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좀 조용히 좀 하자.

각자 자기 방에 들어가.

아오, 진짜 정신이 없다. 정신이 없어.

야! 조용히 좀 하라고 했지.

나 얘들 진짜.....

여보, 얘네들 왜 이래?

야, 아빠 좀 쉬자. 어, 조용히 좀 쉬자고.


요즘 우리집은

뭔가 집이라고 하기엔 뭔가

집이라고 하기엔 뭔가 너무 정신이 없게

정신이 하나도 없게

뭔가 시끄러운 게 도때기 시장 같은 게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게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은 게....

(ft. 장기하)


왜 그런가 했더니

방학이 일년인 아이가 자꾸만 거실을 접수하려 넘보니 오래 전 그날로의 회귀로다.

주일 저녁 엄마 아빠 소파에 나란히 앉아 독서를 하시자니

두 녀석 마주앉아 보드게임 하는 것이 낯설고도 익숙하다.

한때 거실은 저 아이들 것이었다.

당연히 시끄럽고, 물론 기본설정은 늘 도떼기 시장이었고.


(오래 전 그날의 거실은 늘 아래와 같았습니다.)












*

새 운동화를 안고 어쩔 줄을 모릅니다. 사자마자 갈아 신고 잠실까지 다녀온 운동화를 매만지며 '엄마, 이걸 현관에 둘 수가 없어. 그냥 하루만 방에 두고 자면 안 돼?' 정말 좋은가 봅니다. 나달나달 해어진 운동화를 신고 다녔습니다. 남의 시선을 무척이나 의식하는 채윤이가 어쩐 일인지 엄마 없는 애 같은 운동화를 잘도 신고 다녔습니다. 사줘야지, 사줘야지, 했는데 입시를 앞두고 운동화 사러 갈 여유가 없었고. 날이 갈수록 거지가 되어가는 운동화를 채윤이는 군소리 없이 신고 다녔습니다. 입시 마치고는 섣부르게 사지 않고 마음에 꼭 드는 걸 사겠다며 오래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채윤이 마음에는 꼭 드는 운동화를 샀습니다. 


**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있고,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하시던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신발을 갈아 신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드디어 꽃친 가족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가족모임 겸 송년회였습니다. '안녕, 그리고 안녕'이라는 표제를 달고 모였습니다. 앞의 안녕은 'good-bye'의 안녕이고 두 번째 안녕은 'hi'라로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채윤이는 무언가를 향해 안녕을 고한 것입니다. 꽃다운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고 손을 잡고 수줍은 '안녕'을 했습니다. 신발을 갈아신고 새날을 향해 떠납니다. 무엇에게 '안녕'하며 등을 돌리고 무엇을 향해 '만나서 반가워, 안녕!' 하게 되는 것일까요?


***

채윤이의 운동화 사진은 팽목항에서 바다를 향해 놓여 있던 뉴발 운동화 한 켤레와 오버랩 되어 다시 눈물이 치밀어 오릅니다. 이맘 때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뉴발 새 운동화를 사다 둔 엄마의 마음을 백 번 천 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무너집니다. '돈 없다. 허튼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 하며 '엄마, 뉴발 운동화.....' 하던 아이의 말을 묵살해 버렸던 것을 두고두고 가슴을 치며 후회할 것입니다. 다시 새신을 신길 수 없는 차거운 발을 안고 정신을 잃고 또 잃었을 엄마의 고통이 어찌 그 엄마만의 것이겠습니까. 새 운동화를 신고 펄쩍펄쩍 뛰는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 과연 나의 것이어도 될까요? 이 평범한 행복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려도 되는 것일까요? 네, 저는 아직도 세월호 얘깁니다.


****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세월호 이후 더욱 절절하게 들립니다. 어쩌다 안산에 살았고, 어쩌다 단원고에 다녔고, 어쩌다 제주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고, 어쩌다 세월호를 탄 그 아이들이 우리 채윤이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를 빼앗긴지 2년이 되어가는데 밝혀진 의혹이라곤 없고, 죽은 아이 팔아 돈이나 챙기려는 사람으로 몰리는, 벼랑 끝에 선 저 부모들과 나는 또 말입니다!  지난 여름 수련회에서 '세월호'를 주제로 선택 특강을 준비하던 남편이 말했습니다. '신학과 철학이 세계 1,2차 대전의 충격으로 전혀 새로운 물음을 물어야 했듯, 세월호를 겪은 우리의 신앙과 삶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우리 부부에겐 세월호 이후의 신앙과 삶은 그 이전과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

내가 사는 나라의, 교회의,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시대 부모들의 민낯을 세월호가 다 비추어주었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를 이보다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요. 맹목적인 성적관리, 대학입시, 돈을 기본옵션으로 하는 성공, 무엇보다 돈 돈 돈. 역겨움과 환멸이 밀려왔습니다. 결혼 전 젊었을 적부터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93.1 라디오를 트는 것이었는데 작년 4월 16일 이후로 그것도 잊었습니다. 꽃 같은 생명이 눈앞에서 사라져 갔는데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세상, 청명하고 미끈한 목소리로 희망을 논하는 진행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귀와 마음이 그 목소리는 물론 음악까지 뱉어냈습니다. (다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두어 달 전입니다.) 10여 년을 해왔던, 좋아하는 운동인 수영을 끊어버렸습니다. 건강을 생각해 다시 시작해야지 마음먹어보지만 영 다시 발걸음 하게 되질 않습니다. (주부수영 끊은 사연, 클릭) 제 마음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밖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몸서리를 쳤지만, 그 욕망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입니다. 의식있는 척, 성적 따위 관심없는 척 말도 글도 잘 나불거렸지만 마음 깊은 곳의 세속적 욕망은 숨길 수 없습니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꽃다운 생명들, 그 생명을 품었던 엄마들에게 마음을 포개고 바라보니 돈과 성공에 미쳐버린 세상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함께 미쳐돌아가는 제 모습도 더 잘 보였습니다. 물론 어찌나 포장술이 뛰어난지 자신마저도 속고 있었지만요.

 

*******

중학교 졸업하고 안식년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리고 수진 부부가 꽃친을 하겠다 했을 때 쌍수 들어 환영했지만 왠지 결국 우린 함께 하지 못할 거라는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예중, 예고 가서 웬만한 대학에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만하면 보통의 엄마들과는 다르게 키우고 있으니 됐다, 적당히 줄타기하면서 살아야지, 어쩌겠나.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생명들이 자꾸만 제게 묻습니다. 채윤이와 현승이가 당신 것이냐고, 세상이 정하고 당신이 세운 계획으로 보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내일의 무엇을 위해서 오늘의 사랑과 행복을 유보하느냐고. 무엇을 위해서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자리에 연연하고, 돈과 명성에 영혼을 파느냐고. 매일 단원고 엄마들을 생각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기도의 손을 모을 때 엄마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 엄마들은 다름아닌 나이기 때문입니다. 새 운동화를 사주고 좋아 어찌할 줄 모르는 채윤이를 보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편치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 채무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수장되었고 그 엄마 아빠들도 고통의 바다로 내몰려 빠져버렸습니다. 남은 자의 몫은 회개, 돌이킴입니다. 


********

살아남은 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남은 날이 적다. 더 많이 먹고 더 실컷 놀자, 가 아닙니다. 두 아이와 사람들이 내게 맡겨져 있을 시간이 많지 않다, 오늘 이들의 행복하게 하는 일을 미루지 말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그만 신경 쓰고 내가 있어야 할 곳, 해야 할 말과 사랑을 유보하지 말자, 입니다. 정권은 사악하고 교회는 천박하여 사방을 둘러봐도 절망이지만 분노하고 서명하고 피켓팅하는 것 이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 삶을 근본적으로 돌이켜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경고이며 동시에 기회입니다. 생명이 스러져가고 숨이 끊어져 가는데도 알아채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남의 아이인줄 알지만 실은 우리 아이인데, 내 아이의 생명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데 알아채질 못합니다. 그래서 내 아이도 나도, 우리 모두가 함께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내 숨을 쉬며 살겠노라는 선택이 어떤 모양새가 될 것인지 잘 압니다. 번듯할 수 없습니다. 까칠하고, 이상하고, 바보같고, 과격하고, 고독한 길이겠지요. 그렇더라도 남겨진 자의 의무를 살아야겠습니다. 남겨진 엄마로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사랑의 의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남겨진 아이들의 행복한 오늘을 지켜야겠습니다.  꽃친을 시작하는 '안녕, 그리고 안녕'에서 채윤이 엄마의 안녕은 그런 뜻입니다. 일부러 더 반대로 가겠다는 뜻의 안녕입니다. 그런 삐딱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이것은 단지 힘들게 준비하여 합격한 예고를 포기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단지 1년을 쉬겠다는 그런 얘기만도 아닙니다. 단지 채윤이 얘기는 아닙니다. 아닙니다만 결론은 채윤이를 주어로 맺어야겠지요.


채윤이는 앞을 보고 막 달려오다 멈춰섰습니다. 그리고 휙 뒤돌아서 '안녕!'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막막한 미래를 향해 '아....안녕' 수줍게 인사했습니다.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꽃 같은 나이 열일곱에 제 숨을 쉬게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 꽃친 첫 가족모임에서 채윤이가 수줍은 '안녕'을 건네고 있습니다.

* 연재는 이렇게 끝입니다. 진짜 꽃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겠지요.






  1. 2015.12.16 23:05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2.22 16:05 신고

      정말 쓸데 없는 생각! ㅎㅎ
      그 엄마 아빠가 허튼 데 마음 쓰고 허튼 자랑할 줄 몰라 그렇지.
      그런 딸내미가 어딨어!
      제가 좋은 머리를 타고 나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것.
      그것이 딸내미의 행복이야.
      그 어린 나이에 자발적으로 열심히 할 것이 있음이 얼마나 기특해.
      난 진심 그 딸내미는 너희 부부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해.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말로 안 해도 다 알고 있을 거야.
      아이들이 엄마 아빠 삶을 보고 배우지 말로 배우나?^^
      안쓰럽긴 하지만 너도 미니도 잘 하고 있는겨.
      나도 순간순간 챈이 생각하며 불안하고 심난해.
      그럴 때마다 나도 챈이도 잘하고 있는 거라 내 마음 다독이고.
      미니와 채니 다른 듯 보여도 내내 자기 길 가는 건 똑같은 것 같아.
      기도하고 있고, 기도할게. 같이 힘내자.

  2. 2015.12.18 08:34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2.22 16:08 신고

      나 살자고 쓰는 글이지.
      내가 의미를 찾지 못하면 좌불안석인 그런 인간이잖어.
      주절주절 써대면서 의미를 찾는 몸부림이었어.
      길을 찾다 길이 되어줘서 고맙고.

      1월 프로그램 특별한 마음 자세로 준비하고 있다.^^

 

 

 

월요일 데이트에 채윤이가 함께 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루 가족여행에 현승이가 빠졌습니다.

'나는 집에 있으면 안 돼?' 사춘기 도래를 알리는 이 한 마디! 드디어 나왔습니다.

두 번 당하는 일이라 충격이 크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2년 여 전에 채윤이 빠진 하루 여행을 다녀와 당시 기고하던 <크로스로>에 

사춘기 사추기라는 글을 썼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아무튼 채윤이는 자동차 뒷좌석을 혼자 다 차지하고

현승이가 태어나기 전 29 개월 동안 누렸던 '독점의 기쁨' 다시 누리기였습니다.

'전주 한옥마을'보다는 '주전주리 마을'이 더 어울리는 이름 같은데, 거길 갔습니다.

식구 중에 가장 위대한 채윤이에게는 딱 좋은 곳이었습니다.

콩나물국밥 먹고 바로 간식을 끝없이 흡입할 수 있는 여자 사람은 흔치 않거든요.

엄마로서는 여러 가지 걱정이 되어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또, 또 뭐 먹을래? 저거 사줄까? 뭐든지 먹고 뭐든지 사"

아빠 포스에 눌려 입 닫고 쭐래쭐래 따라만 다녔습니다.

(길쭉이들 한 걸음에 나 두 걸음. 바쁜 발걸음 속에.... 아, 뭔지 모를 소외감)

 

 

 

 

 

가족의 여행은 오가는 길 자동차 안의 대화와 음악이 의미 박스 입니다.

아빠랑 나랑 닮은 점이 뭐야? 채윤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뭐가 닮았을까?  여러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다같이 꽂혀서 들은 신해철 2집 앨범 <myself>는 대박이었습니다.

장래희망이 '옛날 가수'인 현승이와는 음악적 정신세계가 많이 통하는데요.

