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나님을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도다

_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연구소 2년차를 맞던 2020년을 새해 이 기도로 시작했다. 같은 노래를 새 마음 새 부대에 담아 2021년의 다시 불러야겠다 싶었다. 노래 가사에 온전히 마음과 몸을 맞추어 살고 싶다. 개인적인 삶은 물론 연구소를 일궈가는 마음도 딱 이것이다. 연구소 SNS에 올렸던 것 그대로 가져왔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억압하고 위장했던 감정을 만난다는 명목으로 허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내적 여정과 모든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와 벗님들이 진짜 감정을 만나는 일에 정진하여 오직 슬퍼할 것에 슬퍼하고 분노할 것에 분노하는 길을 가겠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며❞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의 환상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그 환상의 끝이 내 생각, 내 논리, 내 지성의 우월주의이며 결국 타인과 나를 분리하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지금 여기 하나님의 현존에 머무르는, 치유하는 현존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제 존재 안에 이미 부어진 사랑을 믿으며 내주하시는 성령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겠습니다. 상담과 모든 여정 중에 만나는 벗님들 안에 이미 존재하는 치유의 힘을 믿으며 함께 걷겠습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도다❞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이름을 얻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연결되는 단 한 분을 소중히 대하겠습니다. 빠른 성장, 눈에 보이는 치유의 열매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지금 여기 치유하는 현존으로 계시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나음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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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중년의 ‘중(中)’은 가운데입니다. 인생 등반 한가운데 서 있으며 내려가는 삶이 시작입니다. 생의 오후로 가는 길목에는 생각지 못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 같지 않은 몸, 알 수 없이 밀려오는 공허감, 100세 인생이라는 노령화 사회에서 아직도 살아가야 할 기나긴 날들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입니다.

중년의 ‘중(重)’은 무거움이기도 합니다. 중년의 위기는 도전이며 기회입니다. Carl Jung은 자신이 상담에서 만난 중년 이후 내담자의 문제는 모두 ‘영적’인 문제였다고 합니다. 중년의 숲을 지나는 여성들이 함께 모여 쓰고, 읽고, 나눕니다. 글은 잘 못 쓰셔도 됩니다. 나다운 나로 생의 오후를 살고 싶은 ‘중년’을 느끼는 여성(나이 크게 괘념치 않으나 38세 이후 여성 권장)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중년 글쓰기 후에 나눠주신 후기 중 일부입니다.

❝평생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글로 쓰고 풀어놓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수용하고 용납해야 하는 입장에서 늘 살았다. 내게도 수용 받고 싶고, 용납받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끝이라는 게 아쉽다. 길을 걷는데 좋은 친구를 만났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씀으로 비로소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 신실샘이 늘 말했던 글쓰기가 가장 주체적 행동이라는 것이 비로소 알아들어졌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1월 14일(목)~2월 25일(목) 오전 9시30분~12시(6주간, 2/11 설날 휴강)
+ 인원 : 6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4235-8020
+ 신청 링크 : https://bit.ly/3pH9S1X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생의 오후 시간 : 글로 길어 올리는 영성의 샘물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 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어머니 하나님을 찾아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참고도서 : <내 나이 마흔>, 안셀름 그륀, 성서와 함께
<위쪽으로 떨어지다>, 리처드 로어, 국민북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중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20210114~)

<생의 오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신청양식 입니다.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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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모임이 '꿈 모임'인데, 올해는 한 번도 꾸려보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새해 시작을 꿈모임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치유와 성장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가는 모임입니다. 아무 준비 없이 와서 앉아만 있어도 내 마음과 영혼이 하는 말이 들리는 모임입니다. 심지어 "나는 꿈도 안 꾸는데요" 하는 분도 가능합니다. "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꿈에 메시지가 어딨어? 꿈이 다 개꿈이지." 논리와 합리성에 목숨 걸고 사는 분이라면 특히 대환영인데, 제가 좀 골치 아프긴 하겠죠. (우힛) 예수님이라면 돈 없는 자도 와서 값 없이 사라고 하셨을 텐데 그러진 못하네요. 온라인 모임입니다.

 

연구소의 포스터 담당 연구원은 포스터에 마음을 담을 줄 아는, 상징을 아는 타고나 '상처 입은 치유자'랍니다. 포스터 안에 담긴 모든 것이 그대로 다 치유의 메시지입니다. 저는 자꾸 들여다 보게 돼요.   

 

꿈과 영성생활 “밤에 온 러브레터”

‘꿈은 당신에게 배달된, 봉투 안에 든 편지’라고 탈무드에서 말합니다. 혹여 어떤 메시지가 든 편지라면 발신자는 누구이며,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크리스천의 꿈은 조금 다를까요? 뱀 꿈은 마귀의 시험에 들었다는 뜻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거나 미래를 예견하는 방법이 될까요?

