는 떡볶이를 원했고,
24세 여자(ESTJ)는 김치찌개를 원했다.
 
나는 김치콩나물칼제비를 했다.
떡볶이의 분식스러움과 김치찌개의 정통집밥스러움,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하였다.
두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고 나는 정말 행복했다.
일타쌍기! 한 메뉴로 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신공이었다.
이런 메뉴를 생각해 내다니.
나는 요 (리) 천 (재) 인가?
 
좋지? 맛있지? 나 기발하지? 
 
내가 먼저 설레발쳐서 진심 어린 찬사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곤 하지만,
내가 좋으니 됐다. 
 
그런데 이 TJ(사고/판단형)  두 사람아!
당신들은 모른다.
내가 수업에 읽어가야 할 분량이 얼마나 많았는지.
다 읽고 숙지할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 얼마나 조바심이 나는지.
논문도 좀 써야 하는데, 손도 못 대겠네 싶은 좌절도.
당신들은 모른다.
그러나 책 딱 덮고 벌떡 일어나 김콩칼수를 만들었다. 
TJ 느그들은 상상 못 할 헌신이다. 어거뚜라! 
 
이래도 내가 JPSS(조폭신실)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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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 복닥거리다 셋이 남았는데, 하나가 나간 자리가 '하나' 이상으로 크게 느껴진다.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해서 각자 현승의의 빈자리를 마주하다 보니 셋이 뭔가 끈끈해지는 느낌이다. 이런 시간도 금방 지나고 익숙해지겠으나. "동아리 면접 봤대... 얘기 들었어?"  현승이로부터 오는 작은 소식 하나에 연연하는 것으로 하나가 되기도. "엄마, 나 4월에 포항에 한 번 가려고. 현승이가 혼자 코인노래방 갔대... 나 너무 마음이 그래." 자기 방식대로 그리워하기도. 

채윤이는 제 생애 최초에 경험했던 가족을 다시 누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현승이는 태어나보니 누나가 기본설정이고 네 식구가 기본값이었지만, 채윤이에게 현승이는 자기 자리를 뺏으며 들어오는 존재였고, 엄마 아빠를 독차지하며 누렸던 세계를 뒤흔든 빌런이었으니... 무슨 이유에서든 셋이 끈끈하고, 그러다 보니 멀리 있는 현승이와도 더 깊이 연결되는 느낌이다.

 

끈끈하다 해도 각자 바빠서 룸메 셋이 사는 느낌이지만 말이다. 출근하고 학교가는 종필과 채윤이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나갔는데. 텀블러 뚜껑을 닫으며 채윤이가 그런다. "아, 이렇게 가져가면 눈물 날 것 같은데..." "왜애?(또 현승이 생각?)" "아니, 어렸을 때 엄마가 물이나 음료수 같은 거 싸주면 학교에서 먹을 때 눈물 날 것 같았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아... 이 말에 내가 눈물이 나네. 우리 엄마 버튼이 눌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없는, 내가 모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인생이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다는 것의 현타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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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것 같지 않은 일이 되어서 5년이 되었다. 내적여정 강의 전 과정 개설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연구소를 열었고 1년짜리 과정의 지도자과정(이제 '동반자'로 이름을 바꾸었다)의 3기까지 배출했다. 300여 명의 개인상담을 했다. 수녀님 신부님을 모신 중세 여성 공동체 베긴 특강이며 상상 그 이상의 연결을 경험했다. 이 모든 과정을 (인간적) 대책 없이 해왔다. 대책 없이, 계산 없이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대책 없이 계산 없이 하다보니 한계 앞에 섰다. 나 자신을 포함한 연구원들, 고급인력의 재능 낭비(재능 후원, 재능 기부)는 그 자체로 큰 기쁨인데, 지속가능성을 타진할 때가 된 것 같다. 인간적으로, 영적으로, 재정적으로 총체적으로 소진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멈추기로 결정하니 느낌이 따라왔다. '상처 입은 치유자 과정(동반자 과정)'을 한 해 쉬기로 결정하니, 쉴 때가 되었고 재정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겠다. 마침 내적 여정 수강 인원도 줄어 콤팩트 해졌다. 실패감이 없지 않은데, 기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은 그것대로 기쁘게 지속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내놓은 글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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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쉬어갑니다.

"상처입은 치유자_내적여정 동반자 과정" 4기 모집 공고 드렸었으나 한 해 쉬기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인원이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열심히 달려온 나음터의 시간을 돌아보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그분의 이끄심으로 저희는 알아들었습니다. 오래 기다리며 준비하신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개인의 때와 공동체의 시간이 맞을 때, 가장 좋은 때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나음터는 늘 ‘영업 중’입니다.

3기 강사 선생님들께 수료증과 강의자료 보내드리며 긴 여정에 마침표 찍었고요. 그 어느 때보다 조촐하게 [내적 여정]이 진행되고 있고, 조용히 뜨거운 [꿈과 영성생활]은 물론, 꼭 필요한 분과 연결되는 [개인 상담]의 연결은 늘 진행 중입니다. [그림책 에니어그램 연구모임]이 무르익으면서 곧 새로운 분들을 초대할 거고요. [마음의 혁신] 강독모임도 임박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나음터 되어 경제적 영적 자원의 부족으로 연결이 어려운 분들 찾아 치유와 성장을 돕는 일을 위해 후원이 필요합니다. 이런 연구소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싶은 분들, 모르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 대접하는 마음을 흘려보내고 싶은 분들, 후원으로 함께 해주세요. 돈을 존재의 가치로 바꿔 연결되는 일에 잘 쓰겠습니다.