세 식구가 김광석, 이적, 윤도현, 하동균, 김연우.... 이러고 있을 때

채윤이는 귀에 이어폰 꽂고 알 수 없는 음악에 흐느적거리곤 하거든요.

그런데 오랜만에 현승이 없이 셋이서 신해철 노래로 대통합을 이뤘습니다.

아빠가 대학 2학년 때 '이런 가수가 있나?' 하고 들었다는 2집 앨범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는 딱 자기가 쓴 것 같다며.

이 노래를 듣고 용기내서 군대에 갔답니다. 가사를 옮겨 적지 않을 수 없네요.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 얘기를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젠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이상 우리가 사랑했던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호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웬일인지 채윤이가 쏙 빠져서 노래를 듣습니다.

가사에 공감이 많이 되는가 봅니다.

운전하랴  입으로 DJ하랴, 바쁘신 아빠가 <길 위에서> 를 추천합니다.

이거 딱 채윤 노래야.

딱 채윤이 노래네요. 

 

 

차가워지는 겨울 바람 사이로
난 거리에 서있었네
크고 작은 길들이 만나는 곳
나의 길도 있으리라 여겼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어가다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었지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끝없이 뻗은 길의 저편을 보면
나를 감싸는 건 두려움
혼자 걷기에는 너무나 멀어
언제나 누군가를 찾고 있지
세상의 모든 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삶의 끝 순간까지
숨가쁘게 사는 그런 삶은 싫어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고등학교 진학하지 않고 1년을 쉬겠다는, 그것도 예고 합격을 포기한 한다는 얘기에

애정과 걱정이 담긴,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애를 왜 바보로 만들려고 해"

바보.... 음..... 네..... 어......

벌써 다섯 번째 글인데 '그러니까 좋은 생각 다 알겠는데.... 왜 예고를 안 간다는 거?' 딱 부러지는 이유를 밝히지 않아 답답하신 분들도 있겠습니다.

위 두 곡의 노래에 예고 가지 않는 이유가 딱 나와 있는데, 딱 아시겠습니꽈? ㅎㅎㅎㅎ

 

아빠가 그런 얘기도 해줬습니다.

마왕의 또 다른 곡 <Here I Stand For You ....?>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독백입니다.

특유의 저음으로 읊조립니다.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이 부분을 듣고 아빠의 친구의 친구가 울었다는 얘길요.

 

대학의 레벨을 일정 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예고를 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믿고 있는 영원한 것들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믿는대로 산다는 것이 갈수록 '바보가 되는 길' 같아 보이지만요.

그것을 바보로 보는 세상을 향해서 설명을 해봐야 어차피 바보의 말이기 때문에 그 다음 말은 어렵습니다. 

채윤이 아빠는, 채윤이 엄마는

채윤이 안의 아빠와 엄마는 인류 최고의 바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처럼 살고 싶지만 인간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고,

흉내를 내보지만 늘 한계에 부딪혀요.

사실 가장 정직하고 분명한 답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너무 거창하여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네요.

이번 채윤이 진로선택은 그분처럼 살기 코스프레입니다.

정답 없는 인생 여정, 신앙의 여정, 갈림길에 설 때마다

바보 그분의 가르침과 가까운 길을 고심해보고 이거다 싶으면 가보려고요.

그래봐야 결과는 바보의 삶이겠지요.

결과보다 이런 선택 한 번 한 번을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것 같아요.

 

 

 

 

 

 

  1. 2015.12.02 14:1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2.03 20:15 신고

      당근 기억하죠!^^
      저 사진 찍어놓고 '동유럽' 이라고 올릴까, 농담했어요.
      동유럽의 오래된 성당 같아서요.
      속일 수 없었겠네요. ㅎㅎㅎㅎ

      노래 제목 파란글씨 클릭하시면 들으실 수 있어요.
      응원 감사드려요. ^^

  2. BlogIcon 유산균발효중 2015.12.04 18:07 신고

    내가 고민해보고 상상해보는 어떤 미래를 대신 용기내어 걸어가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네요. 이렇게 옆에서 훔쳐보는 특권을 누리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빚을 졌어요. 선택의 결과에 의기소침 혹은 의기양양하지 않고 채윤이가 다만 더많이 즐겁고 더 깊게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2.05 10:57 신고

      의기소침도 아니고 의기양양도 아닌 즐겁고 행복하게!
      그렇군요. 이런 시간이 되어야겠어요!

      용감하게 아이를 그냥 1년 놀렸던 엄마 아빠가 시작한 일이 '꽃친'인데요. 그 엄마가 최근에 어디서 강의를 했는데 '길을 찾다 길이 된 사람들'이라 소개가 되어 있더군요. 적실한 표현 같았어요. 저희는 아직 시작되 안 하고 말만 요란해서 민망스럽지만 새로운 길을 걸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3. BlogIcon 김윤진 2015.12.23 18:53

    저는.. 채윤이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

 

 

 

2004년 탄핵정국 때 채윤이는 네 살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손잡고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지요. 목소리! 하면 또 채윤이라 화통 삶아 먹은 소리로 '타낵꾸요! 민쥬수호!' 외쳐댔지요. 돌아오는 길, 시위하면서 은혜를 충만히 받았는지 길거리 찬양집회를 하더라지요. 아빠 어깨에 걸터앉아 종로길을 걸으면서 (역시 고래고래) '갓써 제에자 사므라. 셋쌍 마는 사람드를 셋쌍 모든 영호니 네게 달련나니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걸 싫어해서 웃는 소리도 크게 안 내는 아빠는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를 목마에 태우고는 지옥의 맛이었겠지요. 채윤이와의 참 가슴 설레고 아름다운 추억의 날입니다. (당시 쓰던 2G 폰 사진이라 화질이 저리 구리지만 제 눈엔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어요.)

 

싸이 미니홈피가 한창이던 때였는데 저 사진과 함께 다녀온 후기를 올렸더랍니다. 그때 댓글로 누군가 이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직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정치적 입장을 그대로 주입하는 건 쫌 아니지 않나?'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집회에 데려가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 중립적인 부모일 수는 없습니다. 집에서 뉴스를 보면서 '저런 빨갱이 놈들 다 북한으로 보내버렷' 하는 부모 역시 (적극적이진 않더라도) 아이에게 나름의 관점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도 아이들은 자기 부모의 절대 영향권 안에 있는 것이지요.

 

정치적인 문제든 신앙의 문제든 심지어 엄마 아빠가 하는 고민에 대해서도 (이해할 만 한 내용이라면) 아이들에게 설명하곤 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또한, 피아노를 배우거나 태권도장에 다니는 것 등의 아이들에 관한 결정은 충분히 얘기하고 의논했습니다. 수영 같은 건 엄마가 먼저 제안했고, 채윤이 피아노나 현승이가 잠깐 했던 태권도는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누가 제안했든 충분히 생각하고 의논한 후에 일정 기간을 쭉 하는 걸로 약속합니다. 중간에 재미없어졌다고 '끊어줘!' 이런 거 없기로 말이지요. 이 부분은 어릴 적에 우리 엄마가 내게 좀 길러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덕목이기도 해서 단호하게 지켜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이들 교육뿐 아니라 저 자신의 삶에서, 또 제가 하는 연애 강의 등을 통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선택과 책임'입니다. 성숙한 사람의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고요. 무슨 주제든 아이들과 대화하지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자신에 관련된 일에선 특히 충분히 얘기하고 최종 선택은 스스로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글로 이렇게 써놓으면 굉장히 있어 보이는 교육철학이지만 철학이 엄마 머리에만 있다는 게 문제죠. 이 미덕을 가르치려면 실패가 뻔한 시도를 허용해야 하는데, 이느무 엄마가 그렇게 성숙하질 못해서요. 말처럼 되지 않습니다. 통제본능이 매우 강한 엄마로서의 저 자신을 (늘 아프게) 돌아보게 됩니다. 아무튼, 애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 면에 관에서 성공경험이라면 채윤이의 예중 생활 3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힘겨운 3년을 보내면서 깊은 좌절을 경험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자기 결정'이었다는 의식이 채윤이를 지키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연습을 체크하거나 성적 가지고 쪼거나 하지 않는(못하는) 불량 엄마 탓에 스스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채윤이는 예중 가는 선택을 '선생님의 설득으로 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몹시 싫어합니다. 선생님이 제안하셨고 자신이 선택했다고 늘 힘주어 강조하지요. 그 과정은 엄마를 졸라 허락 받아내는 일도 포함입니다. 아무튼, 이런 채윤이를 지켜보며 '자기 결정'의 힘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고에 가지 않기로 한 결정을 채윤이도 동의했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습니다. 동의라니요. 자기 결정입니다. 한참 전에 '중학교 마치고 1년 쉬는 방법도 있으니 생각해보자'는 제안을 엄마가 했고. '꽃친'이라는 게 있다, 해보면 좋겠다는 제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 예고를 가지 말아야겠다는 말은 채윤이가 했습니다. 일단 입시준비를 열심히 하고 합격을 한 다음 멋지게 그만두자!는 말은 엄마의 꼼수였습니다. 합격을 한 후에는 엄마, 아빠, 모두 (아까워서) 흔들렸습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펼쳐놓고 고민하고 대화했습니다.자연스레 '괜찮겠다. 예고 포기하는 게 맞네'라고 채윤이와 엄마 아빠는 물론 마음 터놓고 의논할 수 있었던 친구들도 한결같이 동의해주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종적인 자기 결정! 토요일 밤에 채윤이와 최종적인 대화를 마치면서 말했습니다. "그래, 채윤아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과 결정을 다 했어. 내일 예배드리고 찬양하면서 기도하며 최종 결정해.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께 말씀드려. 그러면 이 결정은 하나님 손에 맡겨 드리게 되는 거야" 채윤이가 갑자기 살짝 울컥하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그런데 나는 어른들이 하나님의 뜻... 이런 얘길 하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다, 이런 말을 할 때 좀 이해가 안 돼. 하나님이 이래라저래라 목소리로 말을 해주시는 것도 아닌데... 사실 예고를 안 간다고 하는 것도 내가 정한 건데 하나님 뜻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잖아." (표정은 수심 반 서러움 반)

 

"맞아. 채윤아! 니 말이 맞아. 엄마도 이 나이 되도록 살면서 많이 기도해왔지만 사실 하나님의 뜻이 이거다!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어. 그냥 기도하면서 그때그때 엄마가 좋은 걸 선택한 거지. 하나님과 함께 결정한다는 건 이런 거 같애. 너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하는 걸 알지? 사랑하니까 니 일을 막 정해주고 그래? 글치. 엄마빠가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 알지?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하니까 널 믿어주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려고해.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채윤이한테 뭘 바랄 것 같아? 그렇지. 잘 되는 거. 잘 돼서 어떻게 하라고? 맞아. 행복하라고. 엄마는 하나님이 채윤이한테 바라시는 건 채윤이 자신이 되어 행복한 거, 그걸 바라실 것 같아. 엄마가 널 사랑하니까 니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주잖아. 그렇다고 니 선택했으니 니가 알아서 해. 이렇게 해? 아니지. 엄마가 해야하는 것, 할 수 있는 걸로 다 도와주려고해. 그거야. 니가 가장 좋은 길, 또 선할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 같이 걸어가 주세요. 혼자서는 못 가요' 하고 가는 거야. 하나님 손잡으면 엄마랑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랑으로, 힘으로 너랑 함께 가주셔. 니가 최종 결정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것처럼 말야"

 

부모로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네 살 채윤이 목마에 태워 촛불집회에 데려갈 수 있었지만 열여섯 채윤이를 엄마 마음대로 아무 데나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네 살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열여섯은 그렇게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엄마로서 여전히 아이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내가 온전하지 않음을 알기에 아이의 행복에 대해서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다고 아직은 열여섯인 채윤이 혼자 알아서 결정하도록 무책임하지도 않습니다. 열여섯 채윤이가 할 수 있는 분량을 믿어주고, 도와주고, 스스로 가장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거절할 자유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무력하여 어마어마한 그 역설적인 사랑을 늘 많이 생각합니다.

 

꽃친 가족 인터뷰를 마치고 채윤이가 한 말입니다.

"엄마, 내가 아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그걸 못했어. 나는 꽃친을 해도 예고를 가도 어차피 아쉬울 거라는 걸 알아. 꽃친을 하다 예고 교복 입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고 예고 갈 걸... 하겠지. 예고 가서 힘들 때는 에이, 꽃친 할 걸... 하겠고. 어차피 아쉽지 않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아쉬운 건 그냥 아쉬워야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걸 열심히 해야지."