프로이트(Sigmund Freud)라면 무의식의 억압된 욕구가 꿈의 발신자라 하고, 융(Carl Gustav Jung)이라면 자기 안의 신적인 자아 Self로부터 오는 것이라 합니다. 나쁜 꿈은 없고, 모든 꿈은 우리를 도우러 온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요. 여러 영성가들은 존재 중심에서 우리는 붙드는 사랑의 목소리, 그분이 발신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뱀 꿈이며, 악몽을 비롯한 모든 꿈은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됩니다. “너는 사랑받는 자이다”

작은 그룹에서 꿈 여정을 하면서 "당신은 불필요한 심리치료비 1만 달러를 벌었다"는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가짜 자기와 그 너머의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자기를 인식하는 눈이 생긴 사람에게 리처드 로어 신부가 하는 말인데요. 정직하게 꿈을 들여다보는 일은 심리상담 수십 회기의 효과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젯밤 꿈을 통해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집단여정에 초대합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2021년 1월 5일(화) ~ 3월 30일(화) 오전 9시30분 ~ 12시(12주간)
+ 인원 : 6명 + 수강료 : 30만원
+ 신청 링크 : https://bit.ly/3r2Jxga
+ 문의 : 010-6209-0635

✔ 필독서 있습니다.
『꿈, 하나님의 잊혀진 언어』 존 A. 샌포드, 동연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내적 여정 지도자 과정', 마음 먹은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이 종강을 맞았다. 계획대로라면 11월 말에 종강 피정을, 12월 첫 주에 수료식을 하고 마침표를 찍었을 것이다. 지도자 과정 개설은 나로서는 역사적인 한 걸음이었다. 하필 코로나 19와 함께한 큰 걸음이라 더욱 드라마틱한 행보가 되었다. 마지막 피정을 위해 쏟은 마음의 에너지가 얼마나 컸던가. 어렵게 구한 맞춤형 숙소며 포기하고 감수해야 할 것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이 연기했다. 그러고 보면 지도자과정 포함 연구소 프로그램들을 내내 취소, 연기, 취소, 연기... 하며 올 한해를 지냈다. 



종강 피정을 1월로 미루고 기약없이 텅 비어버린 12월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새 일을 도모했다.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맞춰 진행하면서 더 좋은 지도자 과정 커리큘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늘 만나던 목요일 오후에 줌으로 하는 책 나눔을 계획했다. 과제로 읽고 리포트 제출했던 책을 리스트에 올리고 투표를 거쳐서 선정했다. 안셀름 그륀 신부의 <아래로부터의 영성> 당첨. 안셀름 신부님 책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옛날 책’이다. 신의 한 수였다. 지도자 과정 수강자와 연구소 식구 합하면 11명인데, 모두를 위한 최적, 최선, 최고의 책이었다. 11명 벗들의 개인적 여정은 물론 개소 2주년 맞는 연구소의 방향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나로서는 정말 그렇다. "아, 이걸 하려고, 이걸 하다 연구소 시작했지!" 위로부터의 영성이 틀려서가 아니라 아래에서 시작하는 영성의 부재에서 오는 불균형에 숨을 쉴 수 없던 시절이 있었지. 당시에는 숨을 쉴 수 없는 이유조차 몰랐었다. 지금 여기의 일상, 지금 나의 생각, 느낌, 상처, 질병, 실패에서 하나님을 찾는 방향성 말이다. 보석같은 이 책을 발견하고 심장 쿵쿵거리며, 눈물 찍어내며 읽던 그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오늘이다.   

다시 심각해진 밖의 상황이 풍성한 영성의 샘물로 우리를 이끌었다. 더욱 고립되어야 하는 외적인 상황이지만 그로 인해 더욱 단단하게 연결되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아쉬움으로 선택한 시간이지만, 그간의 여정을 정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구나 싶은 것이 그분은 참 꼼꼼하신 분이다. 아름다운 그분의 꼼꼼하심을 우리는 ‘신비’라 부르곤 한다.

 

 

무엇인가를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
그렇지 않다면 시작도 하지 마라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
이것은 여자 친구와 아내와 친척들과 직장과
어쩌면 너의 마음까지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3~4일 동안 먹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추위에 떨 수도 있고
감옥에 갇힐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당하고

고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립은 선물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네가 얼마나 진정으로
그것을 하길 원하는가에 대한
인내력 시험이다
그리고 너는 거절과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것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네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좋을 것이다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
그것만 한 기분은 없다
너는 혼자이지만 신과 함께할 것이고,
밤은 불꽃으로 타오를 것이다

그것을 하라, 그것을 하라
하고 또 하라
끝까지
끝까지 가라

너는 너의 인생에 올라타
완벽한 웃음을 웃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싸움이다


- 찰스 부코스키 <끝까지 가라> (류시화 옮김)

 

포기해라. 여기서 포기해라. 더는 못 갈 길이다. 네 깜냥에 여기만큼 온 것이 기적이지.

