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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영원에 잇대기3269

옥금 신실 현승 칼국수 엄마 이옥금 여사는 사골국을 끓이면 한약 달이듯 정성을 쏟았다. 한 번 끓이고, 두 번째 끓여서 다시 섞고, 세 번 끓여서 냉동실에 넣으며 묵처럼 되었다. 겨울 아침, 학교 가기 싫은 날에 파 듬뿍 넣은 사골국은 맛있었는데 싫었었다. 파를 먹지 않는 나를 위해 파 듬뿍 넣어서 향만 내고 죄 건져서 엄마가 먹어주는 배려도 있었다. 그렇게 뽕을 뺀 뼈는 냉동실로 보내 얼린다. 사골국 다 먹고 어느 헛헛한 날에는 냉동실에 있던 걸 다시 꺼내 끓인다. 투명해진 뽀얀 국물이 나온다. 국물이 또 나온다. 거기에 된장을 풀어 시래깃국, 배춧국을 끓인다. 그게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다.... 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도대체 뭘 넣었길래 엄마 된장국이 맛있는 겨? 결혼하고 물었더니 그 비법을 알려주었다. 날이 추워지기 .. 2023. 12. 20.
아기... 예수 대림 둘째 주일이 되어서야 초에 불을 붙였다. 유리병에 담긴 대림초를 12월이 되기 전 벌써 사뒀는데 이제야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몄다. 논문심사와 연구소 특강, 그 사이 독감을 끼어들어 체력 정신력 영력을 끌어올려 지낸 한 주를 마치고. 내적 여정 마지막 강의까지 마친 토요일 밤에 결국 대림초를 켰다. 올해는 틀렸구나. 이 예쁜 대림초는 내년에 써야겠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필 또 크리스마스 선인장이 꽃을 피웠지 뭔가! 대림시기에 꽃을 피워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딱 맞춰 활짝 꽃을 피웠다. "어, 꽃 피려고 하네!" JP가 내 노트북 옆에 이 화분을 떡 갖다 놓고 나간 것이다. 어느 대림절의 기다림이 슬프지 않았냐만은, 어느 기다림이 간절하지 않았냐 만은. 다시 가난해진 마음으로 대림의 불을 밝히고.. 2023. 12. 11.
2023, 홀로, 글로, 송구영신 송구영신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크로노스(Chronos)는 관성대로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입니다. 카이로스(Kairos)는 의미의 시간입니다. 멈춰 성찰하여 의미를 건져 올리는 시간, 그분의 시간일 것입니다. 송년회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송년 파티, 선물교환, 맛있는 음식과 와인파티 같은 걸 그려보게 되네요. 해마다 나음터가 여는 송년회는, 글로 하는 송년회입니다. 바쁘거나 귀찮아서 돌아보지 않았던 ‘나’에 고요히 머무르면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누려봅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분과 함께요. 우주를 운행하는데 바빠서 도통 나 같은 사람에겐 신경을 못 쓰시는 하나님, 송구영신 예배 말씀 뽑기 시간에 잠깐 오셔서 ‘내년의 말씀’ 하나를 점지하고 떠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날 모든 시간 동안 단 한 .. 2023. 12. 7.
하늘이 내게로 온다 써야 할 원고가 있어서 산책은 미루고 있는데, 고맙게도 직박구리가 찾아와 주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약속 장소에 나오질 않으니, 이 열정 넘치는 애인은 집까지 찾아온 것이다.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옮겨 앉으며 마음을 전하다 후루룩 또 날아가 버린다. 이 애인은 항상 더 소중한 애인의 메시지를 끌고 온다. 주께서 사랑하신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베란다 화분 걸이에 먹을 것도 없는데 자주 새가 날아든다. 여름에는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조심조심 맞아야 하고. 이즈음엔 좀 요란을 떨며 사진을 찍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다. 날아든 새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JP가 새와 나를 함께 찍는다. 바보! 날 보지 말고 새를 봐야지. 정신실 밖에 모르는 바보... ㅎㅎ 하루 종일 집에 있는다고 그분의 메.. 2023. 11. 25.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산책길에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하루가 다르게 텅 비어 가는 나무 사이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텅 빈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것이 경이롭다. 잎이 없는 나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젊은 시절을 보냈는데, 그러고 있는 나를 알게 되었고 이유도 알았다. 그리고... 슬픔도 두려움도 없이 텅 비어 뻗은 가지를 바라볼 수 있다. 심지어 경이롭게. 눈을 떼지 않고, 뒷목이 뻣뻣해질 만큼 오래오래. 이젠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자꾸 이 가사가 입에 맴돌아 찾아보았다. 이문세의 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었다. 그리운 것을 그리운 대로 둘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그리운 것이 새롭게 생겨나서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그대로 둬"지지가 않는다. 그.. 2023. 11. 24.