채윤이의 '자기 결정'입니다.  

 

 

 

 

 

* 이 사진은 입학 실기시험 치러 들어간 채윤이를 기다리며 찍은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때 읽고 있던 책이 <자기 결정>이었네요. ^^

 

 

 

 

 

 

 

 


  1. 엠마 2015.11.27 23:18

    아쉬운건 아쉬워해야지 라니 아 너무 훌륭하고 대견한데 한편으론 또 짠해서 눈물이 나네요 ㅎㅎ 남 탓을 하며 쉽게 가는 방법도 있을텐데 한걸음 한걸음 움직이는걸 보니 ㅎㅎ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도 또 쉴 그늘이 되어주는 부모님이라니 >_< 채윤이도, 또 함께 꽃친을 채워나갈 사모님도 응원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1.28 10:28 신고

      고맙습니다!^^
      맞아요.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엄마나 누군가가 정해 놓은 길을 갈 때는 언제든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탓'이죠. 쉽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 춤추는 삶을 살게 하는 것, 살아야 하는 것이 엄마로서 저 자신으로서 중요한 일이란 생각을 해요. 어설프지만 채윤이가 그걸 말하는 것 같아서 대견했어요. 히히.

  2. 2015.11.30 00:33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2.02 11:27 신고

      솔직한 질문만이 진실의 답을 들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
      그런 의미로 님을 응원!!!! ^^

  3. 대밭 2015.12.05 21:07

    제 아이 역시 피아노를 쳤고요 예중 졸업 후 예고 합격하고는 자퇴를 했지요.이유는 쇼팽 베에토벤만 주야장천 쳐야하는 제도권 음악 교육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유별스레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만 좋아했어요.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자기가 결정했지만 갑자기 제 앞에 펼쳐진 공백의 시간들을 한동안 못 견뎌하고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서 엄마는 왜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냐고 몇 번쯤 항변하기도 했어요. 도서관 간다며 나간 애가 도시락 싸 들고 도서관을 가 보면 애가 없어요. 근처 pc방에서 애를 찾아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하던 절망의 날들이 몇 개월 이어지기도 했어요. 결국 '내 사랑 피아노'로 다시 돌아와서는 하루의 대부분을 피아노를 두들기며 보내더니 입시준비한다고 대입 종합학원을 몇 개월 다니곤 시회학과로 대학을 갔지요.지금도 여전히 눈 뜨면 피아노 집에 돌아오면 바로 피아노 밥 먹고 피아노, 자기 전에 피아노, 짬만 나면 피아노와
    연애하며 살아요.행복하게 잘 살아요. 자기가 결정하고 책임지려 어렵게 애 쓰고 그 시간들이 아주아주 아이에겐 큰 힘이 되었다고 저는 확신해요. 아이와 함께 아프고 견디면서 저도 많이 깊어졌고요. 화이팅! 이예요.

    • BlogIcon larinari 2015.12.07 09:56 신고

      아, 그러시군요. 이렇게 결정을 해놓고도 마음은 자주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하고 있어요. 아이에겐 선택하고 책임지면 된다고 쿨하게 말하지만 제 마음에선 '과연 잘한 일일까? 이제 막 음악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하는데 꺾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만 가지 걱정이 오락가락 해요. 들려주신 이야기에 가슴 뭉클해지네요. 먼저 걸어가신 몇 안 되는 분들의 드문드문한 발자국에 크게 힘을 얻어요. 감사합니다!!

 

 

 

 

육아, 라고 하기엔 아이들도 크고 저도 많이 늙었으니 '자녀교육'이라고 해야겠네요.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유별나다'는 주변의 평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보통과 다르다'는 의미라면 몰라도 특별히 애를 쓴다거나 '에너지를 쏟는다'는 뉘앙스일 때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신경함의 유별남'이라면 인정하겠습니다. 사실 채윤이는 우리나라 공교육에는 좀 맞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채윤이가 서너 살일 때부터 엄마로서 촉이 왔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홈스쿨링을 고려하거나 대안교육 같은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쓸 에너지가 없어서(귀찮아서?)였고, 채윤이가 살아갈 세상은 어차피 그러하다 생각했습니다. 개성이 강하고, 자기 생각이 분명한데 한글 따위는 배우지도 않은 채윤이의 학교생활이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였지만 주저 없이 학교에 보냈습니다.

 

나름 아기 적부터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려 했던 부모입니다. 무슨 일이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대화했으며 부당하게 강압하지 않았습니다. 아이 앞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면 분노가 가라앉은 후에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리얼리? 이렇게 좋은 부모라니!!) 비록 우리는 이렇게 키우지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우리 아이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그 모든 것을 막아줄 수도 없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선생님께 부당하게(아이 입장에서야 늘 부당하겠고, 가만 들어보면 정말 부당한 것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야단을 맞고 왔다 해도 그걸 크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날 지언정. 아, 물론 아이가 구구단을 빨리 못 외운다고 수학책으로 머리를 때렸던 2학년 때 담임, 하남 천현 초등학교 *** 선생님은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아빠까지 대동해 찾아갔습니다. 이 일 외에는 그저 채윤이든 현승이든 학교에서 받는 칭찬과 상처를 스스로 견디도록 했습니다. 다만 엄마 아빠 품에 돌아왔을 때 기댈 언덕이 되어주고 충분히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자 했습니다.(만 그저 생각일 뿐 상처받고 온 아이 더 상처 주는 일이 많았지요.ㅠㅠ) 알고보면 저, 꽤나 체제 순응적인 부모랍니다. 케케. 심지어 영양사가 짠 식단으로 점심 한 끼를 먹고 올 수 있다는 것, 그것에 엄마의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열심히 학교 보내는 엄마입니다. 5대 영양소 골고루 챙겨 멕여주는 게 어디냐며. (강의와 원고가 몰릴 때는 며칠이고 우리 집 싱크대에서 쌀뜨물 흘러가는 일이 없다지요.)

 

결론부터 까놓고 시작한 글입니다. 채윤이는 예고에 합격했지만 예고에 가진 않습니다. 예고에 가지 않겠다는 선택이 대단히 유별난, 비장하고 진지한 선택은 아니랍니다. 딱 사람을 낚기 좋은 선정적인 제목이라서 던져봤을 뿐이고요. 사실 이 연재의 핵심은 '예고에 가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1년을 쉽니다'입니다. 그리고 1년을 쉰다는 선택도 딱히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는, 그저 채윤이와 채윤이 엄마의 삶의 여정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3년 전 예중 입시를 선택했던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청년 시절 <많은 물소리>라는 찬양집을 애용했습니다. 당시 청년부에 도는 안경 낀 철학 전공 남자애가 하나 들어왔는데 어쩌다 찬양인도를 맡더니 찬양집을 바꾸더군요. 그것이 <많은 물소리>였습니다. 아, 그 도는 안경의 이름은 김종필입니다. 그 찬양집을 만든 황병구 님을 김종필과 함께 오래도록 흠모했습니다. 그가 만든 찬양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그댄 솔잎이어라'는 한영교회 청년부를 섬기던 시절 목자들과 부른 18 번 곡이었지요. 물 흐르듯 흐르는 우리 일상의 시간 속에 황병구, 이수진 부부가 곁에 왔고 오래된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집 딸내미 은율이의 안식년 소식에 마음이 움직였지만 (지난 글에서처럼) 채윤이에겐 예중-예고 프로필이 중요했구요. 그런데 갑자기 이 부부가 딸내미 안식년 경험을 더 많은 아이들에게 나눌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 결정의 중요한 장면들을 제가 자꾸 목격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맥도날드 앞에서 눈물로 결심한 대로 채윤이는 열심히 피아노를 쳐댔고, 저는 열심히 레슨비며 돈을 댔습니다. 이것과 상관없이 '꽃다운 친구들 '이라는 이름을 달고 황&이 부부님은 열심히 새날을 준비하더군요. 9월이 되어 채윤이는 입시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꽃친은 개봉박두, 설명회를 하기에 이릅니다. 잠시 짬을 내어 설명회에 다녀 온 채윤이는 카톡 상태 메시지를 '꽃친'이라고 바꿔 놓더군요. 그러나 정말 꽃친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해서는 말도 못 꺼내게 했습니다. 지금은 입시만 생각하겠다며, 입시 끝나고 얘기하자며. 그 와중에 꽃친에 어플라이 하기 위해 급조해서 자기소개서도 쓰고,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11월이 왔고 드디어 입시를 치렀지요.

 

시험을 마치고 발표까지 며칠. 당락에 상관없이 진로를 정하기로 했었기에 얘기를 좀 해보려 했더니 채윤이는 역시나 입도 뻥끗 못하게 합니다. 합격 발표 보고 얘기하자면서요. 합격하고 나니 마음이 무지 복잡해지더군요. 채윤이나 엄마나 심지어 차거운 머리를 가진 아빠까지도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걸 포기해? 미친 짓 아닐까? 대학입시 따위 개똥으로 취급하는 척, 쿨한 척 하던 것이 그저 '척'이었음을 알겠더군요. 짧고 굵은 갈등,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이런 저런 대화, 무엇보다 채윤이와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결론은 자명해졌습니다. 때마침 접한 이 기사 (입시전쟁 최고봉. 서울대? 아니 예술중!)는 아주 그냥 시의 적절합니다. 잠시 우리를 흔들었던 욕망, 그리고 자명한 결론과 필연의 선택을 다 담고 있네요.

 

꽃친이 아니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이 부족하여 '꽃친'이 채윤이만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씸다. 그저 채윤이와 채윤이를 키운 불량 엄마가 여기 있고, 3년 전 은율이의 선택이 있었고, 은율이를 그렇게 키운 은율이 엄마 아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남이라는 신비가 이 모든 것을 연결시켜주었지요. 우리 모두의 시간이 흐르는 강물과 같고, 어느 여울목에서 교차하여 만난 것입니다.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왜 예고를 안 가냐고? 여기서도 의문이 안 풀리셨다면 다음 편 예고 겸, 의문에 대한 힌트 겸 황병구 님의 노래 한 곡조 들려드리며 마치겠습니다.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작은 시작은 그 소리조차 없구나

소리없는 삶을 몰라하는 이들

그들도 삶의 시작은 작구나

 

지금도 우리 시작은 작구나

작은 외침을 듣는 이들도 적구나

적은 무리됨은 기뻐하는 이들

그들과 우리 시작은 작구나

 

높이 떴을 때 더욱 작아지는 해처럼

깊이 잠길 때 더욱 소리없는 바다처럼

높게 살자 깊게 사랑하자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1. BlogIcon hs 2015.11.21 22:18

    하남 천현초등학교?
    우리 현지가 다니는 학교가 그 학교인데....ㅠ
    하지만 세월이 한참 흘렀으니 그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갔겠네요.
    근데 난 엉뚱한 것이 궁금한데 이 글 쓰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하는 거~~^^

    • BlogIcon larinari 2015.11.22 11:43 신고

      아, 현지가 거기 다니는군요! 엄마랑 같은 학교는 아니죠?^^
      그 선생님은 그 해가 정년퇴임이었어요.

      엉뚱하다고 하시는 질문이 신선하고 재밌어요. 장로님. ㅎㅎㅎㅎ
      글 생각은 꽤 오래 하구요.
      앉아서 쓰면 쭈욱 금방 써질 때가 많아요.
      블로그 글은 참 쉽게 써지는데 기고글을 쓸때는 시간에 몇 배로 걸리는 것이 희한한 것 같아요.

  2. BlogIcon 예쁜별 2015.11.22 00:44

    1년 쉬는 것에 대찬성!!!

    • BlogIcon larinari 2015.11.22 11:43 신고

      소중한 한 표, 고맙다. ㅋ

    • BlogIcon 예쁜별 2015.11.22 23:49

      그래서 '예고'를 왜 안 가는지 채윤이의 생각은 또 있었는지 궁금한데 '예고'편 없이 포스팅이 찾아오나요?

    • BlogIcon larinari 2015.11.23 20:34 신고

      예고 없이, 때로는 예고하고
      예고 안 가는 얘기는 계속된다! ㅎㅎㅎ

  3. 이지혜 2015.11.22 15:58

    헐. 대박이네요. ㅎㅎㅎ
    우리 애녀그램 도와주신 이수진 선생님이랑 황병구선생님이 같이 사시는 분이라니.ㅎㅎㅎ
    그 사실이 더 충격...ㅎㅎ^^;;;

    페북에서 저두 "꽃다운 친구들" 안내를 살짝 스쳐 봤었는데...^^
    용기 있는 선택이네요. 정말 정말 예쁘고 멋저요! ^^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저는 만들어진 틀과 제도의 노예라 선뜻못할 것만 같은데)

    • BlogIcon larinari 2015.11.23 20:34 신고

      네네, 에니어그램 세미나 클래스가 이렇습니다! ㅎㅎㅎ
      채윤이의 삶, 우리 가족의 삶의 맥락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실은 주어진 틀 안에, 하던대로 하는 걸 편안해 하는 스타일!