 

늘 내 안에 울리는 소리이다. 작아졌다 커졌다, 들렸다 안 들렸다, 하지만 아예 사라지진 않는다. 이 목소리로부터 나를 떼어낸 것은 얼마나 위대한 진보인가. 목소리가 나인 줄 알았고, 심지어 목소리가 하나님인 줄 알았지만 이제 나는 거리 두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들을 수 있지만 잘 대처하진 못한다. 크게 들리든, 작게 들리든 그 소리는 나를 통째로 쥐어 흔들고, 나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하지만 그 소리가 나도 하나님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인내할 수 있다. 멱살을 내어주고 흔들 만큼 흔들다 제 자리에만 갖다 놓기를. 아니 결국 제 풀에 지쳐 놓아 주고야 말 것임을 안다. 흔들리는 그 순간 영혼의 울렁거림, 토할 것 같은 느낌, 항복하고 싶은 고통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이길 것임을 알기에 견딜 수 있다. 내 멱살을 놓아준 목소리는 말간 얼굴을 하고 "아윌 비 백" 하며 웃는다.


바이러스를 닮은 이 목소리는 변종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 가장 취약한 구석을 재빨리 파악하여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돌아온다.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모습을 하고. 포기해, 포기해, 포기해. 나는 천사이고, 네 편이고, 너를 도우려는 것임을 알지? 내 소리가 듣기 싫다면 너 어쩌면 악마 일지 몰라. 천사이고 싶다면 내 말을 들어. 포기해, 포기해, 포기해.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어 진다. 끝까지 갈 필요 없다! 갈 수도 없다! 그만 두자! 그러면 그렇지! 내가 이렇지. 이런 꼬락서니로 여기까지 온 것이 기적이지! 천사의 말이잖아. 천사의 목소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내 무릎을 꺾어 놓을 셈이다. 까만 하늘, 별 하나를 의지해 기약 없는 여행을 하는 동방박사로 살고 싶은 마음은 어리석음이 된다. 별 따위를 이정표 삼는 것은 이상주의일 뿐이니, 실용적이 되라고 부드럽고 달콤하게 나를 흔든다. 부드러운 흔들림은 또 새로운 울렁거림으로, 악마인 나를 토해내고 나를 혐오하는 고통으로 끌고간다.

 

착한 사람들에게 멱살을 내어주고 두들겨 맞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나는 한 문단의 글을 썼는데, '고립과 고독'에 관한 내용이었다. 얼마나 위안이 되고 마음에 드는지 꼭 기억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대로 옮겨 적어야지 했는데, 눈을 뜨자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열었는데 저 시를 듣게 되었다. 언제든 도망가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것은 내 고질병이다. 그것을 부추기는 목소리를 분별해야 한다고, 분별하기 위해선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꿈이 말해주는 것 같다. 시가 말해준 것인가? 내 안의 다른 세미한 목소리가 들려주시는 지혜의 말씀인가.   

 



‘자발적 거리 두기’라는 낯선 말이 익숙해지더니 일상이 된 한 해를 살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물러나 홀로 있다고 해서 내가 나와 함께 있어 줬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올해 마지막 글쓰기 모임을 알려드립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송년회 모임도 조심스러운 연말이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함께 하는 송년의 시간 보내고 싶은 분을 초대합니다. 발설의 치유력은 강합니다. 말하고 쓰는 것은 가장 주체적인 행위이기에 그 자체로 치유이고 성장입니다.

온라인 모임이니 계신 지역에 관계없이 연결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전국 어디든 막론하고, 해외에 계신 분들도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11월 23일(월) ~ 12월 28일 (월)
+ 시간 : 오후 8시~10시 30분(6주간)
+ 인원 : 6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3eNlJar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나는 쓰고 말하는 나다 : 치유하는 글쓰기의 힘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여자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필독서 :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201123~)

11월23일 시작하는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신청양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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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을 안내할 수 없다는 상담과 영적 지도의 원칙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가본 길로 안내하는 것이 됩니다. 연구소의 모든 여정이 글쓰기로 흘러가고 있네요. 연구원, 지도자 과정 벗님들, 내적 여정을 깊이 가려는 분들이 결국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습니다. 오늘 연구소 SNS에 쓴 글, 그대로 옮겨 붙여봅니다. 

나음터에는 글이 넘쳐납니다. 지도자과정 방에는 의식 성찰 일기가, 글쓰기 그룹에는 자기를 찾아가는 형형색색의 이야기가, 연구원 방에는 스터디 교재 독후감이, 카페에는 구슬 서 말을 꿰는 고유한 이야기들이.

이번 한주는 글 쓰는 에너지로 더욱 충만합니다. 이제 와 얘기지만 <중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모임은 연구원을 위한 글쓰기 모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연구원 셋이 먼저 신청하고, 남은 자리에 새로운 글벗님들을 초대했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 되기는 언제든 현재 진행형이기에, 연구원들 역시 부단히 성찰하고 기도하며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만나는 글쓰기에 오롯이 머무르는 연구원들이 성장통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아픔 속에서 치유와 성장의 에너지는 더욱 충만합니다.

