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283 수도원순례4_봉헌된 가족 스콜라티카 수도원, 수도원 순례기 다섯 번째만에 여성의 이름이 등장했다. 스콜라티카는 최초의 베네딕토 수녀원장이다. 스콜라티카 성녀의 이름이 붙여졌고, 성녀에게 봉헌되었을 뿐이지 그녀가 세웠거나 살았던 수도원은 아니다. 이 수도원은 베네딕토에 의해 세워진 12개의 수도원 중 첫 번째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수도원들이 그러하듯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복원되곤 하는데, 여기도 그 마지막 상흔은 세계대전이다. 이탈리아 최초의 인쇄소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독일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와 일하던 두 명의 독일 수도사가 이곳에 와서 3년간(1465-1467) 머물면서 처음으로 네 권의 책을 인쇄했다고 한다. 안내하는 분은 아주 빠르게 지나치듯 언급했지만, 최초의 인쇄, 수도원에서의 인쇄는 특별한 의미였을 것.. 2024. 5. 19. 지금 여기 선물 도착 수비야꼬 수도원의 아침, 선물같은 고요한 시간을 얻었다. 순례객 하나 없는 공간에서 가만히 머무르는 기도를, 베네딕토 성인의 은수동굴에서 남편과 둘이 오늘의 말씀 읽기, 그리고 진짜 선물이 왔다. 새가 한 마리 날기에 “쟤 지금 나한테 오는 거다!” 했더니 진짜 얘가 내 앞에서 왔다 갔다,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 다시 가고. 오늘도 새는 내게 그분의 메신저. “나 여기 있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너 있는 곳엔 어디나 내가 있다!” 말씀하신다.오후 순례는 파르파 수도원이었다. 순례 시간 변경으로 갑자기 자유시간이 생겼는데, 이 얼마나 꿀같은 시간인가. 수도원 앞 벤치에 앉아 지금 여기의 바람과 햇살에 무장해제 상태인데, 갑자기 에서 튀어나온 고양이 ‘지지’ 같은 애가 쓰윽 다가와 친한 척을 하.. 2024. 5. 19. 수도원순례3_규칙의 탄생 베네딕토 성인이 정착하여 살다가 묻힌 곳, 베네딕토회의 모체이며 서방 수도회의 모델이 되는 수도원인 몬테카시노 수도원이다. 글로만 보던 베네딕토 성인의 삶과 영성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처음 순례지 카사마리 수도원에서의 감흥이 가시지 않은 채로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향했다. 지도책에서 본 것을 눈앞에서 바로바로 찾아내는 JP가 산꼭대기를 가리켰다. 거기 산꼭대기에 몬테카시노 수도원이 보였다. 와아, 저기로 올라가는 거야! 저기야, 저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식상한 말은 꼭 이렇게 튀어나오곤 한다니까. 글로 보면서 한참 가까워진 베네딕토 성인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몬테카시노 수도원에는 없었다. 로마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은 이었다. 비행기 독서는 집중력과 이해력이 덜 필.. 2024. 5. 18. 사랑하는 목사님 생일축하 수도원의 밤이 깊어간다. 옆 침대에는 아주 특별한 생일축하를 받은 목사가 쌕쌕 깊이 잠들어 있다. 남편 생일인데, 서프라이즈로 케이크라도 준비하고 싶었지만, 산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에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어쩌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생일인 것이 알려졌다. "그리고 오늘 순례에 함께 하신 김종필 목사님의 귀 빠진 날이랍니다."는 말이 마치자마자 생일축하 노래가 떼창으로 발사되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목. 사. 님. 생일 축하합니다. 교회 교우에들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떼창 생일축하 노래를 가톨릭 신자들의 목소리로 들었다. "사랑하는 신부님"이 아니라 사랑하는 "목사님"이라고 노래하는 가톨릭 형제자매들이라니! 사랑하는 목사님...이라니! 한 마디 하라는 말에 남편이 일어나 멋진 .. 2024. 5. 18. 수도원순례2_어쩌다 수도원에 닿았나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인데, 첫 순례지는 시토회 수도원인 카사마리(Abbazia di Casamari)이다. 시토회라니. 내게 수도원은 시토회(트라피스트) 수도원이다. 어째서 그러한지, 내 비밀 같은 이야기를 차차 풀어놓으려고 한다. (오늘 이야기가 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를 알고 남편을 아는 지인들은 '수도원 순례 여행' 간다는 말에 끄덕끄덕 하며 부럽다고 한다. 순례단에서는 신기한 일로 여긴다. 개신교인이, 그것도 목사 부부가 어떻게 여기를 함께 하느냐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 안면을 트고 대화가 길어지면서 듣고 또 듣는 질문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수도원 영성이 내 마음에 훅 들어온 것은 대학원에서 '영성신학' 과목을 듣던 그때였다. 생 티어리의 기욤 2024. 5. 17. 수도원순례1_Welcome to Rome 로마에 온 걸 환영한다니! 내가 로마에 왔구나! 순례 일정 중 분명 로마가 끼어 있는데 얼마나 안중에 없었는지,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하여 "Welcom to Rome"이란 전광판 글씨를 보고 "아, 나 로마에 온 거지... 로마행 비행기였어..." 싶었다. 이탈리아 독일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이다. '수도원'과 '베네딕토'에만 온통 집중하고 있어서 로마 일정은 보고도 본 게 아니었다. 남편의 안식월과 결혼 25주년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는 긴 여행을 잡기 딱 좋은 시기였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온전히 3개월 '홀로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어떤 여행이든 굳이 같이 갈 필요가 있겠는가 싶(은 쿨한 지경에 이르렀다. 