  4. 2015.11.24 14:14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1.27 22:46 신고

      큰 응원자 한 분, 감사합니다!
      사실 글만 번지르르한 면도 있어요.
      현실의 엄마는 분노 조절도 잘 안 되고.....
      하여튼 그래요. ㅠㅠㅠㅠ

  5. BlogIcon 쥐씨 2015.11.25 17:59 신고

    뒤늦었지만 꼭 실시간으로 봐야만 하는 글은 아닌 글 이제서야 읽고 있네요 ㅎㅎ 임경선 작가의 <엄마와 연애할 때>보면 엄마가 딸 떄문에 행복해서(?) "나 너 때문에 자꾸 행복해서 글빨이 후져져"라고 하는 뉘앙스의 대목이 있는데 ㅋㅋ 그게 무슨 기분으로 하는 소리인지 알 것만 같았었거든요. 근데 모님은 예외 없네여. ㅎ_ㅎ

    • BlogIcon larinari 2015.11.27 22:48 신고

      사실을 알려줄게.
      "나 너 키우는 일에 자꾸 고민이 많아져서 글빨이 장난 아냐.
      엄마가 글 잘 쓴단 얘기 듣는 건 다 니 덕분이다."
      난 이래. ㅋㅋㅋ

 

 

 

예중에 입학한 채윤이는 예고의 교복이 그렇게나 예쁘다며 꼭 입고야 말겠다고 했습니다. 예고 교복 예쁜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아름다움(물론 채윤이는 이런 표현을 알지 못합니다. ㅋㅋㅋ)이라며, 그 교복엔 백팩을 매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숄더백(물론 이런 용어도 모르기 때문에 '엄마, 가방 중에 그런 거 있잖아. 줄이 두 갠데 좀 길고 그래서 어깨에 매고 그러는, 회사 다니는 언니들이 매는 그런 가방'이라며 기나긴 설명을 합니다만)을 매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완전 대박! 등교가 아니라 회사 출근하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암튼, 예고 교복은 입고야 말겠다고!

 

# 채윤이 선언

 

2학년 어느 날 채윤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나 예고 가지 말아야 할까봐. 우리 인성 시간에 장래희망 이런 거 써내고 얘기 했는데.... 피아노과 애들이 장래 희망이 다 똑같애. 뭐게? 피아니스트, 땡! 모두 다 교수야.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모두 다 서울대 교수야. 엄마 그게 말이 돼? 서울대 피아노과 교수가 몇 명이나 된다고. 휴유, 나 예고 가지 말까봐."

 

이 말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같은 꿈을 가졌다는 것은 새롭지 않은 놀라움이긴 하지만요. 그렇다고 예고에 가지 않겠다니. 제가 아는 채윤이는 친구들이 모두 그러겠다면 '아, 그게 답인가보다! 그럼 나도 일단 서울대 교수!' 이럴 애 거든요. 얘가 우리 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서 고민을 하거나 딱히 의식이 있는 중딩도 아닌데. 오히려 채윤인 그 누구보다 학교라는 체제에 순응하여 그 틀로 자기를 바라보며 주눅이 들다가도 사소한 성과 하나로 과도하게 교만해지는 그런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말이 더 가관입니다. "엄마, 우리가 아직 중학생이고 아직 3학년도 아닌데 선생님들은 너네 예고 못 가면 대학 못 간다, 이러면서 자꾸 한 가지 얘기만 해. 대학교를 간다 못 간단 얘기만 하는데 너무 이상한 거 같애. " 뭔가 문제의식을 느꼈나봅니다.

 

# 엄마 당황(하지 않고 일단 무시하기)

 

엄친딸, 그러니까 제 친구의 딸인 은율이가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 가기 전에 안식년으로 1년 쉬었단 얘길 듣고 그거 한 번 해보면 좋겠단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채윤이 상황은 조금 특수했지요. 이왕 예중에 입학한 거, 프로필에 예중 예고 나란히 써주는 게 순리라는 입장 또한 분명했습니다. 예고를 안 갈까보다, 하는 채윤이 말은 그러다 말겠지 싶었고. 어린 것이 다시 입시를 치르고 예고 3년을 빡빡하게 보낼 생각하면 마음은 짠했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짝 당황했지만 일단 응응, 해주고 무시하기!

 

# 채윤이 생각

 

3학년이 되고 학교 분위기가 입시체제로 돌입하였습니다. '향상음악회'라고 친구들 앞에서 연주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곡을 들고 무대에 서는 것이 반복되자 가뜩이나 꾸깃꾸깃한 자존감이 반듯하게 펴질 날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구겨지고 다시 구겨지고....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하는 것도 아닌데 뭔가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 같았습니다. 급기야 레슨 선생님께선 "처음 만났을 때 반짝이던 채윤이가 없어졌다. 무엇을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 통 못 알아듣는다" 하십니다. 다그칠수록 채윤이는 더욱 위축되어 음악이고 마음이고 꽉꽉 막혀있는 듯 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자꾸 무너져 내렸습니다. 채윤인지, 내 자신인지, 선생님인지, 아니면 이 현실인지 무엇엔가 화가 났습니다. 피아노가 안 되는 것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반짝이던 채윤이를 잃었고 어디 가서 찾아야할 지를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적보다, 성격보다, 그 무엇보다 가장 지켜주고 싶었던 채윤이다움.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은 아득해질 뿐이었습니다.

 

맥도날드에 앉아 채윤이와 기나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보니 절망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채윤이를 잃어버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채윤이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채윤이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 하시던 지점을 채윤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거기를 포르테로 치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생각할 때 포르테가 아니라 피아노가 되어야 할 것 같다구. 선생님 생각과 내 생각이 너무 달라.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아져. 그래서 나도 힘들어." 그럴 때 선생님께 채윤이 생각을 말씀 드려보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당연히 안 된답니다. 그렇게 해 본 적이 없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자기보다 음악을 더 잘하시는데 말해도 소용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당장 내일이 향상(음악회)인데 그런 얘길 해서 뭐하냐는 것이지요. 연습을 할수록 더 안 된답니다. 엄마는 자꾸 어렸을 적 내 얘기만 하는데 그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안 된다고. 내년에 안식년 할 생각도 있었으니까 입시는 포기하든지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 엄마 깨달음

 

채윤이 얘길 들으며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채윤이는 자기 음악을 찾는 중입니다. 채윤이는 자기 생각이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헤매고 있고, 그걸 죽이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학교의 잣대로 보면 무지무지 음악이 안 되는 학생이지만 뭔가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 후 엄마 마음에 왠지 확신이 생겼습니다. "채윤아, 포기해도 돼. 그런데 입시 끝나고 포기하자. 너는 피아노, 선생님은 포르테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선생님과 토론하고 논쟁하고 그래서 배워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그런데 엄마가 알기로 우리 나라에서, 특히 너가 가는 길에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 엄마는 네 생각을 지지해. 음악에 답이 어딨어! 내 음악을 만들어 가는 거지. 엄마가 지금 채윤이 얘길 듣다가 확신이 생겼어. 너 학교에서 꼴찌해도 돼. 그리고 왠지 선생님과 생각이 다른 그것이 너무 너무 중요해. 그게 있어서 다행이고. 그러나 채윤아, 딱 일 년만 그렇게 그냥 이대로 지내보자. 네 생각 소중하게 간직해서 딱 1 년만 넣어둬. 아냐, 1년도 아니네. 이제 몇 개월이야. 그리고 입시를 마친 다음에 다시 생각하자. 입시나 성적 자체가 중요하지 않지만 엄마는 네가 이런 학교와 환경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누구에게? 세상에게!) 중학교 생활을 마쳤으면 좋겠어. 엄마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교수님 레슨도 받고 연습실도 구해줄게. 돈 많이 들어도 돼. 입시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 봄바람

 

1년이야.

1년만 딱 그렇게 하고 우리 더 좋은 길을 찾자. 계속은 안 되겠지만 1년은 할 수 있겠지? 

 

맥도날드 야외석에 앉아 있었는데, 아직 3월인데 이상하게 춥지가 않았습니다. '이느무 지지배 멍청해서 선생님 말씀도 못 알아듣고. 생각은 어디 가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피아노만 쳐댄다고 연습이 되나. 어쩌다 이렇게 멍청한 게 됐나. 이걸 그냥!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려버릴라.'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대화였습니다. 그 춥고 딱딱하던 마음에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대화하면서 '학교. 예술전공, 우리 교육의 현실, 그 안에 있는 채윤이'의 상황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넘사벽 앞에 선, 자기답게 음악을 하고 살고 싶은 아이,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로 혼란스러워 하는 채윤이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길이 보이는 것 같았고 마음에 알 수 없는 평안 같은 것이 생겼고, 무엇보다 채윤이를 진심으로 더 사랑하고 응원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 내가 이 아이 엄마지. 끝까지 너를 지켜줄게. 어디선가 이 노래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삶의 막막함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의 말씀이, 삶의 답답함 가운데 빛이 되시는 주님이 말씀이 내겐 봄과 같아서 내게 생명을 주고 내게 신선한 바람 불어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하네"

 

 

* 1편에서 예고해 드렸던 제목과 다릅니다.

이유는 1편의 반응을 보니 구독률이 좀 나오겠다 싶어서,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연재 횟수를 최대한 늘리기로 자체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1. BlogIcon 2015.11.19 20:15

    멋지다!!!! 챈이나 엄마나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아빠 모두모두~^^나도 그런 엄마빠 있었으면 좋겠다.^^.(내가 그러해야 되는데ㅠㅠ)

    • BlogIcon larinari 2015.11.19 20:40 신고

      완전 울컥하게 공감!
      가끔 내가 애한테 뭘 해주면서 애를 부러워해.ㅎㅎㅎ

      그나저나 나 오늘 혼자 저녁 먹었는데.
      김치 한 포기 썰지도 않고 손으로 찢어가며 밥 한 공기 반 먹은 여자.
      몇만 원 부페가 부럽지 않았다!
      너희 김장하는 날 모른 척하고 내려가서 괜히 얼쩡거릴까 생각 중.ㅋ

    • BlogIcon 2015.11.19 21:46

      아무때나 와서 얼쩡거려.ㅋㅋㅋㅋ
      나도 가끔 엄마있는 민이를 부러워해.ㅎ

    • BlogIcon larinari 2015.11.19 21:53 신고

      난 사실 어떨 땐 부러움을 넘어 질투까지.

  2. 엠마 2015.11.19 22:07

    꺄 뒷이야기가 넘 궁금해서 들락거렸는데 있네요 오늘은!!!!! 채윤이가 이런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니 ㅠ_ㅠ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지만 또 현실세계에서 담담하게 살아낸게 왤케 짠하고도 멋지죠!! 그리고 그 결정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어머니도 >_< 다음편을 또 기다려 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1.20 09:14 신고

      '그 또한 지나가'서 다행이지 그 즈음 힘들었어요.
      리허설이나 향상음악회 끝날 시간 채윤이한테 전화가 오면
      통화 버튼 누르기도 겁이 날 지경이었죠.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어쩌구 저쩌구 하다고 울고....
      아오, 진짜. ^^
      응원에 힘입어 또 씁니다.

  3. BlogIcon 우쭈꿈 2015.11.20 01:16

    오옷..
    역시 모님.. 밀당의고수 ㅋㅋㅋㅋㅋㅋ

    • BlogIcon larinari 2015.11.20 09:15 신고

      오옷.
      이 글에서 '밀당'이란 말을 건져내다니.
      역시 쭈꿈. 연애 철학자! ㅋㅋㅋㅋㅋ

  4. 정.. 2015.11.20 10:18

    채윤이와 엄마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성장을 옆에서 보고 온 1일인으로서 2회의 글은 뭔가 아쉽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음!!!!!!
    언냐한테 전화해서 글 좀 늘려봐 ~~~~~~~~~~~~~~~~~할 에정이었음 ㅎㅎㅎㅎㅎ

    10부작정도 ??????