종강을 두어 주 앞둔 지도자 과정 벗님들도 가장 어렵고 중요한 숙제를 안고 글쓰기에 머물고 계실 겁니다. 에니어그램과 영성을 잇대어 더 깊고 넓게 배우는 것이 지도자 과정의 중요한 목표이지만, ‘상처 입은 치유자’ 되기 위한 성찰과 기도 훈련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을 안내할 수 없기에 좋은 상담가, 여성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닦은 눈으로 자신의 인생 여정을 새롭게 쓰는 가장 소중하고 어려운 글쓰기를 하고 계실 텐데, 고뇌와 고생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조각난 나의 기억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자아 감각을 되찾는 과정입니다. 하찮아 보였던 나의 이야기가 그분의 이야기에 가닿는 것을 깨달을 때, 고립에서 빠져나와 연결의 충만을 누리게 되겠지요.

어제, 중년 글쓰기 두 번째 시간에 한 벗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그저 나의 이야기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쓴다 생각하니 글을 써야 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설렘 같은 것도 있었다고요. 지난 회기 때 한 벗님께서는 하루 한 시간 글 쓰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분주한 낮 시간을 보내면서 문득 “얼른 가서 글을 써야지” 하게 되셨다고요. 나를 만나는 시간이 설레고 기다려진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두 분의 말씀은 뭉클한 도전입니다.

나음터 우물가에는 지금 조용히 왁자지껄, 아프지만 생명력 넘치는 글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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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을 위한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초대합니다.

중년의 ‘중(中)’은 가운데입니다. 인생 등반 한가운데, 내려가는 삶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생의 오후로 가는 길목에는 생각지 못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 같지 않은 몸, 알 수 없이 밀려오는 공허감, 100세 인생이라는 노령화 사회에서 아직도 살아가야 할 기나긴 날들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입니다.

중년의 ‘중(重)’은 무거움이기도 합니다. 중년의 위기는 도전이며 기회입니다. Carl Jung은 자신이 상담에서 만난 중년 이후 내담자의 문제는 모두 ‘영적’인 문제였다고 합니다. 중년의 숲을 지나는 여성들이 함께 모여 쓰고, 읽고, 나눕니다. 글은 잘 못 쓰셔도 됩니다. 나다운 나로 생의 오후를 살고 싶은 ‘중년’을 느끼는 여성(나이 크게 괘념치 않음),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11월 3일(화) ~ 12월 10일(화) 오전 9시30분 ~ 12시(6주간)
+ 인원 : 7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3k9xolP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생의 오후 시간 : 글로 길어 올리는 영성의 샘물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 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어머니 하나님을 찾아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참고도서 : <내 나이 마흔>, 안셀름 그륀, 성서와 함께
<위쪽으로 떨어지다>, 리처드 로어, 국민북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중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201103~)

중년을 위한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신청양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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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흔하게 굴러다녀도 내겐 너무나 절실하고 소중해서 입에 올리지 않는 말이 있다. '영성'이 그렇다. 예를 들면 '일상 영성'은 내 글쓰기가 뿌리내린 곳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어쩐지 입에 올리기는 싫다. 영성 앞에는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그럴듯하다. 연구소의 상담은 궁극적으로 영성 상담이고, 에니어그램 세미나는 영적 여정이고, 종강을 향해 가는 연구소 지도자 과정은 우리만의 '여성 영성'을 일궈가는 일이지만. 감히 '영성'이란 말을 표방할 수 없다. 이유는 단 하나, 소중해서 그렇다. 


요즘 화요일 12시는 일주일 내 마음 가장 맑아지고, 겸손해지고, 경건해지는 시간이다. 연구소 글쓰기 강좌인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가 끝나는 시간이다. 오늘은 정말 가장 은혜로운 예배를 마치고 나온 느낌이었다. 정결하게 하는 샘에 내 영혼 씻겨 나온 느낌. 과장이 아니다. 오늘만 해도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는 9시 30분 어간.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상해 있었다. 전 같으면 견적이 이틀은 나오는 '꼬인 마음'인데. 모임 마치고 미용실 갔다 나오니 발길이 절로 남편 사무실로 향했다. 아무 일 없는 듯(없는 척이 아니라 아무 일 없는 마음이 되었다) 마주하고. 잠시 산책을 하고 사이좋게 퇴근하여 들어왔다. 읽는 여러분 별로 안 놀라시겠지만, 이건 깜짝 놀랄 일이다. 


