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이 이야기480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좋은 계절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시간이다. 무조건 나가서 걸어야 한다. 곧 장마가 오고, 날이 더워질 것이다. 걷기 어려운 시간이 온다. 오늘은 놓치지 않았다. 탈고와 송고는 구원이다. 탈고 후 송고의 엔터를 치고 나면 세상이 온통 아름다워진다. 누구라도 만나면 얼싸안고 사랑을 고백할 마음이 된다. 아침에 원고를 보내고 셋이서 연휴의 끝을 잡았다. 슬슬 눈치 보며 둘이서 영화를 보고, 장을 보고, 숨소리를 낮추던 부녀와 함께 해방을 선포하고 놀았다! 걸었다! 집에서 가까운 숲길을 찾았더니 "태교의 숲"이다. 엄마 왜 이리 작아? 쪼꼬미, 쪼꼬미! 이렇게 불러도 너는 나한테서 나왔는 걸! 키도 마음도 존재의 크기도 엄마보다 한참 크지만... 그래도 너 이 작은 몸에서 나왔는 걸! 우리 채윤이 태명이.. 2025. 5. 6.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우리 채윤이가 스물네 살 청년이라니, 매일 마주하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 청년의 힘과 성장하는 에너지, 푸르른 생기와 함께 살면서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채윤이 태명이 "푸름이"였다. 지난 토요일에 함께 영화 를 보고 밥을 먹으면서 이 영화와, 전신인 뮤지컬, 또 그 전신인 까지 세계관과 음악 이야기를 끝없이 쏟아내는 채윤일 보고 내가 탄성을 질렀다. 오늘 아침에는 영화에서 들었던, 음악을 자기 빛깔로 연주하고 녹음해서 바로 들여주었다. "주님, 과연 이 아이를 제가 낳았단 말입니까!" 과장이 아니다. 내가 낳았지만, 이 아이 존재의 크기와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없다. 한 마디로 너무나 마음에 드는 청년이다. 동생 군대 보내고 외동 체험 중인 덕에 한 달을 생일 축하로 지냈다. 유학을 .. 2024. 12. 2. 누가 누굴 귀여움, 누가 누굴 걱정 안식월 중 한 달 제주에서 지내는 남편에게 다녀왔다. 애월의 어느 편집샵에 들어가 구경을 하다 둘이 함께 "김채윤!" 했다. 우리 채윤이 닮은 브로치, 그리고 약간 현승이 같은 강아지...를 선물로 사 왔다. 아우, 귀여워... 이것들... 김채윤, 김현승! (마음이 간질간질) 받아 든 스물다섯 채윤이는 "인정이 되네. 내가 봐도 나네. 그런데 어디서들 이런 걸 잘도 골라 와?" 하면서 되려 엄마 아빠를 귀여워했다. 누가 누굴 귀여워 하는 거? 자주 집을 비우고, 주일에는 남매끼리 교회에 가는데. 목사 아빠 둔 죄로 "내 교회" 아닌 "아빠 교회" 다니게 하는 것이 늘 미안한 일이다. 아빠 때문에 다니는 교회인데, 아빠 없이 둘이 가서 있다 오는 생각을 하면 주일마다 마음이 찌릿하다. 우리와의 인연으로 .. 2024. 4. 9. 나마스떼 🙏 집에 가면 김치찌개가 끓여져 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돌아온다. 긴 여행을 떠났다 집에 왔을 때, 김치찌개가 끓여져 있는 집이면 좋겠다. 몇 년 전, JP이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을 때, 여행 내내 체한 느낌으로 식사를 거의 못했다고 했다. 김치찌개였나, 김치말이국수였나. 집에 도착하는 시간에 딱 맞춰 준비했는데, 그걸 먹자마자 체기가 쑥 내려갔고 깨끗하게 나았다고 했다. 집은, 집밥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문제는 내가 집에 없으면 그걸 해줄 엄마가 없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왔는데, 깨끗하게 청소된 거실에 채윤이 마음이 담겨 있었다. "청소는 해놨네!" 기특하고 대견하다 싶었는데. 주방에 가서 놀랐다. 가스렌지 청소까지 해놓은 것이다. 하이고, 이건 대견한 것이 아니고... 나마스떼!다!! .. 2024. 3. 30. Sound of Silence 20년 넘은 육아일기 "푸름이 이야기"의 푸름이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푸름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는데, 그 말이 죄다 자랑인 듯하여 도통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간단하게 자랑하자면, 좋은 재즈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과 공연을 하는 영광을 누렸는데, 교수님이 보통 교수님이 아니라서 이게 좀 믿어지지도 않는 일인데. 