    이러다 영화 찍겠네^^

    • BlogIcon larinari 2015.11.20 22:05 신고

      '글 좀 늘려봐~~~~~~~~~~~~~'의 지렁이 길이로 마음이 확 전해진다. 5부작 정도 할랬더니 더 늘려야 하나?ㅎㅎㅎ

  5. 2015.11.20 15:34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1.20 22:06 신고

      저 중딩도 대단히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에요.
      엄마가 약간 글로 쥐어짜낸 편.^^

  6. BlogIcon hs 2015.11.20 21:31

    흥미 진진 합니다. ^^
    채윤이는 마음을 알아주고 지도해 주는 엄마가 있어 행복한 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래가 기대도 되구요.
    사모님의 마지막 멘트~
    너무 재밌어요~~^^

    • BlogIcon larinari 2015.11.20 22:09 신고

      문제는 이렇게 잘 알아주고 지도해주다가도
      한 번씩 너무 마음을 몰라주고,
      윽박지르고,
      무시하고 상처 주곤 해서요. ^^;;

      사실 저는 제가 써놓고도 마지막 멘트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ㅎㅎ

  7. 이지혜 2015.11.21 16:50

    저도 빨리 ㅋㅋ 아이들 이야기 쓰고 싶은데...ㅎㅎ
    현실은 결혼부터...네요. 언제 그까지 간대요? ㅠㅠ

    채윤이도, 모님도 너무너무너무 멋지고, 사랑스럽네요! 히히
    애독자 목 빼가며 기다립니다~ㅎㅎ

    • BlogIcon larinari 2015.11.21 20:21 신고

      열심히 공부하시며,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시며,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시는 오늘이 귀합니다!^^
      이런 오늘이 길어지는 것이 전도사님께나
      미래 어느 날 만날 그님에게나,
      무엇보다 미래의 아이에게 큰 복이 된다는 걸 꼭 알랴드리고 싶은데.
      알아 들으시죠?^^

      제가 그 시절에는 꽤 늦은 결혼이었는데요.
      다른 건 몰라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엄마는 한 번 되어 보고 죽어야 할텐데. 이렇게 늙어 죽진 않겠지? 했던 생각이 납니다.

 

 

 

채윤이가 예고에 합격했다는데 별로들 안 놀라시네요.

이건 좀 깜짝 놀랄 일인뎁쇼.

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일궈낸 합격이라서 그렇습니다.

조금 긴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일단 예중 입학부터 거슬러 올라가야겠네요.

초3, 4부터 한다는 예중 입시 준비거든요.

5학년 가을, 입시 1년을 앞두고 채윤이는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나 예중 가고 싶어.

열심히 할게. 어려운 거 알아. 힘든 것도 알아. 그래도 나 예중 가고 싶어. 엄마.

어르고 달래고 엄포를 놓곤 하다가 어차피 1년 준비해서 될 일이 아님을 알고 허락했습니다.

"14층 누나~아, 14층 누나 왜 요즘 우리랑 안 놀아?" 팬들의 성화에 아랑곳 하지 않고.

팬들이 아파트 복도를 뛰어 다니며 '경도-경찰과 도둑이라는 잡기놀이'를 할 때도

개의치 않고 피아노를 쳐댔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벽을 뚫고, 곡절 끝에 예중에 입학했습니다.

 

불과 1 년 준비해서 들어간 예중,

달랑달랑 꼬리 잡고 들어간 예중.

녹록치 않았습니다.

15개월부터 정확한 음정으로 '주는 나의 좋은 목자'를 부르고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불렀제낄 땐 얘는 독보적인 능력을 타고났다고 확신했었드랬습니다.

예중에 가보니 그런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고 중요한 건 또 그게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돈으로 쌓은 내공.

그것이 약한 채윤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 펼 날이 없었습니다.

예중생으로 좋은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예중 가기로 결정하고 야심차게 입시준비 시작할 무렵.

강동에서 낯선 마포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한 다음 날 딱 하루 피아노 연습했는데 다음 날 바로 아래층에서 올라왔습니다.

고개를 여러 번 숙여 죄송하다, 조치를 취하겠다 했습니다.

교패(현관에 붙이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알리는 스티커)가 밉더군요.

그날로 그나마 아쉬운대로 사용하던 업라이트 피아노는 '제니오'라 불리는 기계를 떡 붙이고

'사일런스 피아노'가 되었답니다.

이걸로 연습을 한다는 것은 반드시 실기 꼴지를 하고 말겠다는 의지와도 같았지요

 

게다가 엄마(만 거명하는 건 뭔가 혼자 독박 쓰는 기분이니까) 아빠는 최악이었습니다.

수업료와 최소한의 레슨비에도 매달 입을 쩍쩍 벌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구요.

아이의 실력,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이 시대 성공신화의 3대 요소라는데.

실력과 재력은 둘째 치고, 엄마의 정보력은 꽝인데다가 정보를 모을 의지도 없었답니다.

정보를 얻다가 아이를 잡느니 정보원 엄마들과의 연을 끊겠다며 고상을 떨지 않나.

저명한 피아노과 교수님이 근거리에 있는데도 줄을 대볼 생각조차 못하는 찐따 엄마라니요.

등교부터 하교, 하교로부터 학원, 학원으로부터 레슨까지 따라 로드매니저 엄마도 있다던데

집에서 합정역까지 5분 태워주는 것을 가지고 아침마다 투덜대던 엄마였습니다.

한 일 년 전에는 깁스한 발로 지하철 타고 한 시간 거리 등하교를 하기도 했지요.

엄마라는 여자가 독하기도 하지요.

 

3학년 3월에는 최악의 위기가 찾아 왔지요.

버티고 버티던 채윤이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우직하게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또또또 연습해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아아 악악악악악아' 밤의 여왕을 부르던 음악 영재 두 살 채윤이는 어디로 가고

앞뒤가 꽉꽉 막힌 음악 둔재가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기 적에는 물론이고,

놀며 피아노 배우던 시절 소나티네를 쳐도 근육이 먼처 춤추던 아이였는데,

무대에만 서면 로봇이 된 머리부터 손가락 끝까지 통으로 움직이는 로봇 같았습니다.

고민하고 울고 불고 하던 채윤이는 포기하겠노라 했습니다.

독한 엄마는 말했습니다.

"포기해도 좋아.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남은 1년은 열심히 하고, 그 다음에 포기해.

채윤이 니가 예중을 선택했을 때는 3년을 선택한 거야.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올해는 열심히 하는 거야. 채윤아, 니가 잘 알듯 선택에 대해선 책임이 있는 거야. 올해까진 책임져야 해. 그리고 채윤아 너 혼자 애쓰도록 하지 않을게. 엄마가 연습실도 구해주고, 앞으로 교수님 레슨도 하자.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다 도와줄게. 채윤이도 최선을 다해 연습해."

모든 걸 떠나서 중학교 3년을 패배감에 절어 끝낼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3학년 2학기, 입시를 앞둔 실기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은 채윤이는 바로 담임샘께 갔답니다.

"선생님, 등수가 안 나왔어요."

"거기 형광펜 칠한 부분이 등수야. 채윤이 너 이번에 정말 잘했어"

"어.... 여기 앞에 한 자리수가 없는 거 같은데요......이게 그럼 정말 제 등수..... 흑흑흑"

레슨 선생님께서 이 모의고사를 '복면가왕'이라고 하셨습니다.

입시와 똑같은 환경을 위해 심사위원석과는  막을 쳤고, 

이제껏 실기시험 때마다 채점하던 분들이 아니라 외부 교수님들이 심사를 했답니다.

선입관 없는 심사에서 최저 비용으로 예중을 다닌 채윤이는 한 자리 수 등수를 받았습니다.

 

채윤이는 자신감을 회복했고,

열심히 하면 결국 실력이 나아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교수님 레슨을 받는 것이 실력과 성적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채윤이는 예고에 합격했습니다. 

합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았던 지난 3월의 선택이며,

그 누구의 강요나 강압 없이 자신과의 싸움과 같은 연습시간을 견딘 것입니다.

채윤이는 이렇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말하자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3년 간의 영아티스트 분투기 입니다.

 

 

 

# '열여 섯 채윤이의 진로선택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글 예고. <채윤이는 예고에 가지 않습니다>

  다음 글  업데이트 시기는 댓글 달리는 거 봐서 결정하겠씀미다. 충성!

 

 

 

 

 

 

 


  1. 길상 2015.11.17 12:24

    업데이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덧글입니다. ㅎㅎ
    남의 집 아이지만, 교회에서 우연히 만날 것만 같은 아이의 십대는 흥미진진하군요.

    • BlogIcon larinari 2015.11.19 12:16 신고

      길상 님 첫 댓글에 힘을 빡 받았습니다!
      계속 한 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ㅎㅎ

  2. BlogIcon 2015.11.17 13:38

    눈물없이 읽을 수 없어 눈물로 읽고 간다.ㅎ~딸,엄마빠 모두 축하해~^^

    • BlogIcon larinari 2015.11.19 12:17 신고

      그 중요한 순간에 애를 놔두고 놀러 간 것이 잠시 찔렸지만
      그 중요한 순간에 함께 의논할 시간을 마련해주신 그분의 예비하심이라 믿어. ㅎㅎㅎㅎ

  3. 엠마 2015.11.17 18:33

    스스로의 삶을 견뎌낸 채윤이가 너무 대견해요!!! 하면서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는데 다음 글 주제가 제 머리를 탕 치고가네요 하하하 다음 글을 기다립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1.19 12:24 신고

      이 글을 정리하다 보니 생각보다 채윤이가 더 잘 해냈단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저 나이 때 저럴 수 있었나 싶기도 하구요. 정리하며 아이도, 제 마음도 새롭게 보이네요. ^^

  4. forest 2015.11.17 21:02

    누구보다 어렵게 이뤄낸 귀중한 합격, 축하합니다~~^^


    합격과 동시에 걷어차기라니.. 다음 글 음청 기대~

    • hs 2015.11.17 22:11

      forest님 ~ 반갑습니다. ^^
      오랜만이네요.
      평안히 지내시죠?

    • BlogIcon larinari 2015.11.19 12:24 신고

      히히. 감사해요. 열심히 한 번 써보겠습니다.

      왕년의 블친 추억의 모임 한 번 해야겠어요. ㅎㅎㅎㅎ

  5. hs 2015.11.17 22:08

    "아저씨~~
    우리 딸 합격했어요."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못 알아 듣고.. "네?"하고 물으니,
    우리 딸 예고에 합격했어요. 한다.

    얼마나 좋았으면 나에게 까지 자랑을 할까?
    하며 축하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 손님의 이야기입니다.

    축하합니다.^^
    예중.예고 들어 가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거 같던데
    채윤이 어릴 떄도 음악을 들으면 바로 치지 않았나요?
    타고 난 기량을 맘껏 펼치게 저도 기쁨니다.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아마 기억도 못 하겠지만...^^

    • BlogIcon larinari 2015.11.19 12:25 신고

      기억을 못 하긴요!
      채윤이 인생 최초의 드레스를 주신 분인데요.
      그때 한참 공주병이 극심하던 시절이라 드레스 보고
      난리가 났었지요. ㅎㅎㅎㅎ

  6. BlogIcon 우쭈꿈 2015.11.17 22:56

    허엇! 뭔가 흥미진진합니다
    반전인데요~!!
    채윤이 대박!!

    • BlogIcon larinari 2015.11.19 12:26 신고

      반전에 반전!
      아, 이런 걸 계속 터뜨리고 싶네. ㅎㅎㅎㅎ

  7. 2015.11.18 11:0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1.19 12:27 신고

      고맙고맙.
      내가 나중에 진로상담 하자고 연락할 수도 있어요. ㅎㅎㅎ

  8. BlogIcon 새실 2015.11.18 21:25

    아이 몰라! 이모야는 얼마전 동그란과자(언니.나 요즘 심각한 단어 기억상실ㅜㅜ네이버 가서 검색하려다 나가면 또 댓글 꿀꺽할것같아 그냥 씀) 암튼 그 동그란샌드위치과자 가게 앞에서 한참을 채윤이 생각을 했다지요. 저거 꼭 먹이고 말겠어! 이러면서! 암튼 더 행복해있을 이 이야기의 10부정도를 기대하며 싱긋 웃다갑니다. 킁킁

    • BlogIcon larinari 2015.11.19 12:28 신고

      음... 이런 태도 마음에 들어.
      생각 안 나는 단어는 그냥 막 설명하고 그러는 태도.ㅎㅎㅎㅎㅎ
      동그란 거 그거 보면서 동그란 채윤이 생각해주는 이모도 있고.
      채윤이는 이미 행복한 아이지.

  9. 대옹 2015.11.18 22:37

    영아티스트. 채윤이 멋지네요!