이래저래 읽고 쓰는 모임을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해왔지만,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들과 함께 하는 글쓰기 모임이 전환점이 되었다. 듬성듬성 알았던 것을 벼락처럼 깨달았고, 순간순간 짧게 맛보던 것을 진하게 경험했다. 쓰기의 힘이 아니라 존재의 힘을 무한 신뢰하게 되었다. 고통 가운데 있는 한 존재가 쓴 진실한 글이 날카로운 칼처럼 어딘가를 찌르는 느낌, 그 느낌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었는데, 그 머무름이 곧 치유라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다. 단지 글, 단지 말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 것이다. 이제 모든 글쓰기 모임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고통에 함께 머무름과 그 시간이 주는 놀라운 치유력은 내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늘 경이롭기는 하지만. 

'나'를 주제로 두고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는 시간. 나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 나의 기억, 나의 감정과 몸, 내가 믿는 하나님. 나, 나, 나. 나에 대해 공부하고 쓰지만 심리학적 자기 분석은 아니다. 글쓰기 지도를 하는 시간은 더더욱 아니다. 영성 모임이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것이지만 앞의 나와 뒤의 나는 다르다. 그래서 영성 모임이다. 영적 존재인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지금 여기의 나에서 시작하여 더듬어 가는 시간. 지금 여기의 나에서 시작하자니, 지금 여기의 나는 맥락 없는 내가 아니라 내 경험의 산물이라. 그때그때 올라오는 내 인생 이야기들을 물 흐르듯 써간다. "물 흐르듯"은 글쓰기 영성 모임의 캐치 프레이즈로 삼아도 좋을 말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글이 이끄는 길을 따라". 모인 자리에서 바로 쓰는 10분, 15분 안에 쓰는 짧은 글이 주는 깊이와 울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매시간 "내가 돈을 받으며 글을 배우고, 삶을 배운다"는 느낌이 든다.


쓰는 것은 참말로, 정말로, 진실로, 주체적인 행위이다. 그 주체성과 자발성, 그리고 투명함이 일궈내는 신비일 것이다. 주체적이고 자발적이고 투명한 태도. 이것을 가진 존재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심리적 존재? 아니다. 그 이상이다. 초월적이고 신비적이 존재. 한 사람 안에 있는 치유와 창조성의 힘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은 '영적 존재'의 증거이다.


화요일 오전 9시 30분, 나는 가장 거룩하고 영적인 시간을 마주한다. 일주일을 살게 하는 본 예배이다. 아, 심야 기도회도 있다. 토요일 자정, 맞다 밤 12시. 영적인 시간이 한 번 더 있다. 미주 서부 동부의 예배자들과 함께 심야의 글쓰기 예배가 있다. 이 즈음 내 영혼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시간들이다.  

 

 

 

 

 

 

 

2020년 9월 5일 

내적 여정 세미나 1단계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요즘 SNS 흔한 게 온라인 강의 포스터지만,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zoom 강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 9월 5일은 '역사적'이란 진부한 표현이라도 갖다 붙여야 할 날이다. 지난 5월부터 zoom 강의를 경험하긴 했다. 언택트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연구소도 발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었지만 내적 여정만큼은 아니지 싶었다. 설령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내적 여정 세미나는 멈추는 게 맞지, 어떻게 화면으로 보며 마음을 나누겠냐고, 혼자 생각했다. 결국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하고 말았다.  

 

2020년 5월 

미주 코스타가 온라인으로 개최된다는 소식과 강사로 초대하는 메일을 받았다. 연거푸 몇 번 거절했던 터라 죄송한 마음, 온라인이니 집에서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안도감으로 덜컥 수락하고 말았다. Kosta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 하더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강의는 미리 찍어 보내야 하고, 사전 홍보 책 소개 영상 숙제도 덤으로 받았다. 휴대폰으로 대충 찍으면 되려니 싶었는데 Kosta가 호락호락해야 말이지.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겠는 웹캠과 탁상 마이크 같은 걸 검색하고, 남편은 또 어디서 얻어오고. 새로운 주제의 강의 준비도 부담 백배인데, 새로운 강의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5월 한 달을 보냈다.  알고 보면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 "모른다" "모르는 영역이다" 이 의식으로 내가 얼마나 두려움에 휩싸이는지 알게 되었다. 

 

2020년 7월

Fear To Faith Now, 드디어 온라인 코스타가 열렸다. 아,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전향해야 하는 지금! 새벽 5시, 강의를 위해 ktx 타러 나가보긴 했지만 강의를 할 시간은 아니다. 고요한 거실, 노트북 앞에 홀로 앉아 코스타 세미나 강의라니.  모든 것이 새롭다. (『모든 것을 새롭게』! 헨리 나우웬 신부님 책 제목 잘 지으셨네요.) 두 번의 강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두 번째 강의를 마친 새벽, 멍하니 새벽산을 바라보며 감동을 머금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화상 강의로 메시지 전달이 제대로 되겠나, 마음의 소통이 일어나겠나,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만 빨리 끝내고 다리 뻗고 자는 게 목표다, 이것 뿐이었다. 30분도 되지 않는 질의응답 시간, 말로 글로 전해져 오는 질문과 반응에 마음 깊은 곳이 떨렸다. 상실, 애도, 고독, 영성. 3월 엄마 돌아가신 이후 붙들고 있던 것을 말로 꺼내놓을 때 어떻게 들려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도 경험과 상황이 다른 해외 유학생들에게 말이다. 적어도 내 안에 일어난 파장은 랜선을 타고 갔다 부딪쳐 다시 돌아온 메아리였는데,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아픔과 갈망이 다르지 않다는 것.