열심히 잘했습니다. 우리 채윤이 대학생활 4년은 보석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친구면 친구, 공부면 공부, 음악이면 음악 모두 A+입니다. 친구와는 치열하게 싸우고 치열하게 화해하고 치열하게 좋아하고 죽도록 놀며 합주하고.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처럼 교양과목 하나까지 재미있게 공부하고, 음악은, 아... 우리 채윤이 음악은... 이제 엄마가 감히 논할 수 있는 경지가.. 2024. 3. 4. 삼총사 넷이 복닥거리다 셋이 남았는데, 하나가 나간 자리가 '하나' 이상으로 크게 느껴진다.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해서 각자 현승의의 빈자리를 마주하다 보니 셋이 뭔가 끈끈해지는 느낌이다. 이런 시간도 금방 지나고 익숙해지겠으나. "동아리 면접 봤대... 얘기 들었어?" 현승이로부터 오는 작은 소식 하나에 연연하는 것으로 하나가 되기도. "엄마, 나 4월에 포항에 한 번 가려고. 현승이가 혼자 코인노래방 갔대... 나 너무 마음이 그래." 자기 방식대로 그리워하기도. 채윤이는 제 생애 최초에 경험했던 가족을 다시 누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현승이는 태어나보니 누나가 기본설정이고 네 식구가 기본값이었지만, 채윤이에게 현승이는 자기 자리를 뺏으며 들어오는 존재였고, 엄마 아빠를 독차지하며 누렸던 세계를 뒤흔든 빌런이.. 2023. 3. 16. 칭찬 엄마, 왜 잔소리 안 해? 응? 운동화 치우라고 잔소리 할 때가 됐는데 안 해서. 해도 어차피 안 들을 거니까. 오오, 성장했는데! 엄마는 성장하고 있쪄요... 우쭈쭈쭈 2023. 1. 19. 안식일 밤, 안식할 수 없는 이유 엄마, 너무 자고 싶은데… 씻기가 싫지? 어, 너무 피곤한데… 씻는 게 귀찮아서 잘 수가 없어. 둘 중에 대표로 씻는 게 되면 좋겠다…. (침묵) 엄마, 예전에 스마트폰 없을 때는 뭘 했어? 씻기 싫을 때 뭘 했어? 그러게… 뭘 했을까? (침묵) 너무 귀찮다…. 에잇, 씻을 거야! (나 벌떡!) 채윤아, 엄마 일어났어. 이 어려운 걸 해냈어! 그러면 나도 일어날 수 있어! (채윤 벌떡!) 주일 늦은 밤, 각자 치열하게 달린 엄마와 딸이 식탁 앞에서 발 꼬옥 마주 잡고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시간 죽이고 있다. 원하고 바라는 건 침대에 눕는 것인데 그럴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헤매는 영혼 둘. 마침내 일어났다. 2022. 10. 23. 차 취향 종필을 시작으로 채윤 현승까지 기침감기가 한 바퀴 돌았다. 덕분에 허브티 마시기가 생활화 되고 있다. 꿀차는 한두 번이고, 부담없이 하염없이 마시게 되는 게 허브티니까. 티백으로 사놓으면 알아서들 마시니 간편하다. 레몬밤을 처음으로 마셔본 채윤이가 "어우, 이거... 어우, 토마토 상한 맛이야. 레몬 맛이 하나도 안 나." 레몬밤 티가 얼마나 좋은데! 무슨 토마토 상한 맛이야? 하고 말았는데. 다음 날, 혼자 있는 시간에 레몬밤 티를 마시는데... 와, 토마토 상한 맛! 레몬밤 허브향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다. 리스펙 김채윤! 페퍼민트 마실까, 카모마일 마실까... 고민하던 채윤이가 "엄마, 사실은 나는 이게 제일 마시고 싶어. 여기다 물 부어서 마시고 싶어." 라고 했다. 멸치, 새우, 다시마... 2021. 12. 13.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학교 간다고 나서던 채윤이가 돌아서며 말했다. "아우, 귀여워. 귀여운 엄마를 두고 나가는 게 싫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이게 무슨 '하룻강아지 범 귀여워하는' 소리냐. (어쩔 수 없는 것이 하룻강아지 사이즈가 범을 압도하여! 엑스라지 사이즈 하룻강아지가 아침에 일어나 스몰 에스 범에게 "엄마아~"하고 달려들어 안기면, 안기는 게 아니라 '엄마아~'를 폭 안아주는 형국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귀여운 아이 두고 출근하는 심정은 엄마가 안다. 니 어릴 적에, 증말 귀여워 미칠 것 같은 니를 두고 출근하는 엄마 마음이 그랬느니라,라고 말했더니. 으으...(닭살)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하고 나갔다. 아, 자기 두고 출근하는 게 뭐가 그리 아쉬웠냐고 엑스라지 사이즈 하룻강아지가 물었다. "니가 하루 종일 .. 2021. 11. 14. 이전 1 2 3 4 ··· 4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