    저번주 권찰모임 끝나고 헤어지는 길에 활짝 웃으시며,
    채윤이의 합격소식을 전해주시던 목사님의 얼굴이 기억나네요.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집사님. ^^

    다음글도 기대할께요! :)

    • BlogIcon larinari 2015.11.19 12:30 신고

      아빠가 덤덤하고 무심한 듯 하더니 속으론 안 그랬나 보네요.
      따뜻한 축하 고맙고,
      아빠 관련 제보 완전 고마워요! ^^

  10. 2015.11.20 00:03

    비밀댓글입니다

  11. 김종하 2015.12.16 13:57

    많이 컷네요!

    • BlogIcon larinari 2015.12.16 21:17 신고

      그렇죠? 온유와 둥이들도 많이 컸겠네요.
      명절에 안 모이니 얼굴 볼 일이 없네요.

 

 

 

# 1

조수석에 앉아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입으로 오디오 지원하면서 작성하는 중.

'저는 가는 날에는 셔틀 타지 못하구요,

다음 날 엄마랑 같이.....같이..... 구개음화....'

뭐라고? 지금 뭐라는 거야?

으흐흐흐. 들었어? 아, 이번 국어 시험범위였는데 '같이'는 '구개음화'야.

엄마 시험공부한 게 자꾸 너무 많이 생각이 나.

내가 공부해보니까 말야 티브이 예능 자막에도 철자법 틀린 게 많이 나온다.

저번 주 런닝맨에서 말야...... 피동사에....ㅏㅏㅠㅂㅓㅜㅛ=#$.......이렇더라.

참, 사람들이 무식해.

 

#2

한강에서 자전거 타다 넘어진 상처가 빠르게 나아간다.

드레싱 밴드도 떼고 아물어가는 손바닥의 상처를 보고는 채윤이가 반색을 한다.

엄마 손 많이 나았네.

다행이다. 빨리 나아서..... 체세포 분열....

엄마 이렇게 상처가 낫는 건 엄마 몸에서 체세포 분열이 계속 일어나고 있긴 때문이야.

우힛, 과학 시험범위야.

아흐, 나 진짜 유식하지?

 

 

#3

엄마, 나 이번에 이차함수부터 진짜 수학이 좋아졌어.

풀면 딱 정답이 나오는 게 너무 시원하고 좋아.

심지어 시험 끝났는데도 수학 문제 풀면서 놀까? 이런 생각이 난다니까.

아, 나 수학 좋아!

 

 

==============

 

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을 떼는 것은 이제 선행학습 축에도 못 드는 것 같지만.

'이제'가 아니라 채윤이가 초등학교 가던 그 시절에도 그랬지만.

꿋꿋하게 교육에 관한 순결을 지켜 '까막눈'인 채로 아이를 공교육에 보냈었다.

그땐 소신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잘한 짓인가 싶을 때가 있다.

글자를 배우는 것은 '준비가 되었을 때, 자발적인 동력에 의해' 시작되어야 한다는 소신이고.

최초의 공부가 글자공부일 텐데 첫 경험이 즐거워야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될 거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그게 내 각본대로 되지 않았던 것.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어마무시하게 어려운 받아쓰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가갸거겨 하던 채윤이가 '닮았습니다. 싫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이런 단어를 써야했다!!!! 

받아쓰기 봐주던 그 1년은 내 생애 통틀어 가장 고래고래, 열폭했던 나날이었다.

(채윤아, 미안해)

일부러 한글 가르칠 필요 없다. 다 때 되면 터득한다. 즐겁게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자신감 넘치는 조언을 이제는 하지 못한다. ㅠㅠㅠㅠ

 

그러나 내 인생도 길고 채윤이 인생도 길어서 말이다.

초등학교 1년이 끝은 아니었다.

비록 까막눈으로 시작한 공교육인 데다

태생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인 데다

주입식 교육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는 상태로 시작한 터라

(공부 머리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긴 고통의 나날은 있었지만 공교육에 한 8년 정도 찌들더니 의외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험공부를 힘들어하면서도 즐거워한다는 것.

즐겁게 하는 공부 중에 침잠하는 것들이 있어서 조금씩 유식해진다는 것.

이렇게 한 8년 지내면 완전 공부 잘하는 애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 

 

 

 

  1. BlogIcon 새실 2015.07.27 15:17

    언니
    채윤이는 참 채윤답게 사랑스러워요.
    아.이모가 무쟈게 애정해요-♡
    추신/잠깐 보이는 채윤이 손가락이 참 예쁘네요♡

    • BlogIcon larinari 2015.08.02 00:01 신고

      아이의 그 아이다움을 있는 그대로 예뻐하는 것도
      때론 엄청난 내적투쟁이 필요하단 걸 갈수록 뼈아프게 배우게 될 거야. ㅠㅠㅠㅠ
      아, 준비된 엄마는 다르겠다! ^^
      암튼 난 채윤이와 함께 자라가는 엄마라니까.
      채윤이의 채윤이다움을 함께 예뻐해주는 이모, 고마워요!

  2. 신의피리 2015.07.29 09:16

    우와~ 내가 밖에 있는 동안 집안에서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구나!

    • BlogIcon larinari 2015.08.02 00:04 신고

      그러니 밖에만 있지 말고 가정에도 좀 돌아오고 그러슈.
      정신 말이유.

  3. BlogIcon 효정 2015.07.29 19:17

    우와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읽으면서 빨간 글씨에서 빵빵 터졌어요. 똑똑한 채윤이

 

 

 

전날 실기시험을 치루느라 기진녹진(기진맥진하여 녹초가 된 상태)한 채윤이.

다행히 실기시험 기간이라 하루 쉬게 되었습니다.

아침 먹고 두 남자들 나간 후에 설거지 마치고 조용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햇살이 만든 한 평짜리 방에 채윤이가 앉아 있습니다.

뭘 하나? 봤더니 화분들 아래 놓인 실바니안 패밀리를 꺼내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한때, 채윤이가 놀짱이었던 그 시절의 무수한 이야기를 간직한 토끼 패밀리입니다.

엄마가 주시하는 걸 알고는 깜짝 놀라 "노는 거 아냐. 정리하는 거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새 한 뼘 햇살로 만든 방도 사라지고

채윤이도 사라졌습니다.

실기시험 전날에 채윤이는 학교 수업 마치고 오후 3시에 연습실에 들어갔습니다.

밤 10시가 되어 태우러 갔더니 조수석에 쓰러지듯 몸을 던지며 "배고프다" 합니다.

저녁 안 먹었냐 물으니 시간이 없어서 못 먹었답니다.

3시부터 10시까지 무려 7시간 밥도 안 먹고 연습했다는 얘깁니다.

아, 채윤이 아빠 딸이었군요.

7시간 동안 밥을 잊고 뭔가에 열중하는 것? 글쎄요. 엄마로서는 상상이 안 됩니다.

그렇게 하고 싶던 신학공부 하던 시절, 채윤이 아빠는

8시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도서관에서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드랬었드랬지요.

채윤이에게도 아빠 피가 흐르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연습을 했으면 실기시험을 엄청 잘 봐서 피아노를 들었다 놨다 했어야 할텐데

베토벤을 칠 때 왼손을 여러 번 틀렸다며 속상해 합니다.

성적도 그닥 잘 나오진 않을 것입니다.

실바니안 패밀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그 다양하고, 당차고, 끝간 데 없는 상상력으로 다채롭던 표정을요.

자기들을 쥐락펴락 하던 시절 채윤이의 표정을요.

그때 그 채윤이, 잃어버린 채윤이 표정을 찾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강의 후 포럼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연호 대표 바로 옆에 패널로 앉아 있었다는 걸 자랑하려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아, 저 진짜 채윤이 진로 때문에 심각하다구요.

잃어버린 채윤이 표정을 찾아야 합니다!

네네, 물론 보시다시피 자리배치 끝내줬습니다.

무대 전면이 궁금하시다면 뭐 보여드리죠.

 

 

 

 

청중으로 와 있던 남편에게 사진 좀 제대로 찍어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건만.

엉망으로 찍어놨더군요.다행히 또 다른 지인이 사심없이 찍은 사진이 있었습니다.

세계 행복지수 1위 국가인 덴마크를 1년 6개월 취재했던 오연호 대표는 여러 번 말했습니다.

'사진 보세요. 애들이 표정이 좋아요'

'표정이 좋아요'

좋은 표정이 보이는 이유가 있더군요.

쾌활 명랑 엉뚱 당당하던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서 말이 없어지고,

표정이 없어지고,

하는 말이라고는 '아무거나요'로 변하는 것을 아프게 지켜봤던 거지요.

그분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채윤이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처럼 빛나던 우리 아이들의 표정이 어쩌다 그렇게 썩었을까요?

잃어버린 그 표정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찾을 수 있을런진 모르겠지만

뭔가 꿈틀거려야겠다는 뜻은 분명해졌습니다.

채윤이 표정이 이대로 계속 썩어가도록 두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뭐든 해야겠지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거 사진 자랑 아닙니다.

저 대한민국 청소년의 엄마로서 완전 진지합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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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민맘 2015.06.25 18:19

    그 책..'우리도..'일주일째 아주 정독하고 있는 중...
    민이도 이제 시험모드 가동 중..
    책을 읽으니 더 안 행복해...ㅠㅜ

    여름에 챈이랑 기차여행,둘이 한번 와.
    챈이가 더 시간 안되긴하겠다. 입시땜에..

    • BlogIcon larinari 2015.06.30 00:11 신고

      그렇지? ㅎㅎㅎㅎ
      책 읽다가 나도 더 우울해졌다니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행복할 수 없슴!!! 이러면서.

      직접 강연을 들으니 마음이 움직이더라.
      그야말로 마음에서 뭐가 꿈틀꿈틀 하더라고.
      패널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어.
      마이크가 한 번 밖에 오지 않았는데....
      마이크가 다시 오면 실은 민이 고등학교에 관한 너의 고민과 결정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었어.
      결국 아이와 엄마가 함께 편안하고 행복한 길이 있더라고 말이지. ^^

      민이도 챈이도 행복할 수 있을겨.

  2. 2015.06.25 21:5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06.30 00:13 신고

      우리 현승이도 가끔 수영장 갈 때
      충분히 놀지 못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셔틀 탈 때가 있어요.
      속으로 엄마를 엄청 원망했겠죠. ㅋㅋㅋㅋ
      수영장 가서 선생님께 엄마 디스하진 않았으려나?

      잘 지내죠?

  3. 효정 2015.06.26 19:35

    우와 오연호님의 옆자리에 앉으셨군요. 저의 위시리스트 중 하나인데 ! 채윤이가 힘들었겠네요

    • BlogIcon larinari 2015.06.30 00:14 신고

      엄청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너무 좋아서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까불었다가 남편에게 한 소리 들었고...^^

      채윤이도 채윤이고 이 땅의 중, 고딩들(뿐일까만은) 너무들 힘겹게 살고 있어서 안쓰럽죠.

  4. 2015.10.29 11:4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0.30 13:58 신고

      첫 댓글 고맙습니다.^^
      여전히 진행형의 짠함이죠.
      채윤이가 채윤이답게 깔깔거리던 시절을 자주 떠올리는데요.
      그렇게 지나간 아이의 어린시절은 우리 모두의 지나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와 아쉬움 같기도 하구요.

      오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네요.
      좋은 가을날 보내세요. ^^

 

 

 

 

 

엄마, 나 다음에 학교 가방 살 때는 영어 많이 써있는 어떤 가방 사 줘.

뭔지 알아? 가방에 마~악 영어가 써 있는데. MGM, MGM, MGM...... 이렇게.

 

(풉, 또 시작이다. 우리 중딩의 반지성주의 운동) MCM 아냐?

 

그른가?

암튼 그렇게 막 써 있는 거. 우리 학교 애들 그 가방 디게 많이 갖고 다녀.

예뻐. 나도 다음번엔 그거 사 줘.

 

뤼얼리? 중딩들이 그걸 매고 다녀?

그거 비싼데. 엄청 비쌀 텐데....

 

그럼 못 사 줘?

 

아니.

 

(오예)사 줘?

 

아니.

 

못 안 사 줘.

 

아~ 알겠어!

 

 

(중학교에 흔한 가방이 저 수준이라니. 이느무 학교를 때려쳐야 하나?)