 

온라인 Kosta 덕에 COVID-19가 가져온 변화에 빨리 적응하게 되었다. 낯선 상황, 모르는 것에 대한 내 두려움이 낳는 완고함과 방어 또한 부끄럽도록 생생하게 마주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몸과 몸이 함께 하지 않는 만남'을 폄훼하며 과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 주먹 불끈 쥐고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쟁이 노인네 같았다. 신비로운 인연이다. 최근 몇 년은 참석도 못했고, 예전 그 만남의 기억을 간직할 뿐 이제 멀어진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처음 참석했던 그때처럼, Kosta는 나로 하여금 두려움에서 한 발 내디뎌 강사로서 다른 자리에 서도록 한다. 

 

2020년 8월

올 여름은 그렇게 서서히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8월에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연구소 식구들과 zoom으로 자주 만났다. 예정된 워크숍을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취소한 아쉬움에 zoom에서 모였다. 재미나게 모였다. 케이크를 준비한 생일 축하도 하고. 글쓰기 모임에선 글을 낭독하고 들으며 눈물 찍어내는 일이 잦았다. 랜선이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구나! 손가락만 하게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도 울고 웃으며 연결될 수 있구나. 랜선이 아니라, 우리들이 신비한 존재구나! 비록 몸으로 마주칠 수 없지만 영혼으로 이렇듯 연결되고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로구나. 존재의 신비여!

 

2020년 9월

지도자과정 2학기도 온라인 강의가 되어야 했다. 정식 개강 전에 책 나눔으로, 가벼운 수다로 zoom모임을 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 '낯선 것에의 두려움' 뽀개기 시도였다. 어렵지 않게 2학기 개강 첫날 모임을 마쳤고. 6주 글쓰기 과정도 마쳤다. 이게 웬일인가! 고집쟁이 장로님처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했던 이유는 '몸'이었다. 몸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런데 zoom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프라인 모임보다 '몸'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비록 눈동자의 흔들림은 보이지 않지만(집단 여정에서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습기, 긴장은 빼도 박도 못하는 마음의 거울이다.) 몸이 그것을 대신한다. 화면으로 보이는 몸이 말보다, 글보다 크게 말한다.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 연결과 소통의 신비란!

 

2020년 9월 6일

9월 5일 토요일 오전 10시. 역사적인 첫 온라인 내적 여정 세미나를 진행했고. 9월 6일 주일 0시 30분. Kosta 간사 수양회 강의를 했다. 식구들 잠든 한밤중에 거실에 앉아 찬양 하고, 간증을 듣고, 강의를 했다. 주제는 '희망'. 이토록 희망 없는 시절에 희망을 말하는 것은 너무 허망한 일 아닌가.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 현실이 아프거나 막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희망은 말해져야 하고, 발굴되어야 한다. 없지만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요즘 내 영성의 길잡이가 되고 있는 선생님은 14세기 여성 신비가 노르위치의 줄리안인데,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를 살았던 영적 선배, 언니이다. 아침마다 아껴서 읽는 그의 저서로 영혼이 촉촉해진다. 14세기 살던 언니가 아침마다 내게 들려주는 말이 있다. "All shall be well!" 잘 될 거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다. 단단한 내 고집이 부서지는 한, 그래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한 잘 될 것이다.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 있고, 사람이 있지만 어제의 내가 깨지는 한 이 어려운 세계와 사람이 내게 흘러들 틈이 생길 것이다. All shall be well!  



나의 몸, 나의 기억, 나의 이야기를 쓰고 나누는 온라인 우물가(Zoom)로 초대합니다.

발설의 치유력은 강합니다. 내가 쓴 글을 낭독할 때, 가장 먼저 내 귀가 듣습니다. 마주 앉은 여성들, 또 다른 ‘나’들이 판단하지 않는 태도로 들어줍니다. 발설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지만, 쓰고 읽고 나눠보면 알게 됩니다. 글로 흘러나온 은밀하고 사소한 나의 이야기가 의미가 됩니다. 나만의 의미가 되고 자유가 됩니다.