7년 지난여름 대구 어느 교회의 수련회에 초대받아 다녀왔었다. 처음 만남이 아니다.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로 시작한 교회이고 오래전에 내적 여정 세미나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래전 그날이 참으로 의미 있는 날(영성 일기와 시국선언문)이어서 말이다. 이래저래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교회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 만난 목사님과 날수를 헤아렸다. "벌써 7년이네요! 아, 그래요? 7년이나 지났군요..." 하고 나는 당연히 촛불집회를 떠올렸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첫날, 졸이는 심장으로 내려갔던 그 길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뜨거웠던 겨울이 벌썬 7년 전의 겨울이구나! 헌데 목사님은 다른 기억을 말했다. "부임하신 지가 벌써 7년이나 되셨으니... 어떠신가요? 그때 남편 목사님께서 새로운 교회로 청빙 받으셨다고..... 2023. 11. 22.
점심밥 요즘 착실하게 점심밥 하는 편. 김치 콩나물 굴 감자수제비는 남은 재료 모아 모아서 나온 맛있는 점심. 주문 제작 오리떡볶이. 수시 입시로 논술시험 한창인 현승에게서 주문 들어옴. 허를 찌르는 메뉴 선정을 즐기는 편인데. 자연드림의 즉석식품인 카레우동. 소시지 하나 토핑으로 얹어 보았음. 2023. 11. 21.
수능 감옥 수능 전날, 교육지원청에 수험표 받으러 가는 차 안이었다. 수능 며칠 전부터 예민함인지 긴장감인지 수능을 향한 어떤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분명 흐름이 있는데 감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나름 감지하지만 농담이라고 했다가, 배려라고 한 마디 했다가 된통 당하는 그런 사람 둘이 있고... (그게 나야, 둠빠둠빠 두비두바, 불쌍하다, 둠빠둠빠 두비두바, 하난 너야, 둠빠둠빠 두비두바...) 수능 전날이니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이었다. 입시생 심기 살피며 조심조심 수다 떨며 가고 있는데 옆 차선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쌩 지나갔다. 입시생 모자, 동시에 짜증 버튼이 눌렸다. 아, 진짜.... 음... 현승아, 수능 시즌에 그런 법 있으면 좋겠다. 저렇게 수험생 스트레스 주는 사람들 다 신고할 수 있.. 2023. 11. 18.
그게 나야 멀쩡하게 설거지하다 멀쩡한 고무장갑을 가위로 잘랐다. 그게 나야... 심지어 마음에 드는 고무장갑이라 요즘 설거지 담당 자처했는데. 그걸 왜 때문에 어떻게 자를 수가 있지? 그게 나야... 맥락없이 이 노래가 자꾸 생각나고. 난 이 노래 참 좋아하고... 2023. 11. 17.
"기도, 시대가 묻고 전통이 답하다" 나음터 5주년 영성 특강에 초대합니다. 탈종교 시대, 제도교회로는 목마른 영적인 사람들이 영성의 길을 묻습니다. 영성의 길은 기도의 길이기에, 영성의 전통 안에서 기도의 길을 찾습니다. 연구소 5년의 소중한 결실이라 할 수 있는, 내적 여정의 고민과 성찰을 담은 두 개의 논문을 기반한 강의입니다. 탈기독교 시대와 관련하여 부각되는 용어가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는 뜻의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입니다. SBNR을 키워드로 탈기독교 시대 중년을 위한 교회 교육에 관해 논문을 쓰신 김동준 목사님(동반자과정 2기)의 강의와, 아빌라의 데레사 『영혼의 성』의 기도로 논문을 쓴 정신실 소장의 강의입니다. 1강, 시대가 영성을 묻다 : 탈종교 시대 SBNR의 신앙 여정(김동.. 2023.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