결혼 25년 만에)었다. 실은 그 와중에 내겐 '수도원 순례 여행'.. 2024. 5. 16. 수도원순례0_먼 여행 떠나는 아버지 엄마 "당신도 이렇게 멀리 어디를 갈 때 그런 생각 들어?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아니, 전혀! 가는 곳을 생각하느라 그럴 겨를 없는데." 의외였다. 남편이 금요기도회를 인도하고 집에 오는 길, 급성 게실염으로 응급실로 가서 바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입원실 침대 밑에 놓인 구두를 보고 "어느 날은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와 다시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지지 못하는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며 성찰한 내용을 설교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까지는 아니어도, 엇비슷한 느낌은 있을 줄 알았다. 전혀!란다. 순간 이 며칠, 아니 어디 떠날 때마다 무거워지는 내 마음이 새롭게 알아차려졌다. 어제 채윤이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당신도 이렇게 멀리 어디를 갈 때 그런 생각들어? 갔다.. 2024. 5. 15. 스승의 날의 기쁨과 기도 스승의 날을 기억하고 챙기는 간절한 감사의 마음을 안다. 선물이든 메시지든 말 한 마디든, 표현하지 못한 마음 가득 안고 지내는 시간이든… 일 년이 금방 다시 돌아와 “올해는 무슨 선물을 하지?” 하는 고민조차도 스승님에 대한 곡진한 감사이다. 챙기는 마음은 편하고 행복한데, 챙김 받는 일은 조금 무겁다. 예수님께서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셨으니 더욱 그렇다. 그것은 안다. 누군가를 존경하거나 선망하는 그 마음은 이미 자기 것이라는 걸. 그분들 안에 있는 것을 비추어 드리는 것이라면 기꺼이 감당할 만한 일이다. 다만 그것이 투사라 하여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고, 가벼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받는 만큼의 무거움을 잊지 않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감사한 선생님들을 떠올리고, 감사의 마음을 .. 2024. 5. 15. 꽃 말이야… 꽃마리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잠시 성북천을 걸었다. 길 오른쪽에는 심긴 꽃들이, 왼쪽에는 자라난 꽃들이 피어있다. 산책길을 화려하게 하며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개종된 품종의 작은 장미이지만 나는 왼쪽이다. 오늘은 이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할 수 있었다. 콩다닥냉이. 어쩌면 이렇게 이름도 귀여운 것이냐. 길에서 꽃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모든 들꽃과 눈을 맞출 수 있다. 꽃마리는 들꽃 중에 아주 작은 들꽃이기 때문이다. 내게 꽃마리를 발견하는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은 '꽃마리'이다. 꽃마리라는 별칭을 쓰는 나음터 벗 순연 샘이다. 어느 날 홀연히 내적 여정에 나타나 꾸미지 않고 자기를 보여주더니, 글쓰기 여정을 두 번 반복해서 듣더니, 꿈여정까지 깊이 들어왔다. 평생 "그러니까 너도 써라, 그러니까 당.. 2024. 5. 14. 알뜰살뜰 한 끼 채윤이가 주일에 교회 점심으로 나온 꼬마 김밥 남은 걸 챙겨 왔는데... 아무도 안 먹고 굴러다니고 말 것이었는데...계란말이로 만들어 맛있게 한 끼 했다!이럴 때 보람, 어디에 비할 수가 없다. 2024. 5. 14. 이런 사인회 주일 저녁 영애 부부에게 초대를 받았다. 일본 가정식 식당에서나 먹어볼 것 같은 카이센동을 해주었다. 카이센동은 비싸서 못 사 먹는 것이지,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메뉴인가. 영애 신랑 일혁은 타고난 요리사이다. 일혁이 만들어준 것이다. JP가 맛있는 것 먹을 때 내는 영혼의 소리 "어... 어... 밥이 자꾸 줄어..."인데, 그 말을 왜 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으로 아껴서 음미하며 맛있게 먹었다. 영애네 집은 일본 가정식 식당이었다. 그리고는 즉석 사인회가 열렸다. 영애가 엄마 김명순 권사님께 을 선사해 드리면서 권사님이 나누고 싶은 분들 몫까지 일곱 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곱 분 모두 젊은 시절 교회의 추억과 함께 얼굴이 떠오르는 분이었다. 최근에 겪으신 교회 갈등으로 상하셨을 마음이 떠올라 몇 글.. 2024. 5. 12. 뉴질랜드, 교회, 펠로우십 풍경은 사람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풍경이라도 사람이 담겨야 내게는 비로소 의미가 된다. 내 평생 뉴질랜드 남섬 여행만큼 멋진 풍경을 몰아서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결국 마음에 남는 것은 그 배경의 사람이다. 남편과 둘이 여행하면 좋은 풍경에 내 독사진, 몇 장 안 되는 JP 사진, 각도 참 안 좋은 셀카 정도인데. 이번 여행에선 커플 사진을 많이 건졌다. 그 모든 사진 중 참 좋은 사진은 넷 단체사진인데,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서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페이스북에 공개했었다. 사진마다 표정이 좋고, 표정보다 더 좋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중에서도 최애는 후커 밸리 트래킹 끝에서 만난 마운틴 쿡 배경의 빙하호수 배경의 네 인물이 담긴 사진이다. 고고씽 뉴질, 남섬.. 2024. 5. 11.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274 다음