‘잠잠함’을 미덕으로 강요받은 교회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초월하는 하나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사는 나, 누구도 아닌 나를 쓰는 여정은 필연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분의 이야기에 닿을 것입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9월 22일(화) ~ 10월 27일(화) 오전 9시30분 ~ 12시(6주간)
+ 인원 : 6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2QSxUrc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나는 쓰고 말하는 나다 : 치유하는 글쓰기의 힘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 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하나님 어머니 만나기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필독서와 독후감 과제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필독서 :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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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성경 읽기 진도가 역대상이다. 사람 이름으로 한 장 다 채우는 건 마태복음 1장이 갑인 줄 알았는데, 역대상이 갑 오브 갑이었다. 이름으로 본문 채우기가 9장까지 이어진다. 어릴 때는 눈으로 휙 훑고 지나쳤었다. 하나님의 나와 상관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감사의 글'에 따로 모은 이름들처럼 말이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본문'이지 저자의 인간관계가 아니다.

어쩐지 이번엔 한 사람, 한 이름을 꼼꼼히 읽게 된다. 기나긴 인생이었을 것이다. 신앙과 불신앙, 사랑과 두려움을 오가며 40년, 60년, 80년을 이 땅에 머물렀을 것이다. 강한 용사이거나, 제사장이거나, 문지기로서 역할을 살며 자기를 구축했을 것이다. 고유한 인격을 지녔을 것이다. 그 인격의 맥락 안에서 선택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 선택이 모여 인생 이야기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더 큰 이야기에 편입되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얼굴. 

생각해보면, 한 사람이다. 내 마음에 울리는 끝없는 번뇌는 한 사람과 맞닿는다.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도, 삶을 향한 열정을 앗아가는 것도 한 사람의 얼굴이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한 사람의 얼굴이 되고 있다.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누군가의 지금 여기를 한 사람, 한 얼굴로 채워 생기를 앗아가거나, 삶의 기쁨을 불어 넣는다는 것. 한 얼굴, 한 이름이 가진 위력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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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하나님,

제 움켜쥔 주먹을 펴기가 너무 두렵습니다!
더 이상 붙들 것이 없을 때 저는 누구일까요?
빈손으로 주님 앞에 설 때 저는 누구일까요?
서서히 손을 펴 깨닫게 도와주소서.
제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제가 아니라
주님이 제게 주시려는 것이 곧 저임을.
주님이 제게 주시려는 것은 사랑입니다.
무조건적이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지금 집이 좋고, 좋고, 좋은 이유가 여럿이지만 무엇보다 좋은 이유는 새소리이다. 얼마 전까지 밤에 자려고 누우면 '뻐꾹 뻐꾹뻐꾹뻐꾹' 소리가 앞산에서 울렸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누군가 암호로 보내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잠들기 전 행복 전달자였다. 아침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의 지저귐이 가까이서 멀리서 들린다. 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 자체가 이미 높은 곳에 있어서 베란다 창 앞으로 날아다니기도 한다. 휙, 바로 코 앞에 번개 같이 지나가기도.

 

새를 찾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이 습관 중 하나인데, 거실에 앉았으면 고개를 들어올릴 필요도 없이 새가 아주 가까이 보이고 느껴진다. 이래도 되나 싶게 행복하다.

 

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신간 인문학자가 보여주는 새 이야기, 인간 이야기』를 만났다. 대뜸 집어들었다.  읽다 보니 젊었을 적 읽었던 존 스토트 목사님의 , 우리들의 선생님』 생각나 다시 끄집어냈다.두 권을 오가며 읽었다. 나쁘지 않은데 어쩐지 내가 아는 새, 내가 좋아하는 새들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 한참을 두고 읽고 또 새를 보고, 길을 걷다 하늘을 올려다 보고, 새소리를 듣다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새는 저 멀리 나는 새였구나! 결코 내 시야에 오래 붙잡아 둘 수 없는, 불시에 나타났다 훨훨 날아가버리고 마는, 그 새들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집 토방에 앉아 얼마나 자주 올려다봤던가. 저 멀리 키가 큰 미루나무 위의 새 둥지, 둥지를 오가는 새들이 또렷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엄마한테 혼나고, 쓸쓸하고, 외로울 때 늘 거길 바라봤던 것 같다. 훨훨 나는 새를 보면서 '초월'을 꿈꿨다. 지금의 나를 뛰어넘고 싶은 욕구가 하늘을 보고 새를 보게 했구나 싶다. 새에 끌리는 것은 저 멀리, 여기를 초월한 어떤 세계에서의 자유 같은 것이었구나. 두 책의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나를 보게 하였다. 

 

나리꽃을 좋아한다. 글쓰기나 꿈모임, 집단 여정을 이끌 때 별칭을 쓰곤 하는데 늘 나는 'nari'이다. 꾸미지 않고 제 모양대로 피어 있는 들의 나리꽃처럼 살고자 함이다. 영성적 삶의 모토 "있는 그대로"란 뜻이기도 하다. 벗들이 길에서 본 나리꽃을 그냥 지나치치 않고 사진 찍어 보내주기도 한다. 모든 들꽃에 관심이 있지만 나리꽃은 더욱 오래 들여다 보고 마음을 담는다. 