아래 링크의 후원 신청서를 작성해 주시고, 자동이체 신청해 주시면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을 보내시게 됩니다.♡

* 후원 신청 : https://bit.ly/3C0CKuL
* 후원 계좌 : 농협 301-0240-4119-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후원 신청서

정신실 마음성장 연구소 후원 신청 양식입니다. 아래 정보를 기입하셔서 제출하시면 확인 후 문자로 후원방법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연결되어 주셔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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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구소 은경 샘은 딱 그때 맛있는 그것을 아는 그런 분인데.
 

딱 그 시기에 맛있는 그것을 혼자 드시지 아니하고...
올해에도 딱 이때 먹는 청도의 한재미나리를 보내주시었다.
삼겹살에 미나리를 먹는 게 아니라,
마니리 먹으려고 삼겹살 굽는 형국으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떡볶이에 조금 곁들이고,
아껴서 남긴 걸로는 전 한 장을 딱 부쳤다.
 

삼겹살은 딱 오디오로 먹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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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보다 장맛이라지만,
가끔은 장맛보다 뚝배기여도 좋다.
카누를 예쁜 잔에 담으면 핸드드립 맛이 난다.
심지어 "엄마, 내 껀 연하게 내렸지?"라는 진심어린 질문도 듣고.
(응, 카누 반 봉지에 물 많이…)
 

2023년 3월 10일 봄 하루의 풍경이다.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활짝 핀 매화에 깜짝 놀랐다. 언제 이렇게 활짝? 길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만났을 때처럼 심쿵했다. 쑥이 제법 많이 올라와 있다. 며칠 전 산책 길과 또 다르다. 저걸 아까워서 어쩌지? 자동차와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라 관상용이다. 어느 숲에 들어가 저 정도 여린 쑥을 잔뜩 뜯어다 콩가루를 넣고 쑥국을 끓이고 싶다. 고사리 삶아둔 것으로 파스타를 했다. 갈치속젓이 만능 소스이다. 
 
오늘은 엄마 3주기이다. 엄마의 죽음은 팬데믹의 고립으로 왔다. 그해 봄은 애도로 뿌연 시간이었다. 일상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고, 일상을 위해 눈을 뜨는 아침이 괴로웠다. 어느 밤, 문득 마주한 목련꽃에 충격과 함께 깊은 상처를 받기까지 했다. 먹고, 수다 떨고, 걷고... 일상의 행복을 쌓는 일이 그리움과 슬픔을 적립하는 것 같아서 어쩔 줄 모르겠었다. 한 해 두 해 지나고, 세 번째 봄을 맞으니 기적 같은 하루이다. 매일 내 머리 위를 오가며 "짹짹짹짹, 사랑한다, 사랑한다, 지금 이대로의 너가 좋아" 말해주는 새들,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는 풀 한 포기, 하나 둘 피어나는 꽃은 말할 것도 없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조차 고맙고 아름답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살아 있고 건강한 몸이 감사하다. 
 
떠난 지 3년 만에 엄마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활짝 핀 매화로, 고사리 파스타로, 쑥 한 줌으로. 편지 안에는 엄마의 마음과 함께 엄마를 품에 안고 계시는 그분의 숨결이 담겨있다. 2023년 봄, 매일 새롭게 뜯어보는 엄마의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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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을 따라 약속이 있는 보정동 카페거리에 갔다. 어느 카페 앞에 수선화와 수국이 줄을 맞춰 서 있다. 수선화로구나! 봄이로구나!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세 시간 가까운 즐거운 수다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에게>가 생각났다. 수선화narcissus니까 외로운 거야... 나르시시스트 외롭지... 물에 비친 내 모습에 빠져서, 자아에 빠져서, 결국 자아에 빠져들어 죽는 건 가장 외로운 일이지... 
 
아까 찍은 수선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수선화답지 않게 서로를 마주 보는 둘이 있다. 뭔가 얘기가 오가는 중인 것도 같고.  아까 만난 내 젊은 친구와 나 같기도 하고. 나만 바라보면 외롭다. 내 모습에 도취되어 빠져 있으면 외롭지 않을 방법이 없다. "아까 만나러 가는 길 어느 카페 앞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마주 보고 얘기하며 행복한 우리 둘 같죠? ^^ 우리 사이에 성령님께서 앉아 함께 기뻐하시고…"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 그렇다. 영락없이 우리 둘이고, 그 '사이'를 오가며 기뻐하시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시는 그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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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개강, 채윤이도 개강, 새내기 현승이도 입학 후 개강. 개강, 개강, 개강. 집 떠나 낯선 곳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현승이는 설레는 주말이겠다. 부산으로 대학 간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채윤이는 오랜만에 학교 피아노 앞에 앉았고. 20년 넘게 한 집에서 뒹굴던 네 식구가 이제 노란 카톡방 안에서 만나네. 뭔가 안심이 되면서 동시에 푸근한 것으로 가득 차는 마음이다. 느슨한 연결이 좋다. 두 아이가 대학생활에 적응하고, 누리며, 젊은 날을 보내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개강 첫 주, 애들은 잘 지낸다. 나만 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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