(채윤이가 잘못 본 게 아니라 MCM을 갖고 싶었지만 아쉬운대로 MGM이라도 매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던 걸까? 그 친구 만나면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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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anry 2015.05.21 00:18

    Amazon 에서 40 불 정도면 사겠던데요... 하나 사주세요~~

    • BlogIcon larinari 2015.05.22 11:18 신고

      여기 쇼핑몰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군요.
      이 날 이렇게 한 번 던지고 아이는 잊었습니다. ^^

  2. BlogIcon 털보 2015.05.21 10:37

    위의 가방 가격을 알려주면 본인이 먼저 기절한다에 5백원 걸어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05.22 11:20 신고

      500원 드릴게요! ^^
      같이 검색해서 가격을 보더니
      '이런 거였어? 이거 명품 가방인 거야? 나는 애들이 많이 들고 다녀서 싼 건 줄 알았어' 그리곤 기절을 했습니다. ㅋㅋㅋ

 

 

 

자고 일어나서 기억나는 꿈을 기록하고, 고요한 시간에 꿈의 영상을 리플레이 해보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는 것. 꿈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이 참 좋다. '꿈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하찮은 것을 귀하게 바라보는 눈,  스쳐지날 것을 응시하는 눈을 뜨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던지는 볼멘소리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강변 마른 풀들 사이 삐져나온 손톱보다 작은 들풀에서 그 나라의 생명을 보는 것에 견줄 수 있다. 아이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쪼르르 식탁으로 달려와 '엄마, 나 꿈꿨어. 무슨 뜻일까?' 자주 묻는다. 엄마가 꿈해몽 점쟁이냐? 무슨 뜻인지 알게? 아이들의 꿈을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악몽을 꾸더라도 꿈일 뿐이니 다행이고, 기분 좋은 꿈을 꾸면 기분이 좋으니까 좋고!  

 

굳이 꿈분석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꿈을 가지고 이야기 하다 보면 어느새 치유, 어느새 자기 성찰, 어느새 소망의 의자에 앉아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엊그제 주일 아침에 그랬다. 채윤이가 꿈을 꿨다면서 내 침대로 와 턱 걸터 앉아 쫑알거렸다.  

 

* 채윤이의 꿈

 

친구들이 나를 버리고 갔어. 학교 친구들인데. 한영교회 동산에 날 버리고  간 거야.
나는 동산에 혼자 남아 있어. 혼자 남아서 '어, 이건 뭐지?' 하고 있는 거야. 끝.

이 꿈은 내 꿈이 아니라 채윤이 꿈이다. 그러나 내가 그 꿈을 꾼 것처럼 진지하게 듣는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묻는다. 친구들이 왜 버리고 갔어? 따돌림당한 거야?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나를 혼자 두고 간 거야. 동산에 혼자 있는 느낌이 어땠어? - 슬프거나 그렇진 않고 그냥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러고 있었어. 채윤이게 있어 학교 친구들은  어떤 친구일까? 채윤이에게 한영교회 동산은 어떤 곳일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여 한참 얘기를 나눴는데..... 들어보시라. 결론은 꿈보다 해몽!이다.

* 학교 친구들

 

채윤이가 얘기하는 학교 친구들이란 이렇다. 예술 중학교라는 특성 때문에 너무 서로들 경쟁적인 관계라서 친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단다. 실기 성적으로 줄을 세워서 그 잣대로만 친구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마음을 터놓을 수가 없다. 학교 다니면서 자주 채윤이가 말했었다. '엄마, 학교 친구들은 친구라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아.' 얼마 전에는 그런 말을 했었다.  '엄마 나 정말 예고 정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이 얘기 해주면 엄마도 놀랄걸.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써냈는데 피아노과 친구들 장래희망이 다 똑같애. 완전 대박이야. 나 빼고 모두 똑같애. 뭔 줄 알아?  모두 교수야. 그것도 서울대 교수. 대박이지?' 그 사이에서 채윤이가 항상 고립감을 느낀다는 걸 알고 있다. 여러 환경이 채윤이와 다를 뿐 아니라 음악, 학업을 하는 방식도 다르다. 게다가 채윤이는 학교의 잣대로 보면 늘 자신을 부족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채윤이에게 성적과 상관없이 채윤이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그렇게 줄 세우는 방식이 얼마나 악마적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가정교육이라면 가정교육이었다.

 

* 한영교회 동산  

 

한영교회 동산은 채윤이가 5학년 때까지 다녔던 한영교회, 즉 한영고등학교 안에 있는 동산이다. 한영 동산은 채윤이에게 이런 곳이란다. 어렸을 때 재밌게 놀던 곳, 눈치 안 보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놀던 곳. 너무너무 재밌었던 곳, 도심 속에 어울리지 않는 동산. 참 좋은 곳.
그리고 한영교회는 채윤이에게 이런 곳이다. 늘 그리운 곳, 모든 사람이 나를 알아 주고 예뻐해 주던 곳. 이곳 교회에 와서 1년이 넘도록 '왜 아빠는 교회를 옮긴 거야? 이 교회에는 친구가 없고 아는 사람이 없어. 그리고 재미도 없어. 나 엄마랑 어른 예배드리면 안돼?' 하며 긴 적응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했다. 

 

 * 꿈이 건넨 이야기

 

3학년이 되어 입시준비며 부담이 많은 채윤이의 의식세계를 '학교 친구들' 이란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친구들이 있는 학교로부터 떨어져나오고 싶은 바램도 간절하고  친구들이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지 않는 것이 두렵고, 그러다 왕따가 될까 봐 늘 노심초사이다. 무리에 섞이고 싶고 홀로이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꿈이 아닐까.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는 채윤이가 이런 지점에서 많이 힘든가 보다.

 

그 친구들이 버려놓고 갔다고 하는 동산. 그 동상은 놀짱 채윤이가 자기답게 자유롭게 놀던 곳이다. 저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까지 끌고 다니면서 극 놀이를 하고 신났던 곳. 이기고 지고, 줄을 세우는 경쟁구도가 없는 곳이 채윤이 마음 속 한영동산이다. 다시 가서 뛰놀고 싶은 동산. 그것을 채윤이는 '도심 속의 동산'이라고 표현했다. 동산은 채윤이가 그리워하는 물리적인 공간으로서 한영동산이기도 하지만 그 존재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 어떤 곳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채윤이에게 찬송가 한 장을 불러주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채윤아, 이슬이 맺혀 있는 장미가 있는 곳이 어디게? 그래, 동산! 동산은 채윤이가 말한 진짜 신나게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곳이고, 어릴 적에 너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에게 사랑받던 그런 곳이야. 엄마에게 동산은 저 찬송 가사처럼 아주 조용히 예수님 만나는 곳이다. 채윤이에게 자유, 즐거움, 사랑받음으로 기억되는 동산이 엄마가 조용히 기도하면 예수님 만날 때의 느낌과 같아.
꿈은 채윤이가 입시를 앞둔 학교생활에서 잘 못 섞이는 것 같아 힘들고, 떨어져 나오고 싶은 마음도 보여주고, 떨어져 나와서 가고 싶은 곳도 보여주네. 그런데 그건 지금 명일동에 있는 한영교회 동산만은 아닐 거야. 이미 채윤이 마음속에 있는 동산이야. 채윤이가 그때 받은 사랑과 그때 신나가 놀았던 기억이 채윤이 마음에 그대로 있거든. 그게 채윤이 마음의 동산이지. 그러니까 지금 언제든지 그 기억을 꺼내보고 기억 속에서 다시 힘을 얻을 수도 있는 거야.

 

아까 불러준 찬송 중에 엄마는 4절을 디게 좋아한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채윤이 주일날 중등부 가서 반주하고 찬양하고 예배 드리는 거 참 좋잖아. 일주일이 늘 그랬으면 좋겠지? 그런데 예수님은 학교로 가고 집으로 가래. 동산에서 얻은 쉼과 자유를 가지고 가래. 가서 채윤이 할 일이 있대. 할 일은, 학교에서도 기죽지 않고 채윤이 답게 즐겁게 자유롭게 지내는 일일 거야. 그런데 채윤이 혼자 가라는 게 아니라 이미 채윤이 마음의 동산에 예수님이 사시는걸.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라잖아. 참 좋은 꿈이다. 채윤이 마음의 동산에 살고 계신 예수님의 편지 같다.

주거니 받거니 나눈 긴 얘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어느 대목에선 채윤이 눈에 눈물이 비치고 나 역시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일어나자마자 잠옷 입고 침대 누워서 다정하게 편지 한 장을 함께 읽은 느낌이었다. 채윤이 편지에 내게 보내신 메시지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이제 난 채윤이 마음 말고 내 마음의 동산으로 그분 만나러 간다.  

 

* 그림은 고혜경 저 <나의 꿈 사용법> 안에 있는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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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의피리 2015.03.19 10:56

    사춘기를 지나는 채윤이를 볼 때마다, 어렸을 때의 채윤이와는 전혀 다른 아이처럼 여겨졌는데,
    이 글을 보니, 그 때 채윤이와 지금 채윤이가 완전히 포개지네.
    이쁜 우리 딸.

    • BlogIcon larinari 2015.03.19 22:03 신고

      동산에서 뛰어다녀야 할 아인데.....
      성장하는 이 시기를 지내면서 채윤이가 자기다움을 다시 찾아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랄 뿐. 기도할 뿐.

  2. BlogIcon 은주 2015.03.23 08:56

    좋은 엄마랑 살고 있는 채윤이가 부럽네요^^

    • BlogIcon larinari 2015.03.23 10:19 신고

      늘 강조하는 바이지만, 글로 보는 엄마는 뽀샵된 엄마임.^^
      여하튼 아이들하고도 꿈을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감사해.

 

 

 

한 달 넘게 밤 10 시까지 연습하고 집에 오면 픽 쓰러져 자고, 아침 6시 30분이면 일어나서 세월아 네월아 머리 단장을 하고 등교. 다시 밤 10시 귀가. 이런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실기시험 하루 전 날입니다. 음악 시키는 어떤 엄마들은 등교는 물론이고 레슨실, 연습실까지 다 따라다니면서 로드 매니저 한다는데. 채윤인 '엄마, 미안한데 오늘 혹시 데리러 올 수 있어?' '고마워, 엄마 올 때까지 정말 집중해서 연습할게' 이렇게 비굴모드로 매니저를 부리고 있습니다. 따까리 정신 부족한 고자세 엄마를 만난 탓입니다. 오늘은 아빠 김기사가 뫼시러 갔다가 스튜디오까지 올라가 기다리며 연습하는 걸 찍어왔습니다. 문득, 4학년 말에 지금 선생님을 처음 만나고 있었던 '스튜어디스-스튜디오'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때 만난 선생님과 참 좋은 인연이 되어 피아노 전공을 결심했었습니다. 훌쩍 자란 중학생 채윤이가 그때 그 스튜어디스 아니 스튜디오에서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추억은 방울방울, 다시 보는 그 이야기입니다.

 

 

*********************

 

채윤 : 아빠, 아빠. 우리 피아노 선생님 스튜어 갖고 있대.
아빠 : 뭐?
채윤 : 우리 피아노 선생님 말이야...
스튜어디스 갖고 있대.
아빠 : 뭐래애?
채윤 : 아, 진짜. 새로 바뀐 피아노 선생님 말야.
스.튜.어.디.스.를 갖고 있다고...오.

 

아빠 : (엄마한테) 뭐래는 거야?
엄마 : 나도 한참 헤맸어. 어, 니네 선생님 피아노 전공 하셨는데 무슨 소리야.  예전에

         스튜어디스 하셨다고? 했더니 아니래. 예전이 아니고 지금 이래는 거야. 얘가

         뭐라는 거야? 지금 스튜어디스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했더니, 하이튼 그건 잘

         모르겠는데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근처 에 있대. 거기서 레슨 하신대. 

         뭔 말인지 알겠지?
아빠 : BBang!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빠 : (서로 복화술로) 스.튜.디.오.
엄마 아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습 안 되고 계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윤 : 왜 웃어. 둘이... 그만 웃어.
현승 : 어? 그게 무슨 말인데... 나도 가르쳐 줘. 스튜어디스가 뭔데?
엄마, 아빠 : (진정 안되고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승 : 누나, 무슨 말이야. 스튜어디스가 뭐야?
(엄마빠, 배경음으로 계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윤 : (무식해서 완전 짜증난다는듯) 승무원.
엄마, 아빠 : BBang!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승 : 그런데 선생님이 승무원을 왜 갖고 있어? 누나.
(엄마빠, 배경음 계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윤 : 아, 나도 몰라.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어. 왜 나한테 그래애!
엄마, 아빠 : (언어를 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태 진정 후에.

채윤 : (시크하게, 이 사태에 관해서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
         엄마, 좋아 죽겠지? 블로그에 포스팅 할 거 생겼지?
엄마 : (깜놀, 머릿 속으로 포스팅 긱본 짜면서 헤죽헤죽 하고 있었뜸)


 http://larinari.tistory.com/1330

 

(원글은 ↑ 여긴데, 밑에 달린 댓글이 정말 추억은 방울방울이네.