 

새를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하고, 나리꽃을 보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어떤 땐 고개를 들어 저 멀리를 바라보고, 많은 경우 고개를 떨구고 땅으로 보며 산다. 요즘은 새와 나리꽃만으로 마음이 충만하다. 나리 철이 끝나가긴 하지만 나리 대신 능소화가 피고, 능소화가 떨어지면 또 다른 꽃과 들풀이 생명과 사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늘의 새와 땅의 들꽃, 그 사이 공간에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생명이었다 죽음이었다, 사랑이었다 고통이었다 들쭉날쭉이다. 시간을 아껴서 '사랑이 있는 곳, 위안(consolation)'에 더 많이 머무는 것이 좋은 일이다. 메마른 곳을 일부러 찾아 맴돌 필요는 없다. 하지만 황폐(desolation)한 곳을 무작정 피할 일은 아니다. 주어진 황폐함이라면 위안의 날을 기다리며 머무르는 것이 좋다. 그런 날에 시선을 돌려 자유로 비상하는 새를 바라보거나, 제 모습 그대로 꾸미지 않고 피어있는 나리꽃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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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지, 해야지 하는 일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를 하게 되었다. 연구소 시작하고부터 글쓰기 강좌에 대한 요구가 있었는데 이 시절, 온라인으로 열게 되었다. 몇 자리 되지 않아 이미 마감 되었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이니 내 집 앞마당에 걸어두지 않을 수 없다. 제목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는 1992년에 나온 동인지 <또하나의 문화 9호>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대학 들어가던 해 창간된 <또하나의 문화>는 나를 형성한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기둥2: 기독교 세계관 서적, 기둥3: 사회과학 서적) 특히 9호는 출간된 시리즈 중에서 top3로 소중하다. 여성으로 살고 쓰고 읽고 사유하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져 나를 흔들었다. 고정희 시인과 조한혜정 교수에 꽂혀 읽고 읽으면서 결국 쓰고 쓰는 삶을 살게 되었지 싶다. 다시 꺼내 몇 편의 글을 읽다보니 오늘의 내가 이 책 여러 문장들에 맞닿아 있다. 치유 글쓰기,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 등의 모임은 이 책이 뿌린 씨앗의 열매구나, 싶은 것이다. 30년 전에 뿌린 읽고 쓰기의 씨앗이 2020년 코로나 세상에 Zoom 강좌로 피어났다. 나를 찾아가던 이야기로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 맥을 찾아가는 일을 돕게 되었다. 고민하고 방황하던 젊은 날, 곡절 많았던 지난 30여 년이 소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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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음터 글쓰기 모임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

 

발설의 치유력은 강합니다. 말하고 쓰는 것은 가장 주체적인 행위이기에 그 자체로 치유이고 성장입니다. 종교 권력 하에서 ‘잠잠함’을 강요받은 교회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초월하는 하나님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를 사는 나의 몸, 나의 기억, 나의 이야기를 쓰고 나누는 온라인 우물가(Zoom)로 초대합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쓰는 여정은 필연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분의 이야기에 닿을 것입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8월 5일(수) ~ 9월 9일 (수) 오후 9시 ~ 11시(6주간)

+ 인원 : 6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2C6bBdS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나는 쓰고 말하는 나다 : 치유하는 글쓰기의 힘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 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하나님 이미지 만나기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필독서와 독후감 과제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필독서 :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댄 알렌더,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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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깊이 알지 않고는 자신을 깊이 알 수 없고, 자신을 깊이 알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다”

『기독교 강요』 장 칼뱅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이라 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반드시 자기 지식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궁극적으로 ‘치유’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로 에니어그램 1단계를 시작하여 ‘내게 하나님은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만나는 영성과정까지. 한 달에 하루씩 닷새의 시간 동안 전에 해보지 않은 질문, 전에 해보지 않은 기도의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특별히 내적 여정 저녁반을 신설했습니다. 기본 1,2단계를 6주간 여정으로 진행합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토요반]

✔ 일시와 신청

기본1단계 : 8월 22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신청 : https://bit.ly/31SQPcu

기본2단계 : 9월 19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신청 : https://bit.ly/31QyrRj

심화1단계 : 10월 24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신청 : https://bit.ly/2ABrdFz

심화2단계 : 11월 21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신청 : https://bit.ly/3iBcmfn

영성단계 : 12월 19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신청 : https://bit.ly/2C8cD90

+ 장소 :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 인원 : 9명 + 비용 : 12만 원/ 1일
+ 문의 : 010-4235-8020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저녁반]

✔ 신청 : https://bit.ly/3gD30y9

+ 일시 : 9월7일(월) ~ 10월 12일(월) 6주간, 오후 7시 ~ 9시
+ 장소 :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 인원 : 9명 + 비용 : 단계별 12만 원/ 3주
+ 문의 : 010-4235-8020

✔ 입금계좌 : 농협 301 - 0240 - 4119 - 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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