센스쟁이 챙이랑 챈이 어록으로 주고받은 댓글 하며,

세상 좁다! 확인하며 어머어머 했던 일.

그렇게 만난 선생님과 이렇게 좋은 인연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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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rest 2014.12.09 11:17

    예전 포스팅 글보니 정말로 추억이 아롱지고 다롱지는구나. ^^
    댓글의 향연은 이제는 뭔 추억인 듯.

    그나저나 챙의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니 다 큰듯.^^

    • BlogIcon larinari 2014.12.11 23:40 신고

      그때 참 좋았는데요.
      블로그 댓글놀이,
      트위터에서 농담 따먹기 릴레이.ㅎㅎㅎㅎ
      참 좋았던 명일동 시절.

      챙이는 진짜로 다 커서 지금 직장 다니고 있고요.
      챈이는 다 큰 챙이보다 키가 크고,
      다 크진 않았지만 피아노를 치고 있지요. ㅋㅋㅋㅋ

  2. BlogIcon 뮨진 2014.12.12 01:49

    채윤이 넘 멋지당. 나도 연습 마니해서 수업천재 해야할텐데, 쩝!

    • BlogIcon larinari 2014.12.17 09:08 신고

      수업은 연습보단 사랑과 지혜로 하면 된다는 생각. ^^

  3. BlogIcon 털보 2014.12.17 20:00

    와, 엄청나요. 피아노 모르는 사람도 감동이 되요. ^^

    • BlogIcon larinari 2014.12.17 20:10 신고

      댓글을 어쩌면 이렇게 적시에 달아주셨어요! ^^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잘 치는 채윤이가 실기성적표를 받아와서는 풀이 잔뜩 죽어 있어요. ㅜㅜ 털보 아저씨의 살아있는 평을 전할게요! ^^

  4. 2014.12.25 23:4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12.26 19:36 신고

      일찍이 스스로 결정을 하고 이 어려운 길로 접어 들었어요.^^
      그나저니 내가 좋아하는 노란 이 꽃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5. BlogIcon 예지쌤 2016.03.25 21:16

    오 채윤이 피아노 치는거 첨 봐요. 완전 멋있다아~~~~ 그 와중에 창밖 찍는 엄마 ㅋㅋㅋㅋ 빵터졌어요.

    • BlogIcon larinari 2016.03.26 13:03 신고

      그 와중에 창밖을 찍은 사람은 아빠였음묘. ㅋㅋㅋ

 

 

 

엄마, 나 오늘 급식시간에 또 완전 짜증났어.

아, 또 부정적인 얘기라서 미안한데, 들어줘. 진짜 짜증나서 그래.

**가 또 그러는 거야.

오늘 해물이 나왔거든.

'어우, 징그러. 이게 뭐야. 이걸 어떻게 먹어' 하면서 치우는 거야.

그리고 내가 먹으니까 완전 이러고, 이러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봐.

그러면서 큰 소리로 어우, 야~ 그걸 어떻게 먹어? 우웩. 막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주변에 있던 애들이 다 나를 이상한 애 보듯 쳐다봐.

매일 이런 식이야.

나 진짜 오늘은 너무 열받아서 먹다가 그냥 딱 내려놨어.

솔직히 나랑 같이 다니는 애들이 못 먹는 게 많아서 내가 좋긴 좋거든.

급식 시간에 거의 다 내가 먹어줘야 해.

나는 좋지.(살짝 입가에 미소 스침.ㅋㅋ)

그런데 내가 먹으면 무슨 짐승 보듯 나를 보면서 그래.

 

진짜,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아직까지 열이 식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먹다가 딱 내려놓았던, 그리하여 남기고 온 해물들이 눈에 어른거려서일 것이다. 아마도)

 

쫌 심하다. 그냥 개무시하고 맛있게 먹어.

채윤이 니 매력이잖아. 신경 쓰지 마.

'야, 이거 맛있어. 그리고 나는 10 개월에 풋고추를 먹은 애야.

그리고 다섯 살부터 산낙지를 먹었어. 난 그런 애야' 하고 더 맛있게 먹어버려.

 

엄마, 내가 산낙지 먹었다고 하니까 애들이 막 소리 질렀어.

나는 먹는 걸 싫어하는 애들이 정말 이해가 안 돼.

그런데 엄마, 우리 곱창 한 번만 먹으면 안 돼?

나 소금구이 곱창 너무너무 먹고싶어.

접때 내가 전단지 가져온 거 어딨어?

(하교길에 곱창집 전단지를 주워서 들고 왔었음. ㅋㅋㅋㅋ)

거기서 한 번만 시켜줘.

 

(그리하여 곱창구이를 앞에 놓고 행복해서 시키는 표정 다하는 여중생 채윤이.

아흐, 간만에 귀여워. 아주 그냥 매덩!)

 

변진섭이 부릅니다. '희망사항'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

곱창구이를 좋아하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 그림은 미술숙제로 그린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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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우 2014.11.10 18:19

    매덩 인정!!! 뭐든지 막막막 맛있게 먹는 당신, 이쁘고 이쁘고 또 이쁘다.

    • BlogIcon larinari 2014.11.15 23:41 신고

      이 아이가 좋아하는 것.
      곱창, 순대, 선지국, 산낙지, 회.....
      확실히 매덩이지?ㅎㅎㅎ

  2. 2014.11.12 16:15

    역시 챈!! 저도 지금 뭔가 먹고 싶은게 떠오르면 당장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ㅋ
    (임신안했을때도..ㅋㅋ)
    저희가 요즘 하남에 일주일에 두번인가 오는 야채곱창볶음 하는 트럭을 발견해서 일주일에 꼭 한번은 가서 포장해다가 먹는데 챈이랑 같이 먹고 싶네용 ㅋ 매콤해서 애기 나오면 못 먹는거라 지금 열심히 먹어두려고요 ㅎㅎ

    • BlogIcon larinari 2014.11.16 16:58 신고

      챈이랑 윰언니랑 비슷한 점 진짜 많음.
      머리 스타일까지 비슷해가지구. ㅎㅎ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지금은 일단 매운 곱창으로 먹어두고,
      출산 후엔 소금구이 곱창 먹으면 돼. ㅎㅎㅎ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오늘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자러 가기 직전의 현승이가

엄마, 발 들어봐 하더니,

발밑에 무릎담요를 깔아준다.

그리고 말을 만지작 만지작하면서

발마사지야.

 

이 말에 내일 수행평가를 위해 독후감을 쓰던 채윤이가

버러러러러러럭!

 

야! 끼 좀 부리지 마. 너 땜에 난 매일매일 화가 나.

끼 좀 부리지 마. 너 땜에 난 매일매일 화가 나.

 

즉흥 랩을 막 하기에,

와! 우리 영 아티스트, 빡침을 예술로 승화시키는구나, 했더니

이런 노래가 원래 있단다.

 

"난 정말 쟤 저러는 게 너무 얄미워. 괜히 쟤 때문에 내가 더 이상한 애가 돼.

아흐..... 증말. 김현승. 너 자꾸 엄마 앞에서 끼 부리지 마라!"

 

인정.

동생이 이래서 멀쩡한 누나 무심하고 인정머리 없는 애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승이는 여전히 만지작만지작 하면서

"내가 좋은 걸 해주는 거야. 나 소파에 앉아 있을 때 바닥에 그냥 발 대면 싫어.

너무 차거워서. 그래서 담요 대준 거고.

엄마가 나 재워줄 때 발 만져주면 정말 기분 좋아.

그래서 엄마 발 만져주는 거야. 어휴, 왜 이렇게 굳은살이 많아?"

 

다시 한 번 빡친 누나.

 

끼 좀 부리지 마. 너 땜에 난 매일매일 화가 나.

끼 좀 부리지 마. 너 땜에 난 매일매일 화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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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y 2014.11.07 10:57

    ㅍㅎㅎ 낯설지 않은 광경
    울아들 이 사진 보여주니 하는 말, "그건 기본 아니야?"
    끼가 아니라네 헤헤.

  2. 신의피리 2014.11.07 11:30

    내 발도 좀 해주지

  3. 2014.11.08 09:17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11.09 11:19 신고

      그런 식의 짜증과 구박을 많이 받은 터라.
      서로 왕무시 하시죠.ㅎㅎㅎ

 

 

 

 

아우, 귀여워서 돌아버리겠어.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고 빨고 쪽쪽쪽쪽)

행복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이 충만한 느낌.

 

엄마 되기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채윤 현승 어렸을 때 빠져들곤 했던 감정이다.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날 행복하게 한 것으로 너는 내게 최고의 선물을 줬다.

네가 먼훗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사춘기가 되어

내 앞에서 눈알을 굴리며 흰자위를 번득거린다해도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서 '재수없어' 외친다해도

오늘 이 충만감을 떠올리며 이미 네게 받은 선물로 인해 감사하리라.

 

라고 다짐도 했었다.

 

예를들면, 이런 순간.

아침에 옹알거리는 소리는 눈을 뜬다.

동쪽으로 난 창이 있는 침실에 햇살이 가득 들어차 있다.

옆에 아기 침대. 돌이 안 된 채윤이가 난간을 붙들고 서 있다.

보송보송, 부숭부숭한 얼굴로 우리 침대 쪽을 바라보면서 

엄므.... 엄므....... 아르르르르........

엄마, 나 일어났어요. 엄마도 일어나세요.

영락없는 그 소리였다.

알람이 필요없었다. 

내 평생 그렇게 행복한 아침이 없었다.

 

 

그리고 1년 쯤 지난 어느 토요일 아침.

새로 이사한 집에선 도통 해가 들지 않아서 아침도 아침같지 않다.

토요일 늦잠을 자고 있으면 먼저 일어난 채윤이가 노래를 하고,

엄마 콧구멍을 쑤시다가 배를 타고 넘어 아빠 콧구멍을 쑤시러 가고,

뒹굴뒹굴 놀고 또 논다.

혼자 놀기 한계에 다다랐을 때 엄마를 흔들어 깨우면서,

엄마, 배보카. 쮸쮸 주에요.

아흐, 배보카!!! 이건 배고픈 것보다 천 배 만 배가 귀여운 배고픔이다.

 

 

그리고 13,4년이 지난 토요일 아침.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 중인 채윤이가 금요일 저녁에 생각보다 일찍 자려고 한다.

내일 어차피 늦잠 잘건데 공부를 좀 더 하고 자지 그래?

아냐, 나 시험기간이라서 내일은 늦잠 안 잘 거야.

하더니 토요일 아침 식구들 식사를 다 마친 시간,

평소 토요일과 다름없는 시간에 뻔뻔하게 일어나서 '배고파'한다.

그리고  엄마보다 더 큰 손으로 식빵에 쨈 발라서 처묵처묵.

 

 

냐하하하하하하........

그래, 엄마가 이날을 위해서 13,4 년 전에 해놓은 다짐이 있어.

배고프지? 어서 무라. 많이 무라.

그래야 또 배불러서 시험공부 하다가 졸립고, 졸음 깨려고 나와서 돌아댕기지.

배보카, 배보카, 귀여웠던 채윤아!!!

엄만 이미 네게 받은 선물의 기억이 있으니까.

냐하하하하하하.......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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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y 2014.10.25 11:21

    이건 뭘까요? 제목도 암호고 말이지..

    • BlogIcon larinari 2014.10.26 10:37 신고

      그러니까 이런 사연이었었는데요.
      사진만 올리고 글은 쓰지 못한 채로 '공개'해서 걸어놨던 거죠.^^
      그날 이후 무탈하시죠? 헤헤.

    • mary 2014.10.27 08:20

      그 암호가 그런 행복한 암호였어.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행복감을 줄 것이여.
      우리집에 있는 귀한 꿀물 한잔 하면서 돌리고 싶어라고..

    • BlogIcon larinari 2014.10.29 00:07 신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 키워내 홀가분하신 모습 지켜보면서
      새로운 시기의 새로운 행복을 기대해보게 됩니다.

  2. BlogIcon 털보 2014.10.27 10:01

    일본가면 얼굴보기도 힘든데.. 무슨 짓을 해도 다 예쁘게 봐줄 수 있어. 그럼, 그럼. 한계는 두 달. 다행이 한계점 일보 직전에 떠난다는. ㅋㅋ

    • BlogIcon larinari 2014.10.29 00:08 신고

      거, 좋으네요.
      같이 살고 있으니 주말 이틀이 한계점인데요.
      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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